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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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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떨림, 그 신생의 힘- 서일옥(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4-06-2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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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럽게 물들 것 같은 신록, 숲과 그늘진 바위 틈새 이끼, 그리고 바닥이 환히 보이는 계곡물, 나무와 나무 사이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먼 산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 파란 하늘과 밝은 햇빛이 모두 어우러져 빚어내는 한 폭의 수채화! 지리산의 초여름은 답답하고 힘든 우리들에게 자연이 가만히 내밀어 주는 맑고 깨끗한 편지 한 장이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 끄덕여 주고 그윽한 눈빛으로 어루만지며 너른 가슴으로 안아주면 명치 끝에서부터 짜르르하게 번져오는 떨림 속에서 누구나 마음의 안정을 찾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인적 뜸한 산길에서 만나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은 또 우리를 얼마나 떨리게 하는가! 자옥한 안개 속에서 산꿩 가족의 유유한 나들이를 보며,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눕는 풀들의 부드러운 향연과 빗방울 속에서 춤추는 나뭇잎들의 반짝거림이 있는 작은 프레임 안에서 들어보는 구라모토의 ‘Romance’는 지나간 추억들의 절절한 그리움을 만나게 하고 마침내 눈물마저 펑펑 쏟아지게 한다.

    런던의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열다섯 송이 해바라기 작품 앞에 서면 화면을 온통 뒤덮고 있는 노란색 앞에서 우리는 전율한다. 꽃도, 화병도, 벽지도 모두 노란색이다. 해바라기의 고유한 색채 하나로 그림 속 세계를 완전히 통일시켜 버린 것이다. 화면 속에서 만나는 고흐의 붓 터치는 한없이 거칠면서 빠르며 때로는 짧고 간결하게, 때로는 톡톡 찍어 나가면서 자신을 토해 내고자 했던 흥분과 열정을 보여 주는 듯하다.

    영화 ‘타이타닉’ 마지막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다. 1912년 4월 14일 23시 40분 ‘가라앉지 않는 배’라고 자부하던 타이타닉 호는 2200여 명의 승객을 태우고 리버풀을 출발한 지 3시간 후 북대서양의 뉴펀들랜드 바다에서 빙산과 충돌, 15일 새벽 2시 20분에 침몰한다. 노약자와 여자들을 구명보트에 모두 태운 후 함장, 승무원, 그리고 남자들은 침몰하고 있는 배에 남는다. 그 가운데에 짧은 양복바지 차림의 꼬마 신사도 함께 떠나가는 구명보트에 경례를 붙이면서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타이타닉호의 전속악단도 배가 침몰하기 직전까지, 들어주는 이 하나 없어도 마지막 연주를 하며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이들의 진정한 희생 앞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전율과 함께 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세미나에서 펼쳐지는 시조 낭송과 시극 공연을 보면서 우리는 또 다른 설렘과 만날 수 있다. 절제와 균형의 미학을 추구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 자체의 단아함도 있지만 낭송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서 정말 아름다운 떨림을 느낀다. 쟁반 위의 옥구슬 같이, 장중한 노래 선율로, 촛불을 밝혀 들고 낭송을 하는가 하면 음악과 함께 어우러지며 멋진 소품을 들고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펼치는 시극 공연은 밤의 고요 속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예술의 한 경지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문만 열고 닫고 하는 삶이 참 단조롭고 무미건조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살아있음의 증거로, 새로운 나와의 소통으로, 다시 나를 찾고 나를 일으켜 세우는 떨림은 꼭 필요하다. 그건 새로움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고 어떤 일에 대한 열정일 수도 있다. 앵글의 각도에 따라 수많은 떨림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요란스러웠던 유월이 가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떨림, 그 신생의 힘이 다시 솟아나기를 바라본다.

    서일옥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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