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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떠나는 경남산책 (100·끝) 박서영 시인이 찾은 남해 금산

수많은 바위들 속에서 나는 보았네
사랑했던 당신의 얼굴과 지난날들…

  • 기사입력 : 2014-06-10 11:00:00
  •   

  • 상사암

    기암괴석들
    보리암
    보리암전(前)삼층석탑
    해수관음보살상




    우리는 바위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가지게 되었다. 남해 금산, 38경을 품고 있는 산을 하루 종일 헤맸다. 금산은 사랑에 대한 안내서이며 인생에 관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파고들수록 아름답고 신비한 전설과 사연이 숨어 있다. 나는 금산의 27경인 상사암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이 바위가 품고 있는 이야기는 이렇다. 조선조 숙종 시절에 전라남도 돌산지역의 사람이 남해에 기거하여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과부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남자가 죽을 지경에 이르자 과부가 이 바위에서 남자의 상사를 풀어주었다는 것이다. 이 높고 위험한 바위에서 죽을 듯 사랑을 풀어버린 이야기는 애절하다. 실제로 툭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도 어떤 사내들은 난간을 넘어 상사바위 끝에 서서 만세를 부르곤 한다. 상사바위에는 금산 31경인 구정암이 있는데, 이것은 아홉 개의 홈을 말한다. 이 구덩이에 빗물이 고이면 샘처럼 보인다고 해서 구정암이라고 부른다. 구정암에 고인 물로 세수를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상사암에서는 보리암과 해수관음상도 선명히 보인다. 일월봉, 만장대, 사선대, 화엄봉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저마다 하나씩 이야기들을 품은 채 서 있다.

    갓 스무 살이 되던 해 읽었던 이성복의 시집 ‘남해 금산’은 따뜻하고 아름다우며 고통스러웠다. 그땐 청춘이었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여전히 그렇다. 인생이 계속되는 동안 따뜻하고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일들도 계속 따라다니는 건가 보다. 상사암을 바라보며 이름을 알 수 없는 바위에 등을 대고 앉아 ‘남해 금산’을 다시 읽으니 코끝이 시큰하다.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 시를 스무 살엔 이해하지 못했다. 느낌만 스쳐갔다. 시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돌 속에 남아있다. 나도 떠나지 못한 채 돌에 기대앉아 있다. 떠나버리면 그리워질 테지만, 어떤 순간은 행복하고 충만하게 남아있게 된다. 한 사람은 돌 속에서, 한 사람은 돌 밖에 서 있는 사랑의 풍경. 당신과 나의 풍경. 마음을 열고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하여, 얼마나 단단한 돌을 깨고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심장은 부드럽고 물컹하지만 때로 심장은 그 어떤 것보다 차갑고 단단하다. 감성과 이성의 무게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초라하고 낡은 저울 위에서 감성과 이성은 언제나 흐트러진다. 나는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 좋다. 그 사람들은 덜 가졌지만 더 많이 방랑하고 자유로울 것이다. 궁핍하지만 그 궁핍마저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적 있다. 그는 어느 곤궁한 저녁의 풍경과 밤의 침묵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사소한 취향과 고집을 지키기 위해 화를 내며 돌아서기도 하고, 화가 풀리면 나를 다시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그는 변덕이 심하고 기분파고 자존심도 셀 것이다. 나는 사랑이 무겁다가도 깃털처럼 가볍게 떠난다는 걸 알고 있다. 돌에 기대앉아 있으니 돌 속의 그 사람이 참으로 다정하게 느껴진다. 등이 뜨겁고 땀이 흐른다.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비슷한 피가 흐른다는 걸 느꼈을 때의 따스함. 사랑도 시간의 흐름에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어서 두렵고 불안하다. 어떤 순정은 짐승처럼 나를 괴롭힌다. 나는 사랑을 ‘삵’에 비유한 적이 있다. 삵의 이마에 길고 흰 무늬가 남아있듯이, 사랑은 서로를 할퀴다가 이마에 선명한 무늬를 새긴 채 끝나기도 한다. 그것은 상처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으로 포장되는 상처. 무너진 자신을 위로하고 애도하고 자존을 회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밤이 올 것이다. 그러다가 개인적 고통이 세상의 고통으로 확대될 때 나는 어른이 되는 걸까.

    그냥 웃어 주는 일. 그냥 다독거려 주는 일. 그냥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 주는 일. 그냥 함께 있어 주는 일. 바위는 내게 그런 존재다. 그런데 바위 속의 당신은 여전히 고통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남해 금산이 품은 수많은 바위들을 순례하며 결국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말았다. 크레인 위의 당신, 차가운 물속의 당신, 불덩이가 쏟아지는 광장에 서있는 당신, 캄캄한 지하실의 당신, 달방에 누운 당신, 길바닥의 당신, 지구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당신. 원래 당신은 잘 웃고 잘 들어주고 다정하고 따스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자주 화를 내곤 한다. 그러다가 슬픈 얼굴로 돌아가 침묵해버리곤 한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당신의 삶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시절이다. 우리는 남보다 조금 더 생태적인 인간이지만 잎사귀 하나로 몸을 가릴 순 없다. 보리암 올라가는 산길에 수많은 나비들이 입술을 적시러 내려와 있다. 우리도 건조한 몸을 적시고 싶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아무 목적도 없고 계산도 불가능한 사랑이여, 살아있는 동안 내 심장에 당신과의 추억이 가득 차 있기를 바란다.

    금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순서 없이 이곳저곳을 헤맸다. 부소암, 상사바위, 좌선대, 금산산장, 제석봉, 금산정상, 일월봉, 화엄봉으로 갔다가 다시 보리암에 도착했다. 보리암에서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이 되어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비단 금(錦)자를 써 금산(錦山)이라 불렀다는 글을 읽었다. 잠시 동안 떴다가 사라지는 별도 절경에 포함되고, 아직 발견되지 못한 절경도 있다는 금산이다. 해수관음보살상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 보았다. 해수관음보살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남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당신이 아름다운 미소 위에 나를 태워 어디론가 데려가곤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런 날들이 저 수많은 바위와 풍경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처럼 흘러가고 있다. 유월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다. 사랑으로 시작되었지만 슬픈 애도와 기도로 채워지고 끝나는 여행이다. 남해 금산에서 당신을 그리워한다. 여전히 돌 속에 흐르고 있는 시간. 당신을 여행하는 동안 행복했다. 이젠 이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저기, 빈자리를 채우러 또 다른 사랑이 달려오고 있다. 상주 은모래비치 해안의 파도처럼 모든 것은 밀려왔다가 밀려가 버린다. 은빛 모래 위에 잠시 써보았던 순간들. 언젠가 내가 만났던 그 풍경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글·사진=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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