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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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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대변인 김해이주노동자센터 한영학 소장

“이주노동자들은 상품 아닌 땀흘려 일하는 우리 이웃입니다”

  • 기사입력 : 2014-10-2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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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시 동상동 10㎡ 남짓한 인도네시아 근로자쉼터 김해센터에서 한영학 김해이주노동자센터 소장이 최근 외국인노동자의 산재 관련 법원 판결문을 보여주고 있다.


    ◆만남= 지난 24일 오후 3시께 김해시 서상동 외국인 거리. 불과 5분 전 인근 동상동 시장을 지날 때만 해도 보이지 않던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알 수 없는 외국어와 이국적인 음악이 울려 퍼졌고, 눈으로 보고도 읽을 수 없는 낯선 간판들이 즐비했다.

    한영학(45) 김해이주노동자센터 소장과 만나기로 한 곳은 이곳 외국인 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다문화 카페 ‘통(通)’ 앞.

    짧은 머리와 마른 체구, 낡은 점퍼와 운동화를 신은 한 소장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누추하지만 일단 사무실로 자리를 옮기시지요”라며 “사무실이 찾기 힘들어 카페 앞에서 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공간= 그를 따라 1분쯤 갔을까. 외국인 음식점들 사이로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인도네시아 근로자쉼터 김해센터’라는 문구가 적힌 빌딩 문을 열고 그를 따라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계단 입구에 자리 잡은 3평 남짓한 공간. 에어컨이나 난방 시설은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불을 켜도 어두운 곳이었다.

    한 소장은 “1년 전에 머물던 사무실을 사정상 나오게 됐는데 갈 곳이 없어 고민하던 중 인도네시아분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사무실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며 “혼자 일하다 보니 큰 공간은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사무실 옆에는 인도네시아 이주민 7~8명이 생활할 수 있는 거처가 마련돼 있었다. 주로 산업재해로 몸을 다치거나 머물 곳이 없는 이주 노동자들이 지내는 공간이다.

    한 소장은 “비록 사무실이 좁기는 하지만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지낼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얘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좋다”며 웃음 지었다.

    인권을 찾아= 대학생 때부터 노동자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한 소장은 1995년 숭실대학교 노사관계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잠시 노동조합 등을 전전하다 부산을 찾았다.

    한 소장은 부산비정규직상담센터에서 비정규 노동자를 상담하는 일을 5년간 하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포함한 많은 기관이 내국인을 도와줄 수 있는 여건이 충분했던 반면,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대변해줄 수 있는 기관이나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을 안 그는 이주민 노동자들을 위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난 2011년 그는 김해YMCA 외국인 근로지원센터로 자리를 옮겨 외국인 노동자와 상담하는 일을 하게 됐고, 1년 뒤인 2012년 9월 스스로 이주노동자를 위한 ‘김해이주노동자센터’를 개소했다.

    그가 하는 일= 그는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체납과 고용문제 등을 주로 상담한다. 요즘에는 외국인 이혼 상담도 해주고 있다.

    최근 그는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한 한 네팔인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다. 사업주로부터 폭행당한 상처를 증거로 남기는 방법,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는 방법, 고소장을 작성하는 등의 일을 옆에서 지원하고 있다. 변호사가 아니어서 직접 그를 대변하는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법정에 가서 참관하기도 하고 고용센터에서 문서를 제출하며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아가는 등 일련의 작업을 도와줘 무사히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한국말을 잘 못할 뿐더러 복잡한 우리 법을 알지도 못해 폭행과 같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며 “요즘에는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이주 노동자들도 가지고 있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사진과 동영상 등을 찍어 놓으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혼자 걷는 길= 한 소장은 혼자서 일한다. 그리고 상담을 해도 수익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말 그대로 조건 없는 봉사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견디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낮에는 사무실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을 상담해 주거나 직접 찾아오기 힘들면 출장을 나간다. 그래서 그는 운동화를 즐겨 신는다. 밤에는 국제법을 포함한 수십여 개의 이주민 인권 관련법을 보고 최신 판례 등을 읽는다.

    일이 마무리되면 상담을 요청했던 이주민 노동자와 밥을 한 끼 한다. 그것이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1년이 넘는 동안 그들을 위해 일했던 대가다.

    “가치가 없다면 이 일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에 대한 보람과 가치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어렵지만 일을 해오고 있다”

    한 소장이 할 줄 아는 외국어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12개국 이주노동자와 상담을 처리하고 있다. 한명 한명의 이주민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다 보니 주위에서 그를 도와주는 외국인 친구가 많은 것이 비결이다.

    그는 “상담을 할 때 언어적인 어려움을 거의 겪지 않는다”며 “주위에 있는 외국인 식당 주인이나 가게 점원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 선언=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한 소장이 건네준 명함 뒷면에 새겨진 말이다.

    이 말은 1944년 5월 10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제26회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채택된 첫 번째 선언문이다.

    한 소장은 항상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기 위해 이 글귀를 명함에 새겼다.

    그는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과 제도가 이주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직 단순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편견이 없어질 때까지 그들을 돕겠다”고 말했다. 글= 고휘훈 기자

    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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