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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63) 김해 무척산 천지

산 속 호수, 호수 속 산
무척산 정상 아래
호젓하게 펼쳐진 호수

  • 기사입력 : 2014-06-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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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지는 김해시 생림면 생철리 무척산 해발 505m에 위치한 호수이다. 호숫가에 노랑꽃창포가 피어 있다./김승권 기자/


    천지는 백두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김해 무척산 팔부 능선에도 천지가 있다.

    신어산, 불모산과 함께 김해의 3대 명산으로 손꼽히는 무척산(無隻山·702.5m)을 한자로 그 의미를 풀어보면 ‘한 쌍이 될 짝이 없는 산’이다. 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주변에 짝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식산(食山)으로도 불린다. 북풍을 막아주고 낙동강 물줄기를 끌어들여 김해고을을 먹여 살리기 때문이란다. 산세가 좋고 경관이 수려해 사찰이 많고 가락국의 시조(始祖) 수로왕과 관련된 전설이 곳곳에 남아 있다.

    무척산 등산로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니 어디선가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적막한 산중에서 듣는 목탁소리는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랜만에 듣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산행을 언제 했는지 기억이 까마득하다. 여유 없이 살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보니 짙은 녹음 사이로 어렴풋이 암자가 보인다. 효심으로 지었다는 모은암(母恩庵)이다. 가락국 2대 왕인 거등왕이 어머니인 수로왕비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전설과, 수로왕비가 인도의 모후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이곳에 모셔진 석조 아미타여래좌상은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475호다.

    이정표를 보니 정상까지 3㎞, 천지까지 1.8㎞다. 천지가 목적지니 가벼운 산행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게 됐다.

    불규칙하게 놓여진 돌계단을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가파르고 꼬불꼬불한 등산로를 따라 20여분을 걸었을까. 온몸에 땀이 쏟아지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허약해진 체력을 원망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땀을 닦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부부소나무(연리지)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줄기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목이라 하고 가지가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라고 한단다. 안내판 뒤를 보니 과연 가지가 서로 연결된 연리지가 있다. 자연의 오묘함이 경이롭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오르니 산 아래가 한눈에 들어오는 탁 트인 지점이 나온다. 하지만 날씨가 흐린 탓에 가까운 곳만 뿌옇게 보인다. 맑은 날엔 멀리 낙동강 물줄기가 조망된다고 한다.

    눈을 감고 산새의 지저귐과 바람에 나뭇잎이 부대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세상사 시름이 사라지는 듯하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수줍은 아가씨처럼 천지는 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숨이 턱까지 찼다고 생각한 순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천지폭포다. 물줄기가 수돗물을 틀어 놓은 것처럼 빈약해 폭포라고 하기엔 멋쩍어 보인다.

    천지폭포까지 왔으니 이제 곧 천지다. 힘을 내 경사길을 오르자 초록빛 천지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시골마을의 저수지만 한 크기의 호수로 잠시 머물며 산행의 가쁜 숨을 고르기에는 그만이다.

    무척산 해발 505m 지점에 있는 천지는 둘레 300여m, 면적 6700여㎡, 저수량 7300여t 규모로 한반도 최고봉 백두산(2744m) 천지, 남한의 최고봉 한라산(1950m) 백록담과 함께 우리나라 산정에 있는 3개 호수 중 하나다.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정상부에 생긴 호수지만, 무척산의 천지는 화산과는 무관하게 정상부 아래 분지에 물이 고여 만들어졌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것인지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무척산 주릉의 뭇 봉우리들이 천지를 에워싸듯 둘러쳐져 있다. 미동도 없이 잔잔한 수면에 주변 숲이 반사된 풍경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호숫가엔 짙은 꽃향기를 내뿜는 찔레꽃과 노랑꽃창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호수의 경관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산에서 아름다운 호수를 접하니 신기하면서도 불로소득을 얻은 기분이다. 등산의 묘미와 호수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천지는 백두산의 천지처럼 화산활동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폭포가 있는 서쪽 골짜기로 물이 빠지게 돼 있는 것을 막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가락국의 수로왕이 붕어한 뒤에 국장(國葬)을 치르기 위해 지금의 왕릉 자리에 묏자리를 파는데 물이 자꾸만 나와서 못처럼 돼 버렸다. 모두 걱정을 하고 있는데 신보(허 황후가 인도에서 시집올 때 수행한 신하)가 고을 가운데 높은 산에 못을 파면 이 능 자리의 물이 없어질 것이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무척산의 산마루에 못을 파니 왕릉 자리의 수원이 막혀 무사히 국장을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호수 한쪽에는 최근에 지은 정자가 있다. 등산객들에겐 좋은 쉼터다. 금실이 좋아 보이는 부부가 점심 도시락을 먹다가 사과 하나를 건넨다. 넉넉한 산행 인심이다.

    가장 편한 자세로 정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본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온통 마음이 빼앗긴다.

    글= 양영석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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