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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9) 김복근 시인

내 삶과 사유의 근원은 남강의 물과 바람

  • 기사입력 : 2014-08-1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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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복근 시조시인이 그의 소년시절 놀이터이자 생장의 자양분이 돼 준 남강가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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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강은 유장하고, 화정의 벌판은 넓었다. 내 삶과 사유의 근원은 남강의 물이고, 바람이었다. 이월 초하룻날이면 어머니는 어린 나의 손을 잡고 이른 새벽 강으로 갔다. 강물은 깡마르게 얼어붙었지만, 안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뭔가를 주문처럼 외며, 강 건너 바위를 바라 절을 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나도 절을 했다. 샤머니즘이라고 웃을 일이 아니라 이러한 행위를 통해 자연의 위력을 배우고 익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웅덩이에서 배운 수영 실력을 뽐내기 위해 강을 건너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건넛마을에 수박서리를 가기도 하였으니 고약한 짓은 일찍부터 배운 셈이다. 강물은 잔잔하였지만, 때로는 거칠었다. 한여름 홍수가 나면 들판은 말할 것 없고, 집 안 마당까지 흙탕물이 출렁거렸다. 어쭙잖은 수영 실력으로 윗마을에서 떠내려 오는 드럼통과 돼지를 건지겠다고 홍수 속을 뛰어들기도 하였으니 무모한 기질은 이때부터 싹튼 것 같다. 때로는 피라미처럼 때로는 고라니처럼 강과 들판을 헤매고 다녔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지는 주로 남강이었다, 저학년 때는 가까운 강으로 갔지만, 고학년 때는 정암철교까지 걸어서 갔다. 전지미에서 정암철교까지의 남강은 내 소년 시절의 놀이터였고, 생장의 자양분이었으며, 꿈의 산실이었다. 돌아보면 어렸을 때의 이러한 체험이 생태주의에 대한 학문적 바탕이 됐고, 작품 세계와도 무관치 않아 내 문학의 텃밭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젊은 날 한때 나의 핏줄은 투명하여/세상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었다/물무늬 숨 가쁜 삶을 걸러낼 수 있었다/수직으로 이는 파문 속 보인 내 가슴엔/고갯마루 넘어가는 저녁 해 머문 자리/달리다 지친 세월이 별무리로 뜨려는가/고향 강, 너 없으면 나는 겨울이다/그리움 깊이만큼 그림자 길게 내려/언젠가 돌아가야 할 내 마음이 흐르고 있다 (‘겨울 남강’ 전문)

    남강 유역에서 목가적인 생활을 하다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가고파의 서정이 배어 있는 마산으로 나오게 된다. 부모형제와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서 대여서점의 책은 거의 다 빌려 읽었다. 남독에 가까웠던 이 시기의 독서는 유익한 자양분이 됐다. 책을 읽다 지루하면 바다로 간다. 소년시절을 강가에서 보냈기 때문인지 나는 바다가 무조건 좋았다. 봉암 해변에서 학꽁치를 낚기도 하고, 지금의 용마고등학교 앞 바다에서는 꼬막을 잡아 연탄불에 구워먹기도 했다. 가포해수욕장에서 헤엄을 치다 파도를 탈 줄 몰라 짠물을 마시기도 했지만, 돝섬으로 구실로 돌돌개로 참 많이도 돌아다녔다.

    저간의 내 시는 몇 가지 갈래를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 나는 인연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사람은 인연에 의해 만나게 되고, 만남에 의해 사연이 생긴다. 이 인연을 포착하여 사연을 노래한다. 역사적 인물을 현대화하여 묘사하기도 하고, 그 의미를 유추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차츰 산업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물상을 노래하게 된다. 자연과 인간의 문제로 관심이 바뀌었다.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현대 문명과 생태 문제 같은 현실적인 사안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발효과정을 거쳐 투명하게 증류함으로써 부드러우면서 쏴한 맛이 감돌아드는 시조. 읽고 나면 향기로운 여운이 남아 의미가 함의되어 있는 아름다운 시조. 우리의 입맛, 우리의 영혼을 촉촉하게 적실 수 있는 한국적 사유가 담겨 있는 시조를 빚고 싶었다.



    지나온 길 돌아보면 푸르고 맑아진다/살다보면 야박한 세상이 눈물겨워/한 줄기 바람을 따라 출렁이는 은빛 파문//흐르다 갈라지다 굽이에서 합쳐졌다/더해도 하나/빼도 하나/저 빛나는 응집(凝集)/서로를 잡아당기는 연가를 부르고 있다//물이 물을 사랑하면 내(川)가 되고 강이 된다/‘솟구쳐 오르려면 몸을 낮추어야 해’/감돌아 속삭이면서 뒤꿈치에 힘을 준다 (‘물’ 전문)



    돌아보면 나는 평생을 물과 함께 살았다. 남강에서, 가고파 바다에서, 한려수도가 보이는 거제까지 잠시도 물을 멀리한 적이 없다. 윤재근 선생께서 내 시조를 읽고 물밑에서 달을 씻는 기미가 보인다며, 상선약수(上善若水 노자) 수지취하(水之取下 맹자)를 증거로 아호까지 수하(水下)로 주셨으니 이제 이름까지 물을 안고 살게 됐다.

    시인은 왜 시를 쓰고, 자연을 노래하는가. 그것은 언어의 정수인 시의 주술력으로 쓸모의 노예가 되어버린 존재의 가치를 바로잡으려는 시인의 의도와 맥을 같이한다. 인간은 모든 존재를 용도와 효용성에 목적을 두고 판단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시는 이러한 도구적 속성을 뛰어넘어 자생적이며 무목적적인 자연의 속성을, 또는 정체되지 않고 새롭게 생성되는 존재의 속성을 구현하려는 시인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언어는 파동에 의해 에너지가 생성된다. 언어의 중추신경에 의해 에너지가 생기게 되고,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는 언어의 정수다. 언어에 에너지가 있다면, 시가 주술의 힘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무용해 보이는 시가 때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은 언어의 정수인 시가 주술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시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집과 자존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새로움을 시도해야 할 때가 되었다. 부질없는 일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과 인식체계를 바꾸어 새로운 의식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

    나는 내 고향 의령을 잊은 적이 없다. 그 중심에 남강이 흐르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면 남강이 보이는 언덕에 초막 한 채 지으리라. 생각만 해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대한 패러다임을 읽어내고, 남강의 유장한 흐름처럼 개성과 감성이 살아 숨 쉬는 시조를 쓰고 싶다.


    <김복근 약력>

    △1950 의령 출생 △생태주의 시조연구(문학박사) △‘시조문학’ 천료 △시집 ‘는개, 몸속을 지나가다’, 저서 ‘생태주의시조론’ 등 △경남문협 회장, 한국시조시협 부이사장, 거제교육장 △현재 천강문학상 부위원장, ‘화중련’ 주간



    <김관수 약력>

    △1956년 고성 출생 △개인전 15회 △경남사진학술연구원 원장, 대구예술대 사진영상과 겸임교수, 경남국제사진페스티벌 운영위원장, 한국사진학회 이사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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