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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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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정푸른

  • 기사입력 : 2014-09-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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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살을 아는 이여

    이가 닿은 곳을 시간이라고 하자

    갈변하는 인연의 색깔에 이유를 달지 말자

    거기는 눈물이 닿지 않는 곳

    아무도 돌아가지 못할 그믐이다

    베어 문 자리에서 돋아난 기억은

    물병자리 여인의 시큼한 암내 같은 것

    눈물이 마른 자리에서 기어 나오는,

    저녁으로 건너가는

    사람아

    정체를 들키지 말고 사라지자

    아직 덜 익은 것의 의미를 찾아

    가지 그늘을 흔들지 말자 너무 익은 것들의 악취가

    우리들의 생이다

    들추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어둑한 백내장으로

    다가오는 구름으로 덮어두자



    상처는 밖으로 자라나온 속살일 뿐,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소유다

    ☞ 긴 머리의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는 눈이 다 잠기도록 웃고 있을 때였지. 웃음은 붉은 껍질을 벗겨내고, 하얀 속살 드러난 사과보다 더 상큼하고 예뻤어. 아무리 오래 두어 갈변해도 한때 가 닿지 못한 눈물의 기억 숨어 있을까. 한 입 베어 문 자리마다 설익은 인연이 그늘을 건너가고, 끝내 익어서 툭 떨어진 우리의 생은 바닥에 뒹굴지라도, 그녀의 웃음 뒤에 감춰진 상처는 밖으로만 자라는 의미 없는 속성일 뿐. 그렇다. 아무도 돌아가지 못할 이유를 가진 그믐, 물병자리 그녀가 달콤한 암내를 숨기며 걸어 나오네, 덜 익고 어두운 자리마다 새로운 색깔의 가지가 환하게 돋아나네.

    어두운 백내장을 가진 구름이 마지막 악취를 걷어내는 저녁, 싱싱하게 물오른 시인의 시간도 돌아왔네. 오랫동안 정체를 숨겨왔던 그 눈부신 시간 비로소 푸른 이름으로 돌아왔네. 김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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