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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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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문화기획]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

예술로 다시 태어난 마산의 역사, 사람들을 만난다

  • 기사입력 : 2014-09-22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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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세월. 마산 합포만을 환하게 비췄던 달은 오늘도 여전히 떠오른다.

    합포만에 뜨고 졌던 달은 여느 바다를 비추는 달처럼 고요했거나 숨죽인 빛이 아니다.

    온갖 불편부당에 저항해 세상을 바꿔보고자 했던 한 선비의 칼날 같은 의지가 담겼다.

    왕조의 무능과 부패, 신분제도의 모순 때문에 선비가 내려다본 합포만의 달은 한낯 태양보다 오히려 강렬하고 빛났다.

    선비는 혼자의 힘으로 꺾을 수 없었던 세상의 부조리에 등을 돌렸다.

    달빛에 너무 부끄러워 고개도 돌렸다.
     
    선비는 참담한 심정을 달 그림자 속에 녹여냈다. 이후 많은 선비들이 합포만이 내려다보이는 월영대(月影臺)를 찾아, 그를 기리며 그의 마음과 궤(軌)를 맞추고자 했다.

    달은 정확히 하루를 시간으로 떠올라 합포를 환히 비추고 있건만. 지금의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아시아 11개국 작가 42명(팀) 참여

    2014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오는 25일 개막돼 11월 9일까지 열린다.

    올해 2회째를 맞는 창원조각비엔날레에는 한국을 비롯해 몽골, 베트남,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중국, 타이, 타이완, 파키스탄 등 아시아 11개국 작가 42명(팀)이 참여해 작품을 설치 중이다.

    비엔날레는 창원시립문신미술관, 돝섬, 마산항 중앙부두, 부림시장·창동시장·오동동시장 등이 자리 잡고 있는 창동 일대가 무대다. 1회 때와 달리 전시장소를 도시 곳곳으로 확대했다. 공공장소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넓히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조각작품 외에도 퍼포먼스, 지역의 조사연구를 바탕으로 한 아카이브, 시민 참여형 작품 등 과정을 중요시하는 프로젝트를 포함시켜 조각 영역의 확장을 모색했다. 나아가 예술의 공공성, 삶 속으로 스며드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시대의 미술이 훗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기를

    창원조각비엔날레의 주제는 ‘달그림자’(월영·月影)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 전시장소가 집중돼 있는 마산합포구 월영동에 있는 월영대(月影臺)에서 착안했다.

    월영대는 9세기께 당나라에 유학해 필명을 떨쳤던 고운 최치원이 말년에 지금의 마산인 합포에 머물며 세운 정자다. 그는 신라왕실의 무능과 부패, 신분제도의 모순에 실망한 채 관직을 버리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해인사로 떠나기 전 월영대에서 시문을 읊었다. 이후 많은 문객들이 월영대를 찾아 그의 높은 학덕과 예술정신을 기렸다.

    시대를 초월해 뜻을 교감하는 이들이 찾아오는 월영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달그림자’는 선조들의 예술정신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이 시대의 미술 또한 훗날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는 ‘달그림자’가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마산합포구는 물류의 집산지이자 해운(海運)의 발달로 한국의 근대산업을 주도한 지역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에서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한 이 지역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전시 장소를 마산 원도심인 합포구 곳곳으로 펼쳐놓은 것도 이런 이유다.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전시

    ◇돝섬= 돝섬의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돝섬의 고유한 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각작품을 추가로 설치하는 대신 유원지 시절 건축됐던 크고 작은 시설물들을 예술작품으로 새단장한다. 조전환 작가는 이곳에 자리 잡은 불상의 이야기를 추적해 작업을 진행 중이고, 옥정호 작가는 마산이 고향인 부모님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신작을 구상하고 있다.

    임옥상·승효상은 해상유원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팔각정과 찻집을 리노베이션 중이다.

    또 천대광은 목재 작품인 ‘마음자리’를 설치했는데, ‘빛’을 통해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관객들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이고 있다.

    관객은 작품의 서로 다른 높낮이의 데크를 이동하며 미로와 같은 통로를 이동하거나 걸터앉아 쉬거나 구조물을 탁자로 사용할 수 있다. 작품은 방문객들에게 편안한 쉼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마산항 중앙부두= 시민공원으로 개발하려는 창원시 정책에 부응해 환경친화적인 공공조각과 시민참여적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공공성이 강조된 세 점의 영구설치작품과 시민참여형 작품을 설치해 시민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수준 높은 예술을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또 비엔날레 기간 중 열릴 예정인 가고파국화축제와 연계해 많은 사람들이 중앙부두를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곳에서 한원석 작가는 최근 철거한 사일로의 잔해를 활용해 새로운 조형물인 ‘달의 창’(月窓·MoonWindow)을 제작했다. 중앙부두의 역사를 되새기고 시민들이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을 공유하는 매개물이다.

