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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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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아무것도 하지 않기- 김영혜(수필가)

  • 기사입력 : 2014-07-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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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철이다. 모두들 휴가계획을 세우느라 바쁘다.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숲으로.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 이 무더위 속에서도 길을 나서야 한다. 아니 이 더위를 피해 떠나야 한다. 한동안 뜸하던 캠핑이 어느 방송프로그램 덕분에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떠난다고 그만이 아니다. 갯벌체험, 산촌체험, 농촌체험에 숲체험, 등산하기. 체험해야 할 것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잠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아이들을 위해서라 하건만 아이들은 관심도 없고, 더위에 피로에 짜증만 쌓여간다. 휴가. 휴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휴가(休暇)’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학교, 직장 따위의 단체에서 일정 기간 동안 쉬는 일 또는 그런 겨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쉰다’는 말은 또 무엇일까. 역시 사전에서 찾아보면 ‘피로를 풀려고 몸을 편안히 두다’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거나 멈추다’로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휴가라고 하면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일이나 활동을 그치거나 멈추지 않고 더 부산을 떠는 것일까?

    휴가철뿐만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일을 마치고도 운동이다, 취미생활이다 자신을 몰아붙인다. 일요일이라고 집안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낼 수도 없다. 가족과의 나들이, 집안일에 행사 참여…. 그래서 월요일이 더 피곤하다는 직장인들. 쉰다는 말은 잊혀진 지 오래다. 우리는 이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상태가 된 것이다.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이들과 숲으로 갈 때가 있다. 자리에 앉아 5분 동안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고 가만히 숲속의 움직임에,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고 한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아우성이 터진다. 흔들흔들 몸을 사방으로 흔들어댄다. 괜히 옆의 아이를 집적대거나 헛웃음을 웃는다. 낮은 소리로 혼자서 중얼대는 아이도 있다. 3분이 지나면 아예 일어서거나 ‘5분 안 지났어요?’ 큰 소리를 치는 아이들이 생긴다. 아이들조차 소란스러움에 길들여져서 가만히 있는다는 것이 불편하고 못 견딜 일이 된 지 오래인 것이다.

    이번 휴가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계획으로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말 그대로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거나 멈추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집에서 아이들을 안고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다. 멍청히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으면 어떻고 TV 앞을 지키며 못 봤던 연속극을 보면 어떠랴. 뒹굴뒹굴 방바닥에 뒹굴며 아이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이다.

    집을 떠났다고 꼭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닷가에서는 파도를 바라보며 온종일 멍하니 앉았어도 좋고, 숲에서는 새소리에 귀 기울이며 눈 감고 있어도 괜찮을 것이다. 낮에는 종일 잠을 자고 밤하늘의 별들에 빠져보면 새로운 감정들이 솟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이번 휴가는 사전에서 말한 대로 활동을 멈추고 가만히 있어보자.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내 속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를 둘러싼 것들을 느끼는 일이다. 굳이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면 여린 것들이 먼저 내게로 다가온다. 새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느껴지고, 눈곱만큼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된다. 그것마저 어려우면 제발 방학한 아이들 늦잠이라도 자게 하자. 가만히 두자.

    김영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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