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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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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간호사 출신 병원 본부장 배영희 씨

“일거리로 보였던 환자가 이젠 돌봐야 할 가족 같아요”
30년 전 시작한 간호사, 힘들었지만 꾸준히 환자 돌보다 보니 관리자가 됐네요
힘든 병원 사정에도 지역 봉사활동하며 역량 확대 위해 공부도 계속했죠

  • 기사입력 : 2014-10-1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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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희 김해중앙병원 본부장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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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 일을 시작할 때는 환자가 일거리로 보였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돌봐드려야 할 가족이라 생각했어요. 뒤늦게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았죠. 30년 동안 고생하며 익힌 ‘간호사정신’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을 뿐입니다.”

    지난 2010년부터 4년 동안 김해시간호사회 초대회장을 했던 배영희(54)씨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30년의 간호사에서 적지 않은 규모의 병원 관리자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3월부터 김해중앙병원 본부장을 맡고 있다.

    간호사 출신 여성이 500병상 규모의 병원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를 갖는 것은 해당 병원은 물론 도내에서도 드문 사례이다.

    배영희 김해중앙병원 본부장은 “초기에는 간호사를 그만둬야 하나 갈등이 많았는데 꾸준히 환자를 돌보다 보니 어느 순간 관리직이 됐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간호사로서 그의 신념을 보면 그럴만한 이유를 읽을 수 있었다.

    배 본부장에 대한 오해가 많다. 간호사 출신이 그것도 여성이 처음으로 병원 본부장이 되자 주변에서는 “병원 내에 인맥이 있는 것 아니냐”, “지역 누군가를 통한 것 아니냐” 등 뒷말이 나왔다.

    배 본부장의 고향은 경북 성주이다.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30년 전 부산의 한 병원에서 간호사의 길에 들어섰다. “간호사로서 자부심이 많았지만 현실은 너무 힘들다는 것밖에 없었어요. 야근이 반복되면서 환자가 마치 나의 일거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죠.”

    정신없이 환자를 돌보다 13년이 흘렀다. 결혼을 하면서 김해중앙병원으로 오게 됐고 현재까지 17년 동안 근무하고 있다. 1996년 간호사로 입사한 김해중앙병원은 그야말로 초라했다. 150병상에 불과한 이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생각에 너무나 서글펐다.

    “김해에 왔을 때 이 병원은 150병상밖에 안 될 정도로 초라했었죠.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너무 힘들다 생각뿐이었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버텼죠.”

    그러던 중 병원에 위기가 찾아왔다. 2009년 병원 재단의 부도로 인해 경영진이 교체됐고, 이어 직원 구조조정 분위기에 휩싸였다. 당시 간호과장이었던 배 본부장은 병원 안정화를 위해 밤낮으로 경영진과 머리를 맞댔다. 환자만 보고 일하고 있는 후배 간호사들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너무 힘들었어요. 병원이 조금 활성화되면서 안정화를 찾기 시작했죠. 올해 530병상으로 증축하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본부장을 맡게 됐어요. 밑바닥부터 시작한 간호사의 사명을 잃지 않은 덕이라 봅니다. 간호 업무가 환자에게는 가장 고귀한 일이니까요.”

    그는 김해중앙병원 입사 후 지역 봉사활동에 매진해 오고 있다. 1997년 김해지역 간호 부서장들을 모아 ‘아테리(의료용어로 ‘동맥’을 의미)’라는 봉사단체를 구성해 15년 동안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을 찾아다녔다. “지역 간호사들이 15명이 주축이 돼 의사 2명을 섭외해 추진하게 됐죠. 서로 각자 병원 일에 바빴지만 간호사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읍면동을 찾아가 거의 밥상을 펴고 진료를 할 정도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많았죠.”

    봉사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참하는 간호사는 20명 정도로 늘었고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어린이보호시설, 노인보호시설 등으로 확대됐다.

    7~8년 전부터는 김해에 외국인이 많은 점을 감안해 외국인 근로자를 상대로 의료봉사를 지금껏 해오고 있다. “외국인 무료진료는 타 병원 간호사들의 참석이 어려워 우리 병원 자체적으로 추진했고, 아직까지 계속 이어오면서 외국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있죠.”

    힘든 병원 사정 속에서는 이 같은 지역봉사를 해온 배 본부장은 17년의 간호생활이 짧게만 느껴졌다. “사람들은 17년 동안 간호사로 있었다 하면 놀라기도 하는데 저는 사실 3~4년밖에 안 된 것처럼 너무 짧게 느끼고 있어요. 간호사가 지역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생각이 들었죠. 더 많은 분야의 간호사 일을 찾기 위해 공부를 하며 배우고 있어요.”

    그의 이 같은 신념은 전문대 출신인 그를 박사까지 만들었다. 배 본부장은 김천과학대 간호과를 졸업하고 다시 4년제 보건관리학과, 사회복지대학원 석사를 거쳐 보건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4년 전 김해시간호사회가 설립되고 초대회장을 맡으면서 지역사회 활동은 더욱 확대됐다.

    배 본부장은 지금도 계속 공부 중이다. 작은 규모의 본부장실 한쪽 책장에는 책들이 빼꼭히 채워져 있다. 간호사로서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는 후배 간호사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간호사의 말 한마디, 환자를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가 환자들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단순한 간호사 일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야간근무를 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지역에는 아직도 간호사가 부족하죠. 과거나 지금이나 간호 일을 하면서 사명감을 많이 잃기도 하죠. 제가 30년 동안 병원에서 터득하고 지켜온 ‘간호정신’을 물려받는 후배 간호사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는 3년여 전부터 간호학원을 차렸다. 주변에서는 ‘돈벌이’로 생각하지만 그보다 후학 양성에 기여하고 싶어서이다. 30년 동안 경험을 간호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사회 환원이라 믿고 있다. 특히 자격증만 가지고 간호사를 양성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는 어릴 적 꿈이 탁아소를 하는 것이었죠. 어릴 때부터 어려운 사람을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원래 있었나 봐요.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제대로 공부를 못했죠. 뒤늦게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교수가 되려고 한 게 아니에요. 항상 공부해서 내가 있는 자리에서 더 많은 것을 전수하고 싶어서였죠. 제 인생은 가르치는 것으로 끝날 것 같아요. 간호사의 역할이 작은 힘이지만 환자들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곳이 많구나 하는 자긍심을 이어주는 것이죠.”

    그의 위치는 병원 관리자이지만 그의 마음은 간호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글= 김호철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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