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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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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터미네이터의 눈물이 나는 두렵다- 김동률(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

  • 기사입력 : 2014-10-30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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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이스 오딧세이’란 전설적인 SF 영화가 있다. 스탠리 큐브릭의 작품이다. 1968년, 영화 개봉 당시에는 인간이 아직 달에 가기 전이었다. 컴퓨터 그래픽도 없었다. 그러나 영화는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손색이 없는 사실적인 화면과 영상미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걸작 영화다. 장황한 설명이나 대사가 거의 없다. 대사가 아니라 영상과 음향으로 이야기를 전달한다. 첫 대사는 영화가 시작되고 25분이 지난 후에야 나오며, 후반 20분에도 대사가 아예 없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강렬한 사운드가 묵직한 느낌을 던져준다. 영화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단연 인공지능 로봇 ‘할(Hall)’이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기능을 정지시키려고 하자 이에 반항해 인간을 공격한다. 이처럼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가 인간의 적이 돼 버린 로봇을 다룬 이야기는 많다.

    최근 일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 ‘페퍼’를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세계 최초로 사람의 감정을 읽는 로봇이 탄생했습니다.” “사장님, 너무 띄우지 마세요. 부담됩니다.” 기자 회견장에서 손 회장과 로봇 페퍼(Pepper)가 나눈 대화다. 페퍼는 손 회장은 물론이고 기자들과도 얘기를 주고받았다. 대화 상대의 말을 알아듣고 그에 맞는 대답을 내놨다. 적외선 센서 등을 활용해 사람의 감정까지 측정한다. 가령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는 모양을 하면 웃지 않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페퍼의 감정인식 능력은 아직은 기초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학습기능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감정을 인지하게 된다고 한다. 미래에는 이처럼 인간의 희로애락을 이해하는 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아득한 시절 무한한 상상의 세계로 이끌었던 ‘아톰’처럼 인간과 친구가 되는 로봇 말이다.

    지난 여름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벤츠 조립공장에서 본 로봇은 충격이었다. 인간 못지않게 복잡한 일을 척척 해내고 있었다. 그래서 MIT의 브린욜프슨, 매카피 교수는 ‘제2의 기계시대(The Second Machine Age)’라는 책에서 “지능형 소프트웨어의 등장으로 구글 무인차, IBM 왓슨 등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과 기계 간의 관계를 재설정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이 같은 일은 상당한 미래에나 가능하겠다. 하지만 나는 로봇을 향한 인간의 집념이 가져다 올 미래에 걱정이 앞선다. 업계는 저마다 로봇의 뛰어난 기능과 상품성에 주목하지만 로봇이 인간처럼 눈물 흘리는 그날이 왠지 두려운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자. 미래의 인류를 구원할 지도자를 위해 스카이 넷과 싸우던 인간 못지않은 로봇이다. 임무를 완수한 그는 펄펄 끓는 용광로에 스스로 몸을 던져 사라지려 한다. 그 순간 주인공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진다. 터미네이터가 묻는다. 도대체 그 액체가 무엇이냐고. 로봇에는 없는 액체에 대해 소년 존 코너가 답한다. 인간은 슬픔을 느끼면 눈에서 뜨거운 액체가 나온다고. 존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로봇 터미네이터는 묘한 느낌 속에 용광로에 몸을 던진다. 로봇 터미네이터가 정작 감동받은 것은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서 터져 나오는 이상한 액체, 즉 인간의 눈물이었다.

    눈물은 말없는 언어다. 여자야 기회만 되면 즉각 넘쳐흐르는 엄청난 양의 눈물을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눈물의 의미는 간단치 않다. 올해는 유난히 눈물 많은 한 해였다. 세월호를 시작으로 사연 많고 곡절 많은 한국인의 눈물은 마를 새가 없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삶이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얼마 남지 않게 되면 점점 빨리 돌아가게 된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 눈물도 점차 메말라 간다. 마음은 아직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 봄날’에 서성거리고 있는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문밖에는 벌써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김동률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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