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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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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실수와 격려의 힘- 김복근(시조시인·경남문협 고문)

  • 기사입력 : 2014-10-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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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단한 감동이었다. 울림은 컸다. 문화시민의 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가 됐다. 지난 7일 3·15아트센터에서 노산 이은상 선생을 기리는 ‘노산가곡의 밤’이 열렸다. 올해는 3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사)합포문화동인회가 가곡을 연주해온 뜻깊은 해다. 주최 측에서는 이를 기리어 의욕적으로 행사를 준비했고, 시민들도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3·15아트센터에 모였다.

    막이 올랐다. 첫 연주는 소프라노 박정원의 무대였다. 너무 긴장했을까. 이은상 시 채동선 곡 ‘그리워’를 연주하면서 두 소절도 못 부르고 중단하는 실수를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때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1000여명의 관중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한마디의 야유도 없었다. 목을 가다듬은 성악가는 다시 ‘그리워’를 연주했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 님’이 아니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 그리워 찾아 왔더니 가슴이 따뜻한 마산 시민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두 번째 곡을 연주했다. 이번에는 이은상 시 홍난파 곡 ‘사랑’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곡을 연주하면서 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박정원은 쓰러질 것 같았다. 한양대 음대 교수인 박정원은 일찍이 세계 최대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CAMI에 스카우트되어 미국, 캐나다, 프랑스, 일본 등 국제무대에서 활약했던 대표적인 소프라노가 아닌가. 오늘 연주회는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때 다시 박수가 터졌다. 처음보다 훨씬 큰 소리였다. 격려는 위대한 힘을 발휘했다. 한동안의 박수 끝에 박정원은 다시 무대에 섰다. 연주는 멋지게 이어졌다.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디 마오(…) 반 타고 꺼질진대 아예 타지 말으시오.’

    바리톤 고성현이 이은상 시 현제명 곡 ‘그 집 앞’과 이은상 시 김동진 곡의 ‘가고파’를 연주하고, 이어서 박정원의 ‘꽃구름 속에’와 고성현의 ‘산아’가 연주됐다. 우레 같은 박수가 터졌다. 화답이라도 하듯이 두 사람은 앙코르곡 ‘오 솔레미오’를 열창한다. 화음은 아름다웠다. 슈만의 연가곡을 연주한 이병욱 지휘자와 TIMF앙상블, ‘시인의 사랑’을 노래한 테너 김병오, 진행자인 피아니스트 임수연 모두가 정성을 기울여 긴 시간을 공연했다. 박정원은 이렇게 큰 무대에서 이렇게 큰 실수를 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치명적 실수를 한 것이다. 박정원의 성악은 위기였다. 주최 측은 말할 것 없고, 자칫 마산의 문화행사 하나가 없어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그러나 마산 시민은 위대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시민의 따뜻한 격려가 박정원도 살리고, 노산가곡의 밤도 살려낸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감동은 진하게 다가온다. ‘노산가곡의 밤’ 30년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1976년 10월 23일 태양극장에서 테너 엄정행을 비롯한 5명이 열연한 이후 오현명, 백남옥을 비롯한 기라성 같은 성악가들이 30년을 공연하면서 시민들의 문화수준을 이렇게 성숙하게 만든 것이다.

    좋은 음악회는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날의 실수와 격려는 오랜 기간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해 온 잠재교육의 효과다. 연주자와 청중이 혼연일체가 된 사랑의 금자탑이다. 물론 우리는 더 큰 욕심을 가질 수 있다. 당연히 실수가 없어야 하고, 더 좋은 성악가를 초빙해야 하고, 더 좋은 뮤지션이 함께하는 음악축제를 염원할 수 있다. 지역 성악가의 참여와 새로운 가곡의 창작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 오늘의 이 실수가 더 멋지게 승화돼 마산 문화의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우리의 서정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 아름다운 가곡, 연주가 이어지기를 갈망한다. 어디서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그날의 감동이 되살아난다. 벌써 내년의 시월이 기다려진다.

    김복근 시조시인·경남문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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