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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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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5) 조현술 동화작가

그리운 추억 수놓인 철길 위로
내 마음의 문학기차 달려간다

  • 기사입력 : 2014-07-1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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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술 동화작가가 고교시절 만난 소녀와 거닐며 문학의 촉을 틔웠던 임항선 철로 위를 걷고 있다./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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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술 동화작가가 마산박물관에서 임항선 그린웨이로 내려오는 숲길 벤치에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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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항선 옆 담벼락에서 포즈를 취한 조현술 작가.


    우리는 서로 만나본 적도 없지만

    헤어져 본 적도 없습니다

    무슨 인업으로 태어났기에

    어쩔 수 없는 거리를 두고 가야만 합니까?

    -김남조 ‘평행선’의 일부



    60년대 후반의 임항선, 이것은 나에게 문학의 샘터였다. 임항선이 나에게는 잊혀진 추억 중의 하나이고 문학의 촉을 틔운 곳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마산에 열차역이 셋 있었다. 신마산 역은 커다란 광장이 있고 아침저녁으로 까만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내려 넓은 역 광장이 붐비던 곳이었고, 북마산역은 봄이면 서쪽 언덕으로 개나리꽃 덤불이 유난스레 고왔으며, 구마산역은 상인들이 많이 오르내리던 역이었다. 그 세 역을 이어주는 철도가 임항선이었는데 아직까지도 그 철로가 시민들의 둘레길로 남아 있어 우리들에게 누에고치실같이 추억으로 풀어 내리고 있다.

    임항선의 철로 길은 우리 시대에는 아름다운 연인들의 길이었다. 물론 열차가 다니지 않는 조용한 시간, 그것도 가장 안전하고 아름다운 구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의 문신 미술관 아래의 임항선이 그 낭만의 길이었다. 철길 양쪽 언덕에는 코스모스가 꽃성벽을 이루듯이 아름답게 피어 임항선을 환상의 무대로 연출시켜 주었다. 간간이 가고파 바다에서 뱃고동이 ‘부우웅’ 울리면 시를 향한 사색의 촉이 터지곤 했다. 친구들과 그 길을 걸으면서 사색을 하며 시를 읊조리고 설익은 문학을 논하곤 했다.

    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의 단출한 복장으로 그 길을 시름없이 걸었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런 정취에서 시가 되든지 동화가 되든지 괜스레 고뇌를 흉내 내어 보는 것이었다.

    나는 어느 가을날 철로 가에서 코스모스 꽃숲에 묻혀 코를 코스모스 꽃에 대고 무언가 깊은 생각에 젖어 있었다. 그때, 내가 있는 그 방향의 철로길로 한 여고생이 똑, 똑 발자국 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눈에 비치는 그 여고생 모습이 천사처럼 곱게 보였다. 하얀 교복을 말끔히 차려 입고 파란 가을 하늘을 등지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사이로 걸어오는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향수, 모성애 그리고 묘한 감정으로 가슴이 뛰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걸어 그녀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어수룩한 모습, 꾀죄죄한 시골뜨기의 모습으로 감히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대개 필기구로 만년필을 썼다. 엉겹결에 윗호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만년필의 잉크물을 빌리려는 척하면서 상대방과의 이야기를 시도해보려는 나만의 독특한(?) 통신법이었다. 서투르고 떨리는 목소리로 첫 작업의 신호탄을 날렸다.

    “저기요, 죄송하지만, 만년필 잉크가 모자라서요, 코스모스를 보자 급히 메모할 일이 생겨서….”

    내 진실한(?) 연기에 그 착한 여고생이 감동을 먹었는지, 아니면 시골뜨기 고등학생에게 베푸는 천사의 선심인지는 몰라도 선뜻 말을 받아주었다.

    “어마나, 코스모스를 보고 메모를 하다니요. 참 멋지네요.”

    ‘크으, 실은 그대의 모습이 너무 좋아요. 코스모스는 무슨 놈의 코스모스?’

    그녀는 손가방에서 손을 꼬물대더니 푸른색 예쁜 만년필을 내었다. 내 만년필을 그녀의 만년필 아래에다 대었다. 그녀는 그의 만년필에서 작은 튜브를 잘금잘금 눌러 내 만년필 입에다 짜 넣어 주었다. 요즘 비행기 용어로 치면 공중급유(?)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그녀가 자기 만년필의 잉크물을 잘금잘금 짜 내리는 동안 나는 그녀의 얼굴이며 귀불이며 머리 생김새를 자세히 훔쳐볼 수 있었다. 더구나 생전 처음으로 가까이서 맡을 수 있는 열여섯 처녀의 향긋한 내음은 숫총각의 가슴을 쿵쿵 뛰게 했다.

    ‘아. 정말 아름다운 여고생이구나. 이런 여학생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내가 멍하니 서 있는 동안 공중급유를 마친 여고생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생긋 웃으며 돌아섰다.

    김남조의 ‘평행선’ 시처럼 필자와 그녀는 철로의 양쪽 길이 되어 한없이 평행선으로 뻗어가는 것 같았다.

    그 일이 인연이 되어 그녀와 종종 그 임항선을 걸으며 어설픈 문학을 논하며 내 마음속에 동화와 시의 씨앗을 싹틔우게 되었다.

    초여름이 되면 아카시아꽃이 흰 눈처럼 내려 그 향기가 임항선에 깔리면 아카시아 잎맥을 땄다. 그녀와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한 잎씩 따는 내기를 하기도 하였다.



    “은은한 꽃향기로 수줍은 듯 떠는 모습 하얀 젖가슴처럼 열리는 너의 모습” - 조현술 ‘아카시아꽃’의 일부



    나는 그녀와 서투른 시의 구절을 적어가며 임항선을 거닐었다. 그녀와 ‘가위, 바위, 보’를 하여 철로의 침목을 한 칸씩 건너기도 했다. 먼저 앞에 가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나는 그 놀이를 하면서 간이역의 시를 떠올리며 메모하기도 했다.



    “그대를 쉬게 할 간이역이 되고 싶소, 산바람 놀다가고 들꽃 내음 머무는 곳” - 조현술 ‘간이역’의 일부



    내가 쓴 동화 구석구석에는 지금도 임항선의 정서들이 샘물처럼 솟고 있다.

    그 후. 그녀는 어떤 연유인지 나와의 관계를 끊었다. 이 세상에서 그런 것이 실연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던 것 같다. 그 임항선은 그녀와 나를 영원한 평행선으로 가게 했다.

    나는 요즘도 가을만 되면 그 임항선을 거닐어본다. 코스모스 피는 가을에 임항선을 걷지 않으면 그해 가을과 초겨울까지 괜스레 짜증이 나고 나의 정서가 불안해 온다.

    “돈이 없어서 처량한 노년보다 추억이 없어서 외로운 노년은 더 불쌍하다.” 이 한마디가 요즘의 나를 위로하고 있다. 임항선의 코스모스 속으로 걸어간 그 여고생 뒷모습의 추억이 내게는 아름다운 보석이다. 내 마음 속에 별처럼 항상 빛나고 있다. 임항선이 내 문학의 성소(聖所-샘터, 배경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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