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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0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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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藝), 그리고 만남] (21) 서양화가 정동근과 목공예가 김경수

자유롭게, 뜨겁게… 두 남자의 예술 소통법

  • 기사입력 : 2014-10-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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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공예가 김경수(왼쪽) 창원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와 서양화가 정동근 선생이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외동시장 중앙상가 2층 정동근 선생 작업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김승권 기자/


    깊어 가는 가을날 서양화가 정동근 선생과 목공예가 김경수 창원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를 창원시내 한가운데서 만났다. 계획도시이자 잘나가는 산업도시인 창원 시내 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기이한 건물에 자리한 정 화가의 외동 작업실이 만남의 장소였다. 1970년대 배경으로 찍은 복고풍 영화에서나 볼법한 허름한 상가 건물이 아름답게 번져가는 가을날의 공원 풍경과 묘하게 그림이 되는 곳이었다.

    “창원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일 겁니다. 편리한 오피스텔 작업실에서 이십사오년을 작업했는데, 쌓여 가는 작품 때문에 좁기도 좁고 세월따라 사람도 변하는지 이곳이 너무 마음에 듭니다. 뭔가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좋잖아요?”

    세련된 베레모를 눌러쓴 그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화가라는 직업과 딱 맞아떨어진다. 초기 작품들과 최근 작품들이 하얀 벽면을 따라 걸린 작업실을 둘러 보던 김경수 교수는 고집스러운 그의 작품 스타일과 부지런함에 감탄을 쏟아낸다.

    “최근에 옮겼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오늘 처음 와봅니다. 건물 외관과 작업실 내부는 완전히 다르네요. 환한 갤러리 느낌이 납니다.”

    알고 지낸 지 3년 정도밖에 안 됐다는 두 사람은 우연히 전시장에서 만났다고 한다. 협업을 한 적도 없고 장르가 같아서 토론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일면식이 있은 후에 같이 전시회 관람도 하고 차도 한 잔씩 하는 사이가 됐다.

    “김 교수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다른 분들과는 좀 다른 분위기를 가지셨습니다. 덜 권위적이고, 자유롭다고 할까요? 방랑벽이 있는 것도 저와 좀 닮은 것 같고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들입니다. 마음이 맞는 친굽니다.”

    젠틀해 보이는 김 교수가 우스갯소리처럼 서로를 묶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아이러니한 자평을 한다. 옆에 앉아만 있으라 해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조용히 입을 연 김 교수는 지금의 목공예가라는 예인의 타이틀을 달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벽지 회사에 다녔어요. 당시 여의도에 고층 빌딩이 지어질 때여서 벽지업계가 활황이었지요. 사장이 독일 유학파였는데 디자이너들에게 혜택을 많이 줬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디자인을 가르칠 선생도 없을 때였는데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더라고요. 출퇴근도 자유롭게 했고 제법 편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길에 서면로터리를 걷다가 행인과 부딪혀 들고 다니던 양은 도시락을 떨어뜨렸어요. 언 땅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도시락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그 길로 사표를 냈어요. 대학에 자리 잡기 전에 1년여를 송정에서 낚시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은 정 화가에게도 있다. 20년 가까이 몽돌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전업작가로서의 삶이 고단하단다.

    “돌멩이라 무거워서 그런지 잘 안 팔립니다. 화상들이 다른 것을 그려 보라고 합디다. 어떤 그림이 잘 팔리는지 알기 때문이거든요. 몇 번 다른 소재로 작업을 해봤는데 결국 몽돌 그리기로 돌아오게 되더라구요. 다른 걸 그리면 화가로서 내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 같아 잘 안 됩니다.”

    정 화가에게 몽돌은 인생과 같다고 했다. 방랑끼를 타고 났는지 스케치여행을 핑계 삼아 여기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1995년에 전라도 완도에서 ‘구계등’ 이라는 해변을 만났다. 폭 80m에 길이 700m 정도의 몽돌해변이었다. 아름드리 몽돌이었다. 거제 학동쪽의 몽돌보다 크기가 크고 표정이 다양했다. 보길도, 노화도, 청산도 등 많이 다녔다.

    “돌멩이 보는 재미에 푹 빠졌죠. 몽돌을 보면서 사람에 빗대어 생각했어요. 멀리서 군중으로 보면 다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생김새, 피부색, 성격 다 다르지 않습니까? 몽돌도 그렇거든요. 사람도 태어날 때는 모가 있는 돌과 같은 존재였다가 환경, 교육, 경험을 통해 몽돌처럼 원만한 인격체가 되어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죠. 몽돌을 그려가는 과정이 저한테는 바로 수양이고, 수행입니다.”

