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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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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고향의 향기- 하순희(시조시인)

  • 기사입력 : 2014-08-0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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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팔월이다. 뜨거운 폭염 아래 만물은 수확을 준비하느라 더운 숨을 내쉬고 있다.

    솟구치는 물길 따라 부서지는 푸른 파도/ 마음의 이랑마다 스미는 그리움 되어/ 뜨거운 태양빛 아래/ 지친 꿈을 여물린다.// 손 놓아 보내버린 뜻 없는 세월에도/불 이었다 물 이었다 온몸 저린 환희였다./저 혼자 떠돌던 구름/비가 되어 내리고//제 가진 아픔들을 제 각각의 저울에 달며/작열하는 하늘 향해 날아오르는 목숨덩이/가을을 예비케 하소서/뜨거운 생의 한가운데// ‘졸시-여름의 기도 하순희’

    여름이 한창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한 줄기에도 가을로 향한 그리움이 스며 있다. 펄펄 염천 아래 땀 흘리는 분들의 노고에, 가을을 준비하는 모든 것에 감사드린다. 기다림을 익힌 인연들이 성숙한 수확을 가능케 할 이 시간! 삼라만상은 행복하여라!

    고향은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떠오르는 부모님처럼 힘을 주는 행복 비타민이요 행복 충전제이다.

    내 고향 산청은 이런 무더위에 생각만 해도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고개만 들면 보이고 법계사의 종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던 곳, 내게 있어 고향은 언제나 돌아가고픈 어린 날의 행복한 추억이 서린 곳이요 이담에도 돌아가고 싶은 정겨운 곳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땐 부모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계시지 않는 지금은 보고픈 마음, 그리운 마음이 들 때 퍼내도 마르지 않고 영원히 샘솟는 우물처럼 내 마음의 갈증을 해갈시켜 주는 곳이다.

    조선의 대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님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산천재와, 그 앞뜰에 봄이면 한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고고한 기품과 지조를 은은한 향기로 내뿜어 길손을 맞아주는 남명매도 내 마음의 그리운 성소이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덕천서원, 그 앞뜰에 우람하게 서 있어 가을이면 노오란 황금종소리를 들려주는, 그 당시엔 귀하던 은행 알을 섬으로 따내던 은행나무며, 지금은 세심정이 서있는 자리로 흘러가던 도랑물에서 멱을 감고 고동을 줍던 어린 날이 영화의 한 장면이 되어 지나간다.

    오빠들이 피라미떼를 따라 천렵을 하고 줄배를 따라 건너던 덕천강, 논과 밭을 적시며 무수한 생명과 곡식을 기르는 경호강의 맑고 깨끗한 물줄기와 경호강 래프팅, 신라 천년의 불교유적이 살아있고 출가 전 성철스님이 머물며 정진하셨다는 대원사, 성철스님의 생가 터에 세워진 시간 밖의 절, 즉 시간(時間)과 공간(空間)을 초월한 절이라는 뜻의 ‘겁외사’,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하던 길에 하룻밤 머무셨다는 남사 예담촌의 이사재, 단계마을을 거쳐 합천으로 가셨다는 백의종군 길을 따라 걸어 보는 것도 뜻깊은 일이요, 예담민속마을, 단속사 옛터의 정당매를 보며 밭 어귀에 세워진 서산대사와 남명 선생님의 시구도 마음에 새겨 보는 청량제이다.

    고향 - 그 원형의 그리움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이 여름 달려가, 잡다한 세상일 잊고 고향의 향기로 마음을 적시고 휴식 후에 오는 건강함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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