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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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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17) 허청륭 화백과 이상용 연극인

연극에서 싹튼 ‘화가와 연극인’의 30년 우정

  • 기사입력 : 2014-06-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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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마산 이상용(왼쪽) 대표와 서양화가 허청륭 화백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사거리 가배소극장 4층 마산국제연극제 사무실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다.
    이상용(왼쪽) 대표와 허청륭 화백이 마산국제연극제 사무실에서 화백의 그림으로 만든 연극 포스터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벽에 걸린 그림은 허 화백이 오래전에 기증한 것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사거리 가배소극장 4층 마산국제연극제 사무실에서 극단 마산 이상용(63) 대표와 ‘울트라 마린 컬러’의 서양화가 허청륭(71) 화백을 만났다. 4층 사무실로 오르는 계단 벽은 마산 연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사진들로 빼곡하다. 사진 속에는 이 대표는 물론이고 허 화백의 얼굴도 간간이 보인다.



    고성 출신으로 경남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이 대표는 공연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 영어 연극 한 편 때문에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고 했다. 학생들의 집회가 허용되지 않던 1970년대, 무산된 공연의 허탈감을 해결하려고 대학 내 연극부를 만들었다. 그 후 경남연극협회 회장, 한국연극협회 이사, 전국연극인협의회 회장 등을 거치면서 26년째 마산국제연극제를 이끌어오고 있다.

    이력만 보면 마치 연극계 행정가인 것처럼 보이지만 배우, 연출, 희곡작가를 두루 거치면서 ‘연극불’을 키우고 가꾸어온 경남연극계의 큰 인물이다.



    사무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청아한 푸른 빛이 인상적인 허 화백의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마산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대표의 사무실에 걸린 허 화백의 그림. ‘그림은 화가의 자식이나 마찬가지, 허투루 작품 한 점 내돌린 적 없다’는 허 화백의 말을 떠올려 보면 거기 걸린 그림에서 두 사람의 친분 정도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림값 한 번 드린 적이 없어요. 소주 두어 잔이 그림값이랄까. 사무실을 옮기고 나면 꼭 오셔서는 둘러보고 작품 한 점을 걸어 주십니다. 예술하는 사람 공간에 그림 하나 없어서야 되겠냐고 하시면서.”

    백발에 날카로운 눈빛, 자그마한 체구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허청륭 화백의 첫인상은 ‘땡초’라는 그의 별호와 딱 맞아떨어진다. 눈에 거슬리는 것을 못 보고 직선적으로 질러버리는 성격이라 맵디매운 ‘땡초’라는 재미있는 호를 얻었다고 하는데, 의외로 다정다감한 면모를 가진 사람이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 별호에 재미있어 하는 좌중을 향해 허 화백이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보통 성격이 아닙니다. 아닌 걸 보고 그냥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어울리던 마산 예인들 중에 저한테 된소리 안 들은 사람이 드물 거예요.”

    이 대표가 창동예술촌 벽화 얘기를 잠깐 꺼냈다. “작고하신 현재호 화백의 그림과 함께 허 화백의 그림이 벽화로 작업되어 있는데, 이 형님이 완성된 벽화를 보고 ‘당장에 내 그림 지우라’고 호통을 치는 통에 당시 작업했던 화가들이 다시 벽화를 그린 일이 있어요. 간판장이가 더 낫겠다면서 화가 욕먹일 일 있냐고 어지간히 하셨어야지. 덕분에 창동예술촌 벽화가 명물이 됐지요.”



    1985년 극단 마산 대표를 맡으면서부터 교류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두 사람의 첫 만남은 3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그 긴 세월 동안 이 대표는 허 화백의 매운 직설화법에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게 신기하고도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고모령이니 홍화집, 성미 통술집을 전전하며 사흘들이 만나 어울렸지만, 이 대표에게는 한 번도 큰소리를 낸 적이 없어요. 아니다 싶으면 한 소리 했을 텐데 그런 게 없었나 보지. 저도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 대표도 둘러 말하거나 꼬아 말하는 걸 잘 못하는 다혈질 기질이 있는데, 안 부딪치고 그 오랜 시간을 어울려 지냈으니.”

    “서로 안다고 해야 되나… 뭔가 통하는 게 있어요. 수십 년 세월이 쌓이고 보니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생각을 알 정도가 됐어요. 대학 졸업 후 수없이 많은 예인들을 알고 지내왔지만 편하게 형이라고 부르는 분은 허 화백뿐입니다. 아마 형이 연극을 좋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대표는 연배를 뛰어넘은 30년 우정의 근간을 연극에서 찾았다. 연극 인생을 살아온 이 대표야 그렇다 치고, 오로지 그림에만 전념해 온 허 화백은 연극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아스러운 답이다.