    그렇게 수행하는 마음으로 몽돌만 잔뜩 그린 100호짜리 첫 작품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출품했는데 입선작이 됐다. 그 후로 쭉 몽돌을 그렸는데 최근 들어 정 화가에게 변화가 생겼다.

    “큰 병이 오면서 위 절제 수술을 받았어요. 죽다 살았다 싶은 그때부터 갑자기 꽃을 그리고 싶더라구요. 꽃 중에서도 연꽃에 마음을 뺏겼어요. ‘환생’이란 의미도 있고 곧은 대 위에 환하게 피어 있는 연꽃이 이 세상이 아닌 천상의 존재같은 느낌을 주잖아요. 그림의 제목도 그 전까지는 ‘無心’이었는데 ‘드림(DREAM)’으로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몽돌은 현실이고 연꽃은 꿈과 소망의 이미지라고 설명했다. 꽃 외에도 몽돌 바깥의 이미지를 많이 확장해 가고 있단다. 새와 억새 등으로 새로운 꿈을 많이 표현하고자 한다.

    “제 소망을 넣어서 그런지 몽돌 위에 핀 연꽃 그림이 인기가 있어요. 불교 신자분들은 그림 앞에서 합장을 하기도 하던데요. 만다라 같다고. 종교적인 색채를 주려고 한 건 아닌데 의도치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게 재미있어요. 그리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생각이 전혀 다른 곳에서 만나기도 하는 셈이니. 그런데 흥미로운 건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에도 몽돌과 연꽃 그림을 출품했는데 거기서 반응은 또 다르던데요. 동양적인 느낌에 사람들이 관심은 갖긴 하지만 팔리지는 않더군요. 좋은 경험이 됐습니다. 전업작가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철저히 주관적인 작품 세계를 고집하다 대중과의 소통을 고민하게 됐다는 정 화가의 말에 김경수 교수는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 예술인들은 타인을 위한다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주관에 따라 창의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 순수 미술이라면, 디자인쪽은 자기 것만 좇는 작업은 아닙니다. 주관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작업해야 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그나마 저는 크래프트 쪽이라 실용성보다는 창의성에 중점을 두고 순수 미술에 가깝게 다가가고자 노력해왔습니다. 기계로 찍어낼 수 있는 디자인 작품 말고 수공으로 제작한 유일의 작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재미를 주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김 교수의 의도대로 팝 아트적인 쇼핑백과 상자를 소재로 한 그의 나무 작품들은 정동근 화가에게도 신선하게 와닿았다고 했다. ‘뭔 종이봉투를 전시해 놓았나’ 하고 자세히 보니 나무결이 살아있는 목공예 작품이더라고 김 교수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놀라움을 전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인 것같아요. 제 능력의 한계이기도 하고. 목공예 자체가 작품 하나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보니, 지속적으로 뭔가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내기가 힘듭니다. 부산 현대백화점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여자분들이 작품을 사가더라고요. 전시작을 거의 다 팔았어요. 작품을 팔아서 돈을 벌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작업과정을 보면 목공예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김 교수는 최근에 거의 작업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외성, 특이성으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팝 아트쪽의 가벼운 작품을 많이 해왔는데, 생각이 조금씩 바뀌더라고 했다. 올 한 해 안식년 중인 그는 새로운 소재와 주제를 찾고 있는 중이다.

    “요즘 들어 제 작품활동보다 더 잘됐으면 하고 바라는 일이 있습니다. 창원관광타워 건립건인데요. 마산항 앞 매립지 19만평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워를 세우자는 건데 추진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예술대 교수로서 그 사업추진에 참여한 이유는 우리 지역의 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서였어요. 공사비 중 예술인에게 지원되는 액수가 380억원가량이더군요. 단편적이나마 지역 예술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지요.”

    미술인들의 어려움에 대한 얘기가 오가자 개인전 15회 경력의 정동근 화가도 가끔 그림 그리려는 의지가 약해질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보는 이들은 그림에 의미를 많이 둡니다. 우리 미술인들도 대중의 마음을 좀 알아야 될 것 같아요.”

    미술그룹 크레아트 대표를 맡고 있는 정 화가는 내년 9월경 창원과 일본 나고야 개인전을 계획하고 있다. 창원의 국제우호도시인 오가키 화가들과의 교류전도 13년째 이어오고 있다. 일본을 오가며 바쁘다는 정 화가에게 김 교수도 급하게 닥쳐온 일정을 알려준다. 오는 31일 미국 뉴욕과 뉴저지시의회에서 창원대 예술대 재학생들의 전시회와 발표회가 열리는데 위안부 문제를 다룬 퍼포먼스를 포함해서 의미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만남을 정리하는 인사로 정 화가가 김 교수에게 진심 어린 덕담을 건넸다. “어쨌든 스스로 생각하시는 한계를 깨고 새로운 예술적 오아시스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황숙경 기자

    hsk8808@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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