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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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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그칠 때 그치고 멈출 때 멈추라!- 최환호(경남은혜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14-08-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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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머. 한·중·일 세 사람이 국가명예를 걸고 돼지우리에서 오래 버티기 시합을 했다. 맨 먼저 한국인이 뛰쳐나왔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기에 포기도 빨랐다. 다음은 약삭빠른 일본인이 튀어나왔다. 한참 후에 돼지가 나오는 게 아닌가.

    놀라 들여다보니 중국인이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다. 역시 ‘만만디(慢慢的)’였다.

    우리는 정말이지 그칠 줄도, 멈출 줄도 모르는 족속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식민지 신생독립을 이룩한 85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초고속 산업화와 민주화를 달성했으며, 그도 성이 차지 않아 오로지 질주 또 질주한 결과 드디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을 뿐만 아니라, 2050클럽까지 가입했다.

    그간 그침과 멈춤은 우리 근·현대사에 있어 두려움과 패배의 동의어였으며, 배반이자 역적이었다. 오로지 ‘중단 없는 성장’만이 지상최대의 명령이었기에.

    허나 햇빛이 밝을수록 그늘은 더 짙은 법. 숨 가쁜 무한질주의 관성은 피 튀는 투쟁과 극한의 부조리와 병폐를 동반할 수밖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등이 그 방증 아니던가.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그리고 오락·연예마저도 승자독식의 전쟁터로 변질됐으니…. 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레빈의 말처럼 “우리는 속도에 중독돼 있고, 속도는 우리를 자극하고 몰아댔기에.”

    미 샌디에이고대 법학·경제학 교수인, 랭크 파트노이의 주장. 의사결정과 시간을 다룬 심리학·행동경제학·신경과학·법·금융·역사 분야 연구 성과를 종합해 정밀 분석한 결과, “속도에 쫓길수록 경쟁력은 더 떨어진다(‘속도의 배신’)”고 지적한다. 토론토대 샌포드 드보 교수의 경책.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사람은 독서시간이 줄고 일과 시험준비도 벼락치기로 하는 경향을 보인다.’ 빠른 속도가 시간을 아껴주기는커녕 효율성도 낮다는 증거다.

    바야흐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 왔다. 그침과 멈춤의 타이밍을 포착하는 역량이 필요한 창조와 문화의 시대. 성철스님은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아래 절에서 삼천 배부터 하고 오라 시켰다. 그러면 백 마디를 해도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도 한두 마디만 해도 다들 족해 돌아갔다지 않은가.

    하버드대 윌리엄 파워스 교수의 지적대로 광속시대, 디지털 세상에 대한 맹신과 의존은 사람을 더 초조와 불안에 시달리게 해 심한 경우 주의력결핍장애(ADT) 증세도 야기한다(‘속도에서 깊이로’). 플라톤·세네카·셰익스피어·구텐베르크·소로·맥루한 등 오늘날 못지않은 변혁기에 탄생한 위대한 인물 7명의 삶을 통해 내놓은 저자의 해결책은 단순명쾌하다. ‘가끔은 세상과 거리를 두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 보라’는 것이다.

    일찍이 우리의 옛 선비들은 “그칠 때 그치고 멈출 때 멈추라”는 지혜를 실천했다. 아시아 최고 갑부 리카싱도 “멈춤을 안다(知止)”는 뜻의 액자를 사무실에 걸어놓고 마음에 새긴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야 비로소 꿈틀거리기 시작해 활발한 창조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모기 겐이치로, ‘브레인 콘서트’).” 고요한 휴식을 통해 대뇌창고에 잠들어 있던 탁월한 전술, 지혜, 창의가 깨어나기 때문이다.

    세계 경세가들의 지적. ‘현시대가 난세이며 나락으로 더 떨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한다. 특히 총체적 난세일수록 졸속 결행, 그 한 방에 ‘훅∼’ 갈 수 있기에 그침과 멈춤의 전략은 필수다.

    “바람과 꽃의 맑고 아름다움, 깨끗한 눈과 달의 밝음은 오직 고요한 사람만이 주인이 될 수 있다.(風花之瀟灑 雪月之空淸 唯靜者爲之主. ‘채근담’)”

    최환호 경남은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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