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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정목일 수필가

내 수필을 싹틔운 건 남강의 바람과 강물이었다

  • 기사입력 : 2014-07-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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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에서 나고 자란 정목일 수필가는 지금도 남강을 바라보면 가슴이 설렌다. 정 수필가가 자신의 문학 시원지(始原地)라고 밝힌 남강을 바라보고 있다./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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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석루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정목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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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목일 수필가가 진주성 안을 걷고 있다.
     

    진주인의 가슴속엔 언제나 남강이 흐른다. 남강을 상징하는 꽃이 촉석루이다. 고향을 떠난 진주 사람의 집에 가보면, 으레 촉석루 사진이 붙어 있음을 본다.

    진주 사람들의 마음에는 댓잎처럼 시퍼런 남강이 흐르고, 뜨거운 함성이 들려옴을 느낀다. 남강에 오면 끓어오르는 눈물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억제할 수 없다. 진주 남강은 민족의 가슴속으로 흐르는 애국혼의 동맥이다.

    1592년 시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3800여명에 지나지 않는 적은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왜군을 크게 무찔러 ‘진주대첩’을 거두었다. 1593년 유월 12만의 왜군들이 다시 침공하여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이때 의롭게 순절한 사람이 병사들과 시민을 비롯하여 무려 7만여명에 달했다.

    논개는 꽃다운 나이로 적장을 가슴에 안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남강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다 목숨을 버린 7만의 넋을 안고 흐르고 있다. 아무도 적 앞에 비겁하지 않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진주는 해마다 시월이면 유등 축제를 올린다. 7만 전몰자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강물을 밝히는 것이다. 꽃등 안에 촛불을 켜고, 역사를 밝히고 강물의 영혼을 밝힌다.

    내가 태어난 곳은 진주시 중안동 15번지, 옛 도립병원 뒤였다. 비봉산을 등지고 경찰서와 우체국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십 분만 가면 남강과 진주성이다. 나에게 이 길은 추억의 시·공간을 이어주는 마음의 탯줄 같은 길이다. 봄이면 도립병원의 벚꽃과 목련꽃이 눈부셨고, 향기로운 길이었다.

    진주인의 마음속에는 남강이 흐른다. 마음속엔 푸른 대밭과 흰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남자라고 할지라도 마음속엔 가락지를 끼고 있다. 열 손가락마다 가락지를 끼고서 왜장을 끌어안아 두 손으로 깍지 낀 채 강물 속으로 뛰어든 논개를 잊을 리 없다.

    남강을 바라보면 오래간만에 고향 집을 찾아와 어머니를 만난 듯 뜨거운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남강은 진주를 낳고, 역사와 문화를 꽃피운 거룩한 어머니다.

    나는 75년 종합문예지 ‘월간문학’지와 76년 ‘현대문학’지에서 수필부문에 각각 최초의 당선과 추천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종합문예지 등단 1호라는 점 때문에 수필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종전까진 우리 문단에 공식적인 수필가의 등단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에, 등단 관문을 거친 제1호 수필가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진주에서 ‘경남수필문학회’를 창립하는 한편, 수필 쓰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첫 수필집 ‘남강 부근의 겨울나무’(백미사)가 나온 것은 79년이었고, 작품들은 풀, 나무, 별, 달, 강 등 자연을 소재로 한 것으로, 남강 정서와 사색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촉석루까지 가서 남강을 바라보는 게 하루의 일과처럼 되곤 했다. 성장기의 이런 체험이 성인이 된 후에 진주성 전투를 소재로 한 ‘남강의 아이’라는 장편 동화를 쓰기도 했다. 어릴 적엔 빨래하러 남강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다녔고, 중·고교시절의 산책 코스는 남강 둑길과 진주성이었다. 그곳은 역사의 성소였다. 백사장에 앉거나 드러누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여름이면 멱을 감았다. 물속에서 목만 내어놓고 눈이 시리게 푸른 대밭과 바위 벼랑 위에 솟은 촉석루를 바라보곤 했다. 내 수필들은 남강을 보고 자란 생각과 서정에서 피어난 소박한 풀꽃들이다.



    진주 남강은 논개(論介)의 가락지 사이로 흐른다.

    희고 부드러운 여인의 손가락에 끼인 가락지는 사랑의 정표로서 변함없는 마음의 꽃이다. 가락지는 여인에게 있어서 사랑의 상징이며 인연의 고리이기도 하다. 남강에 가보면 천년만년을 흘러온 푸른 강물이 가락지 사이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락지를 보면, 사랑의 기쁨과 축복의 노래가 들려올 듯하건만, 남강에서 보는 가락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애통하고 눈물겹다. 임의 품에 안겨 행복감에 만져보는 가락지가 아니라, 원수를 품에 안고 떨며 바라보던 가락지다. 사랑을 약속한 꿈의 가락지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비애의 가락지이다.

    -필자의 ‘논개의 가락지’ 일절



    고향을 찾아온 진주 사람들의 발걸음은 어느새 남강으로 향하고 발걸음을 멈추는 곳이 촉석루이다. 여기야말로 진주의 영혼이 자리한 성역이자, 이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을 드러내는 절정이기도 하다. 촉석루는 우리나라 3대 누각 중의 하나지만, 자연 경관이 아닌 민족의 역사와 애국혼이 살아 숨 쉬는 성지가 아닐 수 없다.

    나는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진주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남강과 촉석루를 바라볼 적마다 가슴이 뛰고 설렘을 느낀다. 내 문학을 싹틔운 것은 남강의 바람과 강물이었다. 남강변의 대숲과 개천예술제에 띄우던 유등놀이였다. 친구들과 뛰놀며 강물을 바라보던 백사장이었다.

    남강 모래밭은 강물이 펼쳐놓은 만년 명상록이자, 내 사색의 영토이기도 하다. 나는 그 정결한 명상록에 무엇을 써놓을까를 생각한다. 수필은 논픽션이기에 진실과 순수를 생명으로 한다. 문장은 곧 인생 경지를 보여준다. 마음속에 샘을 파두어서 탐욕이라는 때와 어리석음이란 얼룩과, 분노라는 먼지를 깨끗이 씻어내고 싶다. 마음속에 종을 달아 두어서 깨달음의 종소리를 듣고 싶다. 강물처럼 스스로 깊어지고 맑아지는 법을 알고 싶다. 곧잘 그리운 남강에 와서 경배하면서 가락지 사이로 흐르는 남강 물을 마음에 채워가곤 한다.



    <정목일 약력> △1945년 진주 출생 △1975년 ‘월간문학’수필 당선 △1976년 ‘현대문학’수필 천료 △수필집 ‘나의 한국미 산책’, ‘지금 이 순간’ 등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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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관수 약력> △1956년 고성 출생 △개인전 15회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 대구예술대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장, 한국사진학회 이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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