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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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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군대 이야기- 김도연(소설가)

  • 기사입력 : 2014-07-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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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총을 든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나를 찾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트럭 안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나처럼 끌려온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헌병에게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붙잡아 가는 거냐고 물었다. 헌병은 귀찮은 듯 서류를 뒤적이더니, 군 시절 서류를 위조해 세 달이나 빨리 전역을 한 게 발각이 됐으므로 다시 군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서류란 대학 1~2 학년 때 받는 군사교육 이수증명서를 말하는 것인데 이러저런 이유로 그 수업에 F를 맞으면 3개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즉 30개월을 꼬박 복무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그 서류를 위조해 제출한 뒤 3개월 먼저 전역을 하는 사병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트럭의 짐칸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해서 일찍 전역을 했다가 들통이 나 잡혀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맙소사! 내가 전역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당장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가만, 저 인간은? 트럭 안쪽에서 나를 주시하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전역하는 날까지 나를 괴롭혔던 Y병장이었다. 내 가슴은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저 인간과 또 군 생활을 함께해야 한다니….

    이것은 내 꿈의 일부다. 오랜만에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꾼 것이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놀란 내 가슴은 한동안 진정되지 않았다. 왜 오래전에 사라졌던 꿈이 되살아났을까. 군대란 곳이 과연 무엇이기에 남자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떤 계기만 있으면 유령처럼 되살아나는 것일까.

    군대에 대한 꿈은 이것 외에도 많았다. 소총을 잃어버리고 전전긍긍하는 꿈. 전역을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도무지 제대특명이 내려오지 않는 꿈. 찾아가 항의를 하니 시국이 불안정해 한 달을 더 복무해야 한다는 꿈. 참 종류도 가지가지였고 그 까닭도 그럴 듯해서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그 꿈들에서 벗어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나는 군사교육 이수증명서를 위조하지도 않았고 현역 시절 총을 잃어버린 적도 없었으며 어처구니없는 제대특명 역시 받지 않았다. 선임에게 못 견딜 정도의 고통을 받은 적도 없다.

    대부분의 병사들처럼 합리적이지 않은 일들에 대해 그저 묵묵히, 비겁하게 견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뒤늦게 악몽들이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

    텔레비전 화면으로 눈에 익은 철책선 풍경이 흐르고 있다. 나도 저들처럼 야간 근무를 섰고 밀어내기를 하느라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고 내려갔다.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을 지겹도록 들었다. 폭설이 철책을 덮을 정도로 내리면 며칠이고 제설작업에 매달렸다.

    거의 매일같이 산꼭대기에서 동해의 일출을 보며 막사로 돌아와 빵을 먹고 잠들었다. 어떤 밤에는 철책까지 접근한 산양을 만나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그러다 제대특명을 받고 ‘추억록’을 한 장 한 장 채워나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된 ‘추억록’을 찾아 펼쳤다. 함께 군 생활을 했던 선임과 후임들의 얼굴이 사진 속에서 하나둘 튀어나왔다.

    그때 우리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꿈을 꾸며 저 산꼭대기의 날들을 건너갔던 것일까. 모두들 잘 살고 있을까. 벌써 자식을 군에 보낸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추억록’ 속의 풍경과 텔레비전 화면 속, 총기난사의 가슴 아픈 풍경을 흐린 눈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십여 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둘 다 틀림없이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이십여 년 전 같은 막사에서 생활했던 한 병사이기에 먹먹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 악몽을 막을 방법은 정녕 없을까.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다고 쉬쉬하는 건 아닐까.

    김도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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