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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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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훈(月暈)- 박용래

  • 기사입력 : 2014-10-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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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 둑,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렘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월훈(月暈).

    ☞ 외로운 사람은 귀가 밝습니다. 온 몸으로 사람의 자취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잠 안 오는 긴 밤, 나팔처럼 커다래진 귀가 듣는 것은 지붕의 지푸라기 풀려 내리는 소리, 처마 밑으로 깃드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 살아있는 것이라서 따뜻할 것이 분명한 새들의 깃 치는 소리는 ‘온기’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오래오래 생각하게 합니다. 목울음이 터져 나옵니다. 귀뚜라미가 대신 울어주네요. 외톨이로 남은 겨울 귀뚜라미가요.

    지도에는 없는 마을. 당신이 가만히 밀고 들어설 모과빛 창호지문은 어디 있습니까? 아무도 찾아올 이 없는 이를 기다리는 외딴집 노인. 그 ‘노인’은 지금 당신의 ‘누구’입니까?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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