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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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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구두- 문옥영

  • 기사입력 : 2014-08-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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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하던 남편이 입원했습니다

    금식 사흘 만에 남편은

    내게 자유를 주지 말고 밥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출근할 수 없는 남편을 인정할 수 없는 나는

    퇴근길의 발소리만 기억했습니다

    깜빡 졸면서도 문 밖으로 피가 쏠렸습니다

    남편을 더듬던 버릇은 벼랑으로 구르고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

    캄캄한 현관문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눈가에 번진 먼지 얼룩

    귀 언저리 해지고 한쪽 어깨 늘어진 그

    그제서야 남의 편이 아닌 내편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남편도 나도 미처 챙기지 못한 그

    나보다 더 남편을 기다려주는 그가 고마웠습니다

    간호사 몰래 타락죽을 끓여 가던 날

    남편 없는 집에서 그와 함께 잠을 자고

    270밀리미터 그와 함께 티브이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를 의지했고

    그는 나를 말없이 지켜주었습니다

    ☞ 그녀가 남편과의 금실이 좋은지 나쁜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조용하고 차분한 그녀가 남편을 이렇게 시 속에다 가둘 줄도 안다는 사실이 더 재밌다. 의지할 수 있게 내편만 들어주는 남편 사랑해요, 출근하지 않아도 변함없이 기다려주는 남편 사랑해요, 나를 위해서 귀 언저리 해지고 한쪽 어깨 늘어진 남편 사랑해요, 나보다 더 나를 기다려주는 남편 사랑해요, 그녀는 남편을 위해 타락죽만을 끓여간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믿음을 그릇에 담아갔고, 그동안 보이지 못했던 쑥스러운 사랑을 가져갔다. 어쩌면 그 그릇이야말로 많은 불평을 담아도 넘치지 않는 고마운 남편이다. 진심 어린 시를 가슴에 내민 시인과 그 시를 읽는 하나뿐인 독자로서의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지 않겠는가 싶다. 김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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