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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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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운문과 산문 사이- 조재영(시인)

  • 기사입력 : 2014-08-0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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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작년에 동화시로 데뷔를 했다. 오랫동안 동화에 대한 관심을 뒀으나 운문에 몰두한 세월이 길어 산문의 영역인 동화에 성큼 발길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둘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동화시에 도전을 해 본 것이다. 나는 당선 소감에서 동화시를 ‘시의 옷을 입은 동화’라고 적었다. 동화적인 내용을 운문적인 형식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동화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동화시 장르로 작품을 모집하는 곳은 그 잡지가 유일했고, 이전에는 아무도 동화시로 데뷔를 한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동화시가 무엇인지 문인들조차 개념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앞으로 동화 열심히 쓰십시오.’ ‘동화가 아니고 동화시입니다.’ ‘동화시라고요?’ 이런 대화들이 몇 번 거쳐 갔다.

    동화시를 창작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백석 시인이었다. 그가 동화시를 창작하게 된 배경에는 그의 독특한 문단 경력과도 연관이 있다. 백석은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데뷔는 소설로 먼저 했다. 그러니 ‘이야기’가 시에 담기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백석 이후에 다시 동화시를 창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독자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였다. 그 애매한 경계 때문이었다.

    동시를 쓰든지, 아니면 동화를 쓰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다. 동화시는 자칫 동화가 되거나 동시가 될 소지가 너무 많았다. 즉, 내용이 중시되면 동화처럼 보이고, 형식이 중시되면 동시처럼 보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동화시는 ‘시’라고 불리는 만큼 동시의 영역에 있어야 마땅하지만, 형식보다는 내용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동화의 영역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동화시라고 생각하며 적은 글’을 적어서 지인들에게 보여주자 일문학을 전공한 한 선생님께서 ‘일본 동화는 요즘 대부분 이런 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고 보면 근래의 저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동화책들은 읽기 쉽게 산문을 운문처럼 배열하고 있다. 외형적으로 보면 시의 ‘행’과 비슷하지만 동화는 엄연히 산문의 영역이고, 동화시는 운문의 영역이다. 그 속에는 리듬과 비유 등이 들어간다.

    나는 근래에 다양한 상상력과 재미를 주는 호시 신이치의 쇼트 쇼트(short short, 초단편 소설)를 즐겨 읽고 있다. 작가는 1000편 이상의 작품을 적었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새로운 장르를 창작하는 작가들이 늘어났음은 당연하다. ‘열쇠’라는 작품에는 우연히 주운 열쇠에 집착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밤에 한 남자가 아주 특별하게 생긴 열쇠를 주웠다. 이후 그는 수십 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그 열쇠에 맞는 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늙어서야 그 열쇠에 맞는 문을 직접 제작할 생각을 한다. 열쇠와 문이 만나는 그 순간 행운의 여신이 나타나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남자는 잠시의 침묵 뒤에 추억만 필요하고, 그것은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얼마나 멋진 상상력인가? 소설에서의 열쇠와 문처럼 동화시도 가장 조화롭게 내용과 형식이 만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원을 들어주는 행운의 여신은 없을지라도 더 많은 독자들이 찾는 친숙한 장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조재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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