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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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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 유일한 여성 프로파일러 조혜란 경사

명탐정 코난 즐겨보던 소녀, 범죄 추적자가 되다

  • 기사입력 : 2014-09-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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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내 유일한 여성 프로파일러인 경남지방경찰청 소속 조혜란 경사가 과학수사대 버스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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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양들의 침묵>(1991)에서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은 피부를 벗겨 가져가는 연쇄 살인마를 뒤쫓기 위해 한니발 렉터(앤소니 홉킨스) 박사를 찾아간다. 렉터 박사가 사람을 살해한 뒤 인육을 취하는 범죄 전력이 있어 수감됐기 때문.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영화에서 옷차림만으로 스털링의 생활환경을 분석하는 렉터 박사의 모습을 기억하지만,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렉터를 통해 용의자 심리를 분석, 범인의 윤곽을 좁혀가는 스털링에게서 프로파일러(profiler)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프로파일(profile)은 사전적 의미로 사람의 옆모습을 말한다. 이는 수사기법의 프로파일링도 유사하다. 사건을 틀어서 보는 것. 일반적인 수사기법에서 발견할 수 없는 부분들을 측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혈흔과 흉기 등 현장 증거물이나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의 행동·심리 패턴을 분석해 범인의 프로필을 뽑아내는 작업이다.

    도내에도 프로파일러가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도 스털링처럼 다부지고 집요한 여성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경남지방경찰청 소속으로 지난 2007년부터 과학수사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도내 유일한 여성 프로파일러 조혜란(35·여) 경사를 19일 창원에서 만났다.

    누구나 궁금할 법한 사실인 ‘왜?’에서부터 인터뷰는 시작됐다. 강력사건 현장을 누비며 용의자와 범인을 만나는 일은 현장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강력팀 형사에게도 녹록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대답은 간단했다. 조 경사는 “어렸을 때부터 명탐정 코난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건 현장에서 추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일이 속시원했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 만화에서 시작된 호기심은 자라면서 소설 셜록 홈스 시리즈와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로 이어졌고, 점차 사람에 대한 호기심으로 발전했다. 조 경사는 “같은 사람인데 왜 그런 일을 하게 되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프로이드와 정신분석학을 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그런데도 꿈은 막연했다고 한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 될까?’하는 생각도 해봤다고 한다. 그녀는 지난 1998년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 진학해 사회심리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국내에서는 범죄심리학 전공이 생긴 건 몇 년 뒤 경기대학교가 처음이었으니까,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막연하게 수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심리학과 관련된 전공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졸업 이듬해인 2004년 같은 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심리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사람의 인지·행동·사고 등을 분석하고 어떤 동기에 따른 행동인지, 집단일 때와 개인일 때 행동은 어떻게 다른지 연구했다.

    대학 선배였던 이수정 현 경기대학교 교수를 도와 ‘촉법 소년들의 비행성 평가 연구’도 진행했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계에서 진행하던 연구였다. 범죄수사에 대한 관심은 지속됐지만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그녀는 대학원 졸업 후인 2006년 서울에서 마케팅 분야 컨설팅 업체에 취직했다. 그녀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프로파일러를 뽑는 시험은 많지 않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청 특채 정도지만 정기적으로 모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기회는 있었다. 졸업 한 해 전인 2005년 경찰청에서 프로파일러 1기를 뽑았지만 대학원 1학기를 남겨둔 터라 지원하지 않았다.

    입사 이듬해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프로파일러 2기를 뽑는다는 뉴스였다. 그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험에 응시했다. 조 경사는 “경쟁률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3대 1에서 4대 1 정도 됐던 것 같다”며 “전공면접과 집단면접, 적성검사 등을 통해 15명을 뽑았는데 운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로파일러 특채는 지금까지 4기를 선발할 정도로 문이 넓지 않다.

    어렵게 정한 진로였지만 현장 실무는 대학·대학교 공부와 달랐다. 국내외 논문을 통해 제소자와 범인을 분석한 자료를 많이 접했지만, 현장은 더 많은 정보가 어지럽게 널려 있기 때문이다.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연구한 자료, 사건 현장의 상태(족적, 침입경로), 범행도구, 피해자의 모습, 도주경로, 용의자의 진술 등을 취합해 범인의 행동·심리 패턴을 파악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조 경사는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편의 딸이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며 “아무래도 계모의 행동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조 경사는 “계모의 심리상태가 아주 불안했다”며 “경찰에 실종 신고한다는 남편을 만류하기도 했고,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탐문조사 후 도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 경사는 “나중에 붙잡히긴 했지만 추가 조사에서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침이 마르는지 입술에 혀를 갖다대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사건은 딸이 돌아오며 단순가출로 종결됐다. 이 사례를 통해 행동분석은 큰 퍼즐의 한 조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지만 이 여성은 빚이 있었고 가명을 사용하는 등 신분이 노출될 것을 꺼렸다고 한다.

    조 경사는 “사람의 행태만으로 모든 것을 밝혀내기는 어렵다”며 “행동분석을 통한 정보는 일종의 직소퍼즐과 같은데, 정보를 하나씩 맞춰가는 것이 중요한 사례다”고 설명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프로파일링이란 뭔지 궁금해졌다. 조 경사는 “우리 업무는 ‘족적’ 업무와 상당히 유사하다”며 “족적 업무는 모든 신발의 발바닥 모양을 모아서 현장에서 나온 것과 대조해 신발을 특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그런데 족적을 통해 신발의 특정 브랜드를 찾아낸다고 해서 용의자를 특정할 수는 없다”며 “범죄분석 역시 용의자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의심되는 유형을 찾아 용의선상을 좁힐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8년째 업무를 하고 있는 그녀에게도 힘든 상황은 있다. 조 경사는 방화살인 사건 범인 조사 당시를 회상했다. 조 경사는 “돌이킬 수 없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분명 처벌해야 한다”고 못 박으며 “그러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범인의 생활환경을 들을 때는 몹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조 경사는 “범행동기를 듣다 보면 우발적인 사고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며 “그럴 때는 빨리 잊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조 경사는 “프로파일러로서 갖춰야 하는 좋은 능력 중에 하나가 빨리 잊어버리고 안 좋은 경험들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며 “감정적 충격에 둔감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 정치섭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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