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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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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성명남

  • 기사입력 : 2014-09-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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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장 안의 호박 줄기가 목을 길게 빼고

    생면부지의 감나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혼자서는 곧게 설 수 없는 줄기의 생이

    손 잡아줄 누군가를 향하여 먼저 다가선 것이다

    늙은 감나무를 위해 덩굴손의 방향을 바꿔 놓고

    노끈으로 잘 묶어 두었지만

    이미 뜨거워진 감나무의 가슴에 손을 넣어 본 뒤였는지

    하룻밤 사이 다시 몸을 틀어 곁가지 하나 꼭 잡고 있다

    그들의 동거가 시작됐다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햇볕 나눠주고

    잎을 맞대어 세찬 장맛비 막아 주었다

    덩굴손은 군데군데 노란 꽃등을 켜고

    나무의 해거리로 절명하는 풋감을 지켰다

    서로 한몸이 되어 긴긴 여름을 났다

    영근 햇볕을 수확하는 계절

    감나무에서 호박이 편안하게 늙는다

    호박 덩굴에서 감이 붉게 익는다

    ☞ 세상은 누구나 더불어 살아가는 게 맞지, 함께 시간을 견디면 밑동 굵은 감나무에서 늙은 호박 제자리 찾아 몸 눕혀 익어가듯, 호박덩굴 안고 감 달고 맛있게 익어가듯 서로가 서로에게 편하게 영글지도 몰라. 어울려 산다는 말은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지친 등을 내주며 척박한 삶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말 또한 얼마나 눈부신가. 뜨거운 햇볕 나눠주고 장맛비 막아주는 막역한 노동 말없이 견디면, 노란 꽃등을 켠 붉고 알찬 열매가 뜨겁게 기다릴 텐데, 어색하게 손 내밀며 긴 안부를 건네지 않아도 진심으로 반갑게 될까. 한 마음과 한 마음이 동거를 시작한 풋풋한 계절 지나, 시인의 시처럼 영근 햇빛 수확하는 계절 어느새 저만치 다가왔네, 이제라도 어때 슬쩍 방향을 바꿔 한발 먼저 다가서볼까 우리. 김혜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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