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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의 텃밭] (11) 서인숙 수필가·시인

새벽하늘 별밭은 나의 글밭… 천국같던 성당 정원엔 시의 꽃씨 뿌렸네

  • 기사입력 : 2014-08-2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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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인숙 수필가가 창원시 마산합포구 완월동에 있는 완월성당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서 수필가는 어릴 적 할아버지와 새벽미사 가는 길에 보았던 별밭이 자신의 글밭이 됐다고 했다./김관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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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인숙 수필가가 어릴 적 할아버지를 따라 새벽미사에 참석하곤 했던 완월성당 앞에 서 있다.


    새벽하늘의 별밭은 내 문학의 고향이다. 글을 일구는 글밭이다. 어릴 적 새벽이면 할아버지 등에 업히거나 지팡이를 잡고 따라 갔던 완월성당은 아주 멀었다. 그때는 버스도 택시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남성동에서 완월성당까지는 밭과 논을 지나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만 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뿌-연 회색빛 속에 빛나던 별을 보며 내 별인 듯 얼마나 가슴 뛰었던가. 지금도 새벽하늘의 별을 좋아하는 내 시의 보고이다.

    성당의 새벽 미사는 타오르는 촛불 속에 갖가지 꽃들이 장식되어 기도소리와 성가의 울림은 인간보다 더 높은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게 했다. 그때 프랑스 신부님이 가르치는 커다란 책 속의 그림은 천당과 연옥, 지옥의 그림이었다. 지옥에 간다는 죄가 무엇인지 놀라면서 무서웠다. 그 성경 책 속의 예수님과 마리아 그림이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루오 그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는 해방 후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그런 까닭인가 일찍 미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는지 돌을 모으고 조개껍데기를 모았는데 그것이 고미술품까지 수집하게 된 시초인지 모르겠다. 그런 것들은 내 문학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선조들이 남긴 유물을 통해 고대, 현대, 미래를 넘나들면서 어떤 형상을 작품으로 시도해 왔다. 내가 백자가 되고 백자가 내가 되는 수법을 활용하여 수필과 시를 써 왔다.



    밤새 그리던 그림 속 문양이

    어디론가 사라진 뒤

    다시 돌아와

    원시인 듯 벽화를 그려놓는다.

    알 수 없는 문자. 동물. 나무

    멀리 사라졌던 시간이

    새로운 시간으로 바뀌어

    햇살 눈부실 때

    남은 별 하나

    멀리 빛나는 기도였다. - 시 ‘새벽’



    완월성당은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시대였다. 프랑스 목신부와 배신부가 돌과 돌로 쌓은 돌 성당이다 성당 옆에는 커다란 정원에 나무와 갖가지 꽃들이 피고 지고 있었다. 정원을 프랑스 식으로 가꾸는 신부님 곁에서 꽃씨를 건네며 따라다녔던 그때 내 마음에 시의 꽃씨를 심었을까? 검은 꽃씨의 모습과 신비는 지금 내가 꽃을 사랑하게 된 동기였을까? 정원은 천국인 듯 아름다웠다.

    어쩌다 슬프거나 외로울 때 그 정원의 커다란 동백나무 등에 기대어 바위에 앉아 먼 합포만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옥빛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돛배 한 척이 하얀 물길을 여는 길을 따라 내 마음도 따라 나섰다. 그 곳에서 내 사춘기를 보냈다. 그 시절 여고 문예반에 있었던 나는 내 안에 하얀 물길처럼 시의 물결이 굽이치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월은 흘렀다. 나는 수필과 시를 쓰는 문인으로 성장했다. 절망과 가난을 겪으면서 죽음도 보았다. 그런 속에서도 문학을 향한 꿈과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1965년 평론가 조연현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바다의 언어’를 발표하면서 수필을 쓰기 시작했다.

    수필은 문학의 장르 중 가장 자유스럽고 누군가가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라 했지만 그곳엔 철학, 미학, 역사 그리고 자기 인생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참으로 어려운 분야였다. 지금은 시각적인 시대의 변화로 문장이 짧고 시적인 분위기의 수필을 애호하는 흐름이기도 하다. 이후 1979년에 평론가 조연현 선생의 추천으로 시 맷돌을 발표하면서 시작 활동을 했다. 지금 나는 허구성을 배제하는 사실적인 수필보다 시에 대한 열정이 강렬하다. 시는 자유와 해방을 누리면서 무한한 상상으로 그림을 그리듯 음악 같은 그런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은 고요하다

    어디선가 흘러오는 울림 따라

    흐르고 흐르는 물줄기

    닿을 수 없어

    그냥 가버리는 먼먼 어디인가

    물 깊이에서 솟아 오른 갈대들의 꿈

    사랑의 맨 처음 사랑 같은…



    아무도 붙들지 말라

    어느 것 흐르고 변치 않은 것이 있을까

    말이 없어 물로만 말하는

    저기! 저 강물을 보아

    아프다 못해 스러지는 마음 -시 ‘흐르는 강물’



    이렇듯 시의 무한한 상상과 서정 속에 인생을 엮고 즐기며 살고 있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사람이고자 한다. 나는 언제부터 소리 내어 읽거나 마음속에 뇌던 글이 있다. 나는 스피노자가 쓴 이 글을 수시로 외치면서 절망과 회의와 좌절을 이겨 왔다. ‘세계의 종말이 아무리 명백하더라도 나는 오늘 능금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 읽고 외치는 시가 있다. 영국시인 ‘브레이크’의 시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상을 알기 위해 손바닥 안에 무한을 붙들고 시간 속에 영원을 붙들어라.’ 이 얼마나 감격스런 시인가. 세상을 흔들고 바꾸어 놓은 스티브 잡스가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시라 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에게 할 수 있게 하는 시가 아닌가 싶다. 예술과 과학의 결합으로 위대한 발명품을 세상에 내놓은 스티브 잡스. 그는 예술지상주의자라 했다. 문학 또한 과학과 결합되는 작품을 시도하는 경향은 결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는 길일 게다.

    나의 오늘은 세상에 태어나기 전 가톨릭 신자여서 신을 향한 믿음과 의지 없이는 나의 존재는 무의미하다. 그리하여 문학은 나의 인생이요 삶이다. 과연 문학은 무엇인가 왜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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