    일본의 안테나는 지역 주민들에게서 모은 버려진 물품과 전자제품들로 만든 ‘The Void Ship’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이 처한 현실과 마산의 문제를 연결해 고민해보는 질문을 던진다.

    창원시립문신미술관=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은 비엔날레 탄생의 출발점. 이곳에 설치된 작품들은 내러티브(인과관계로 엮인 실제적 혹은 허구적 이야기)가 강한 작업들이다. 물질이나 구조보다는 서사적이고 서술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을 통해 각 지역의 역사, 문화, 전통을 이해할 수 있다.

    천경우 작가와 시민들이 협력해 완성되는 ‘Place of Place’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퍼포먼스 과정과 그의 귀결로 자연스레 형성되는 일시적 조형물, 그리고 오브제로서의 지도 책으로 완성됐다. 작업은 상실돼가는 지역성(地域性)과 사적인 기억을 담은 고유의 감성적 장소의 인식에 관한 질문을 즉흥적인 표현을 통해 시도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 프로젝트는 독일 남부 도시 괴핑겐에서 괴핑겐미술관과 협력으로, 한국과 독일 두 도시에서 진행돼 동시에 종료됐다.

    마산 원도심= 마산 원도심 일대에 산재해 있는 공간을 활용, 젊고 전위적인 현대미술가들의 관객참여형 작품은 물론 도시재생과 커뮤니티아트에 관심을 가진 작가들이 원도심 재생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비엔날레 참여 작가와 창동예술촌 입주작가, 창원지역 작가와의 협업을 통한 커뮤니티아트 프로젝트인 셈이다.

    김월식 작가와 ‘무늬만 커뮤니티’는 시장불(Market Buddha)을 내놓는다. 작품은 창동 일대 전통시장 상인들과 지역민들의 삶에 대한 애한, 문제의식, 고민, 소원, 희망을 담은 모뉴먼트로 시장에서 매일 소비되는 종이박스로 제작하는 부처상이다. 작가는 45일간 시장에 거주하면서 역사 속의 마산, 한국 근대화와 산업화 속의 마산 일대 시장들의 맥락들, 동시대 지역을 기반으로 삶을 이어가는 시장 상인들의 리서치를 진행했다.

    기본적인 구조는 보물 제431호인 창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의 형식을 차용했지만 지역민들과 상인들의 요구와 욕망, 좌절과 시기, 바람과 희망 등에 의해 더해지거나 버려지는 작품의 결과는 어떤 형상일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중국 인수지엔은 남편과 딸이 합류한 ‘Chopstick Series’(젓가락 시리즈)를, 대만 첸칭야오는 시장 상인과 시민들과 함께 국민체조 플래시몹을 진행한다.

    이문재 기자 mjlee@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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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 창원시 에너지 증폭…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비엔날레 만들겠다”

    /인터뷰/ 예술감독 최태만 국민대 교수

    “창원조각비엔날레는 지금의 미술을 통해 창원, 특히 마산합포구가 지니고 있는 역사를 재조명함은 물론 2010년 마산, 창원, 진해가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가지게 된 에너지를 예술을 통해 증폭시키고자 한다.”

    예술감독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이번 비엔날레가 지역사회와 동행하는 행사임을 강조하며 “비엔날레는 전통적인 의미의 장르 개념에 한정하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의 합일체로서 장소 문제를 작품 제작과 배치, 소통의 원리로 삼아 지역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해온 공공미술, 커뮤니티아트의 가능성을 마산합포구라는 장소에 접목해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실행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어 “주제어 달그림자(月影)는 최치원은 물론 그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마산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달그림자’는 덧없이 사라져버릴 그림자를 좇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처럼 우리 현실에 연결된 예술을 추구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개념이다”고 밝혔다.

    최태만은 ‘한국현대미술 베이징전’,‘멋진 신세계의 거주자들’(2000), ‘오귀스트 로댕: 위대한 손’(2002), ‘인권, 사람이 하늘입니다’ 등을 기획했다. 2004부산비엔날레 현대미술전 전시감독, 2009년과 2010년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의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가’를 기획했다. 미술평론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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