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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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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한가위 단상(斷想)- 이상목(경제부장)

  • 기사입력 : 2014-09-0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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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위가 다가오니 나이에 걸맞지 않게 괜스레 들뜬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느꼈던 풍성한 추석 서정 때문이지 싶다. 당시는 막 고속도로가 깔리면서 국토의 상전벽해가 시작되던 때이기도 했다. 정권은 전국 일일생활권이 실현됐다며 떠들썩하게 홍보했고, 국민은 신세계를 만난 듯 흥분했다. 객지로 나갔던 형님 누나들은 잘 닦아놓은 도로망과 교통수단의 혜택으로 명절 쇠러 오는 길이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그것이 유토피아의 실현인 양 여겨지면서 전통의 가치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던, 서글픈 시대상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불과 4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접어들고 있다. 교통·통신의 혁명적 발전 덕택이다. 지구촌 어디와도 실시간 화상대화가 가능하고, 비행기로 10시간 남짓이면 도달할 수도 있는 ‘좁은 세상’이 된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매우 먼 거리지만, 시공(時空)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기술의 진보가 가져다 준 결과물이다. 그러다보니 지구 반대편의 별것 아닌 사건·사고도 주요 뉴스로 취급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어제 아침 방송뉴스에서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아파트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제 ‘지구촌’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만큼 근접성이 강화됐다는 방증이다.

    지구촌 일일생활권 실현은 인류 문화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지금으로선 순기능이 될지 역기능이 될지 예측이 쉽잖다. 하지만 두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 하나는 아프리카에서 창궐하는 에볼라와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의 이동이 매우 쉬워졌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괴질이 특정지역에 한정된 풍토병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이제는 수만㎞ 떨어진 곳에서도 전염을 걱정하며 전전긍긍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바이러스마저 첨단 교통수단의 혜택(?)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지역별 경제장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엔 블록을 치고 그 안에 속한 경제주체들끼리만 경쟁하면 됐다. 그래서 경쟁자의 숫자가 적었고 생존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촌 73억명과 무한경쟁을 해 이겨내야만 생존을 장담할 수 있는 혹독한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와 개별 국가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이라는 강력한 시스템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지구촌 경제체제로의 편입은 국가경제의 지속가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만 것이다. 때문에 비교열위에 있는 한계산업은 유지가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농축산업이 한계산업이 되고 있다. 소규모 영농이 주류여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고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이는 도도한 문명의 진화에 따라 거역할 수 없는 가치질서의 변동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추석을 앞두고 경남도청 앞에서 수십명의 농민들이 농기계를 반납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농 부산경남연맹 소속 농민 30여명이 이앙기를 끌고 도청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공권력에 의해 저지됐다. 이들은 오는 17일 진주를 시작으로 23일까지 18개 시·군별로 농민대회를 열어 정부의 농업정책을 규탄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역부족이라는 것을 그들도 잘 안다. 정부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농민도 살고 정부도 사는 지혜로운 해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래저래 이번 추석 서정은 40여년 전의 그것과는 정반대가 될 것 같아 맘이 편치 않다.

    이상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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