    “일본에서 나고 진해에서 자랐어요. 그림을 진해 ‘흑백다방’의 유택렬 선생님께 배웠습니다. 처음 연극을 접한 것도 스승이신 유 화백 덕분이라 할 수 있지요. 1968년경으로 기억하는데, 서울로 유학갔던 대학생들이 방학 때면 진해에 내려와서 연극을 한 편씩 공연했어요. 그때는 흑백다방이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거든요. 연극을 한다고 소문이 나면 시인 정진업, 김수돈, 한하균 선생이 진해로 다 모여들었어요. 진해상공회의소 소극장에서 해양극장, 시민극장 등으로 무대를 키워 가며 공연했어요. 지금과 같은 전문성이 없으니 그림 그리는 나 같은 사람이 무대미술뿐 아니라 음향도 맡고 소도구도 챙기고 이것저것 막 했죠. 7~8편 정도 했어요.”

    그렇게 초창기 진해연극협회와 진해예총 창립 멤버가 됐다는 허 화백은 40년도 넘은 그때 일들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먹고살기 바쁠 때라 자비 털어서 연극하는데 무슨 사람이 있었겠어요. 문인, 화가, 음악가 등 전공 따지지 않고 어울려 했지요. 유치진 선생의 제자인 진해중 교사 출신 이기태씨가 연출한 ‘관광지대’에는 점잖기로 유명한 시인 황선하 선생이 간첩 역을, 목사 한 분이 괴뢰군 병사 역을, 유택렬 선생이 흑인 헌병 역을 맡을 정도였어요. 곱슬머리에 이국적인 외모를 가진 유 선생이 까맣게 분장하고 대사 한마디 없이 껌을 딱딱 씹으며 왔다갔다 했는데, 한하균 선생이 유 선생님 덕에 연극이 성공했다고 말할 정도로 오래오래 얘깃거리가 됐어요.”

    유일한 허 화백의 배우 경험담은 제법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유치진 작 ‘조국’의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 중 주인공 ‘혁’ 역을 맡은 배우가 나타나지 않더란다. 허 화백은 연습 내내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주는 프롬프터를 해왔는데, 결국 ‘혁’의 대사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다는 이유로 갑자기 주인공으로 무대에 서게 됐다는 사연이다.



    “형이 진해에서 마산으로 화실을 옮기고 난 후 직업은 화가지만 연극 관련 예술인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극단 마산의 공연이나 연극제 등 행사가 있으면 항상 초대를 했지요. 그러면서 형과 제가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대 미술이나 포스터 디자인 같은, 화가에게 도움 받을 만한 일이 있으면 부탁도 드렸어요. 그때마다 거절하는 법 없이 맡아서 해결해줬습니다. 형의 포스터는 하나의 예술품이나 진배없었어요.”

    그런 인연 때문인지, 이 대표는 허 화백의 개인전을 2002년과 2008년 두 차례 기획하고 지원했다. 앞으로 한 차례 더 기획하고 싶다면서 허 화백의 건강을 염려했다.

    젊은 시절부터 고질병으로 만성 췌장염을 앓고 있다는 허 화백은 술 담배를 여전히 즐긴다.

    “15회 개인전까지 치렀는데 대략 3년 간격으로 열었지. 한 번 개인전으로 3년간 연명하는 식으로 살았어요. 화가로 살아온 인생이니 한 번 붓을 들면 답이 나올 때까지 몰두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진도가 잘 안 나갈 때가 있어요. 그때는 온몸을 쥐어짜듯 힘이 듭니다. 할 수 없이 술의 힘을 빌려야죠. 술 마시고 맘 가는 대로 밤새 작업해 놓고 보면 답이 보입디다. 이 대표가 하는 연극도 내 그림에 큰 역할을 할 때가 있어요.”



    여기서 허 화백은 ‘숨이 트인다’는 표현을 썼다. “연극은 종합예술이어서 평면예술인 회화에 비해 입체적입니다.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어떤 장면을 보면서 숨이 트일 때가 있습니다. 연극 한 장면이 그림에 영감을 준다고 할까….”

    “연극의 순기능이네요. 형님 얘기 듣고 보니 더욱 열심히 연극 일에 매진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형님도 건강 챙기시면서 좋은 작품활동해야지요.” 이 대표가 16번째 개인전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냐며 손을 잡자 허 화백이 현답을 내놓는다.

    “똑같은 스타일의 그림은 그리기 싫어서 시간이 좀 걸립니다. 새 이미지를 찾아서 열심히 붓질해야지요. 병을 이기는 방법도 그림을 열심히 그리면 돼요. 예술인에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어요.”


    글= 황숙경 기자 hsk8808@knnews.co.kr 사진= 김승권 기자 sk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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