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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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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엘론 머스크씨에게- 윤재웅(동국대교수 문학평론가)

  • 기사입력 : 2014-08-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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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론,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

    안녕, 엘론?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왔네요. 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돌기 시작하죠? 동아시아 농경문화권에서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이 무렵을 ‘처서’라 부릅니다. 처서가 되면 왕성한 여름기운이 수그러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책도 많이 읽곤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엘론, 당신은 24절기 내내 바쁘죠? 당신 이름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해서 셰익스피어 식으로 말하면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처럼 현란하고 아름답죠. 21세기형 슈퍼 히어로, 혁신의 아이콘, 제2의 스티브 잡스, 영화 ‘아이언 맨’ 주인공의 실제 모델…, 당신이 창업한 회사들의 면면 또한 세계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하죠. 태양에너지 기업 ‘솔라시티’, 친환경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 인류의 화성시대를 개척하려는 민간 우주선 제작업체 ‘스페이스X’. 그곳의 CEO가 자산 91억달러의 43세 미남자라니, 많은 이들에게 어찌 경이와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테슬라가 보유한 300여개의 특허권을 모두 개방해 버린 당신의 대담한 결정을 보면 충격 그 자체죠. ‘기업이 빠른 혁신을 계속하면 기존 특허권이 의미 없게 된다’는 당신의 선언은 삼성과 애플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국가경쟁력 생태계

    엘론,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건 엘론 머스크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걸 당신도 알죠? 우리나라에도 미래의 엘론들이 있지 않겠어요? 풋내기 공학도가 단순한 엔지니어로 기업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창의적 상상력과 도전정신으로 사회의 틀 자체를 바꿔나가는 과정을 당신은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잖습니까. 사람들은 그걸 미국의 힘이라고 진단하는데요, 당신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더군요. …미국은 누구에게나 창업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준다. 대학에서도 체계적으로 창업교육을 시키고 국가적인 지원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그러니 아이디어와 기술력을 갖춘 사람이 벤처회사를 설립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엘론 머스크, 대담한 도전’, 41면)

    결국 시스템 이야기네요. 대학과 기업과 국가가 미래의 수많은 엘론들을 위해 어떤 시스템을 만드느냐가 국력을 좌우한다는 건데, 이는 국가의 진정한 내공이죠. 교육과 생산과 관리의 주체들이 상호 공생적으로 협력해서 발전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겁니다. 헌데 저 수많은 청년들을 어쩌면 좋겠어요. 10대 20대를 온통 공부에 매달려 전력투구했는데 사회에 나오니 일자리 부족하죠, 선망하던 기업에 취업했다 해도 거시구조에서 보면 패스트 팔로어 체제로는 퍼스트 무버 체제를 따라잡을 수 없다 보니까 기업 경쟁력이 금세 뒤처지는 겁니다.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다 포기해버리는 안타까운 엘론, 엘론들…. 문제는 이들이 진정한 엘론으로 다시 태어나기 힘든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는 거죠. 국가가 책무를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정치인들이 헛된 싸움만 계속하고 있기 때문 아닌가요?

    독서가 힘이다

    시스템 탓, 정치인 탓…. 남 탓만 하고 있다간 해결되는 게 없죠. 그래서 개인의 구체적 행위의 좋은 사례를 찾아봤어요. 엘론 머스크씨, 당신의 이력 중 이채로운 건 독서더군요. 당신은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죠. 동생을 비롯해 주위의 친구들이 모두 장난감에 빠져 지낼 때도 당신은 하루에 10시간 이상 책을 읽었죠.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어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빠져들었던 소년. 호기심 많고 질문을 많이 하던 엘론.

    우리나라 엘론에겐 어림없는 이야기죠. 초등학교 때까지는 경쟁적으로 책을 읽는데 중학교만 가면 갑자기 이상해져요. 입시 위주 교육정책의 대표적인 폐해인데 그게 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최고수준이 되면서 전 연령대로 확대되네요. 나이가 들수록 책을 더 안 읽는 나라란 말씀이죠. 미국·영국·프랑스 등과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곳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걱정돼요. 난 미래의 엘론들이 우리나라의 희망이라고 꿈꿔요. 그들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윤재웅 동국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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