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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9) 전세진적(傳世珍籍)- 후세에 전해져 온 진귀한 책

  • 기사입력 : 2014-09-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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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3년 음력 2월, 안동 도산(陶山)에 사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곤양군수(昆陽郡守)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의 초청으로 곤양을 방문했다.

    합천을 거쳐 의령에 있는 처가에 도착해 본부를 두고서, 한 달가량 경남 일대의 선비들을 방문하거나 명소를 둘러보았다. 함안의 모곡(茅谷), 창원의 무학산(舞鶴山), 월영대(月影臺), 웅천(熊川), 진주 월아산(月牙山)의 청곡사 (靑谷寺)와 법륜사(法輪寺), 금산(琴山), 촉석루(矗石樓) 등지를 둘러보고, 곤양으로 가서 관포를 만나 시를 주고받고 조수(潮水)의 원리에 대해서 논했다.

    원래는 지리산(智異山)도 유람할 계획이었으나, 어머니가 편찮다는 연락이 와서 바로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이 여행에서 100여수의 시를 지었는데, 그 가운데 80여 수가 남아 있다. 이 시들은 당시 경남 지방의 문화와 풍속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때 퇴계의 장인 묵재 허찬(許瓚)이 의령 가례(嘉禮)에 살고 있었다. 그는 진사에 급제한 뒤 더 이상 벼슬을 하려고 하지 않고 시골에서 조용히 독서하며 지내는 선비였다.

    사위 퇴계도 이미 진사에 급제해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묵재는 퇴계에게 성리학을 공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책인 ‘근사록(近思錄)’을 선물했다.

    선물하면서 책 맨 뒤에다가 ‘가정십이년계사중춘기망허수옹증이계호(嘉靖十二年癸巳仲春旣望許壽翁贈李季浩)’라는 18자의 글자를 적어서 줬다. 그 뜻인즉, ‘가정(명나라 세종의 연호) 12(1533)년 음력 2월 16일에, 허수옹(수옹은 허찬의 자)은 이계호(계호는 퇴계의 자)에게 준다’라는 것이다.

    ‘근사록’은, 주자(朱子)가 그 친구 여조겸(呂祖謙)과 함께 송나라 성리학자들의 말 가운데서 공부하는 데 요긴한 것만 뽑아서 만든 책이다.

    묵재가 준 책은 1370년 고려 말기에 간행된 것이다. 나중에 정조(正祖) 임금이 퇴계의 유품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도산서원에서 몇 점을 대궐에 보냈는데, 이 책도 함께 갔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간행된 책은 거의 없다. 퇴계의 후손인 은졸재(隱拙齋) 이수홍(李守弘)의 후손들이 대대로 잘 간직해 오다가 근년에 한국국학진흥원에 기증했다.

    국학진흥원에서는 이 책의 가치를 알고 보물 지정을 신청했다. 퇴계의 후손들이 잘 보존해 왔지만, 이제 국학진흥원에 기증했으니 이 책은 영구히 보존될 것임에 틀림없다. 지난 9월 12일에 대구 매일신문에 이 책에 관한 기사와 책의 사진이 실렸는데, 그 사진에는 묵재의 친필 18자가 선명하게 나와 있었다.

    필자는 묵재의 17대손이다. 매우 부끄러운 일이지만 필자의 집안에는 묵재의 필적이나 책은 단 한 점도 없다. 만약 이때 묵재가 이 ‘근사록’을 선물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도 당연히 없어졌을 것이다. 책은 책을 아끼고 볼 사람에게 가야 한다. 요즈음은 도난이나 훼손의 위험이 없는 국가기관에 기증하거나 위탁해서 보관하는 것이 영구히 보존하는 길이다. 그 책을 짓거나 남긴 조상에게 효도하는 길이다. 그리고 공부하는 여러 사람들이 활용할 수가 있다.

    * 傳 : 전할 전. * 世 : 인간 세.

    * 珍 : 보배 진. * 籍 : 문서 적.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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