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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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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이 독자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위기 때마다 빛난 ‘경남의 힘’… 지역신문다운 신문으로 혁신

  • 기사입력 : 2014-11-0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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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독자’ 김 과장의 2015년 1월 2일 ‘조간 경남신문’ 읽은 날

    2015년 1월 2일 오전 4시 30분.

    해가 뜨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어제 가족과 함께 해맞이 등반을 가족과 다녀온 뒤 일찍 잠자리에 든 탓인지 평소보다 빨리 눈을 떴다. 아침을 깨우는 ‘툭’ 하는 소리가 현관에서 났기 때문이다. ‘신문이구나’ 하는 생각에 거실에 불을 켠 뒤 현관문을 열었다.

    ‘경남신문’이라는 선명하게 씌어진 검은 활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낯설다. 한낮에 읽던 것과 다르다. 느낌부터.

    창원의 중견기업을 다니며 입사 때부터 20년간 변함없이 경남신문을 구독하고 있는 김 과장(48·창원시 성산구).

    신문을 천천히 펴들자 채 가시지 않은 잉크 냄새가 기분까지 들뜨게 한다.

    조간으로 새출발한 경남신문을 펼쳐 들자 갓 잡은 생선 같은 신선함과 생동감이 느껴졌다.

    이른 새벽 배달된 경남신문에는 경남의 아침을 깨우는 뉴스가 먹기 좋게 가득 차려져 있다.

    1면부터 한 장씩 천천히 넘기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체육면 등 큰 제목부터 읽었다. 새해에 걸맞게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NC다이노스, 경남FC, LG농구 등 지역 스포츠 스타의 소망까지 펄쩍펄쩍 뛰는 뉴스를 담은 활자가 잘 영근 포도알처럼 지면을 꽉 채우고 있다.

    아침에 경남신문을 받으니 좋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석간 땐 아침에 화장실에서 뭔가 손이 허전했는데 이제 아침에 화장실서도 경남신문을 읽을 수 있다. ‘사람플러스’ 지면을 통해 행사, 결혼 등 지역 사람의 동정뿐만 아니라 한 주일 스케줄도 챙길 수 있다.

    ‘새해 경남에서 달라지는 것들’이란 뉴스를 화장실에서 꼼꼼히 읽었다.

    신춘문예 당선작도 실려 있다.

    한때 문학청년이었던 김씨는 해마다 빠뜨리지 않고 경남신문 ‘신춘문예’를 열독했다. 코를 적당히 자극하는 잉크냄새에 묻어난 활자의 매력에 빠져 신춘문예 발표 때마다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 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당선작은 퇴근 뒤 천천히 읽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경남 출신 잠룡, 대권 가능성은?’이라는 기사도 눈을 잡았다. 수도권 신문에 필적할 만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남권 대표신문’ 경남신문이 경남 출신 대권주자의 움직임과 가능성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스마트폰·SNS 세상을 바꾼다’란 기획기사를 보면서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맞춰 ‘새 세상에 걸맞은 인식과 사고의 전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경남신문이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한 것도 단순한 배달 체계만의 전환만을 뜻하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 “첫 조간 경남신문, 정말 읽을 만했다. 아침신문으로 바꾼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이상규 기자



    ◆경남신문 68년,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

    3·1독립운동의 정신을 창간 이념으로 언론의 횃불을 밝힌 지 68년. 경남신문이 걸어온 영욕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부담없는 글투로 얘기해 볼게요. 1946년 창간한 경남신문이 내년 1월 2일 ‘조간 전환’이라는 혁신을 통해 독자들의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하기 때문이죠.

    경남신문의 출발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3월 1일 언론인들과 실업인들이 모여 마산 서성동에서 발행한 ‘남선신문(南鮮新聞)’이에요. 그때는 주 2회 타블로이드판이었답니다. 창간호를 보고 싶다고요? 안타깝게도 전란과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분실돼 지금까지도 찾지 못하고 있어요.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것은 남선신문 273호(1948년 2월 20일자)랍니다.

    1948년 ‘남조선민보(南朝鮮民報)’로 제호를 바꿨는데요, 당시 신문을 찾아보니 한자 없이 한글로만 쓴 사설이 눈길을 끄네요. ‘백성의 숨쉬는 소리와 마음씨를 한 장의 종이조각을 빌려 올바르게 전하여 드리려 한다’며 언론의 각오를 담고 있어요. 1950년엔 다시 ‘마산일보(馬山日報)’로 제호를 변경하고, 그이듬해부터 1960년까지 현재 신문 크기인 대판 2면 발행 체제를 갖췄답니다. 1960년 들어 3·15의거 등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지역언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지만, 때론 정론 보도에 부족함도 있었음을 자성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1962년엔 4면 양면인쇄가 시작됐고, 비로소 정치·경제·사회·문화면으로 분류해 신문을 발행했더군요. 이즈음 마산일보에서 눈에 띄는 기사는 지금의 마산시외버스터미널이 있는 지역을 취재한 것으로 ‘1300명이 사는 마산 합성부락에 약국이 하나도 없어 주민이 진정했다’는 기사예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죠.

    1966년엔 제호를 ‘경남매일신문’(한글)으로 변경했고, 3년 뒤엔 서성동 새 사옥으로 옮기면서 ‘경남매일’(한글)로 바꿨어요. 그 후 사옥을 합성동으로 옮긴 1976년부터 1980년까지 8면으로 경남매일을 발행했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경남신문이 옛날 경남매일 아이가?”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1978년 5월 11일 신문엔 ‘황소 한 마리 값이 70만원’이라는 기사와, 마산 중앙극장에서 ‘슈퍼스타 하춘화가 하루 동안 공연’한다는 광고도 있어요.

    아직도 많은 분들이 “언제부터 경남신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나?’ 궁금해하더군요. 1980년 7월 30일 신군부에 의해 단행된 ‘언론 자율정화조치’로 그해 12월 1일 진주의 경남일보를 흡수 통합하면서, 1981년 1월 1일 제호를 ‘慶南新聞’(한자)으로 변경했답니다. 이듬해 지금의 창원 신월동으로 옮긴 경남신문은 그 후 1990년 컬러윤전기를 도입해 컬러신문시대를 열면서 16면으로 증면한 뒤 곧이어 20면 체제로 확대했어요. 1994년엔 24면으로 증면했고, 1997년 도내 언론사 최초로 신문제작을 컴퓨터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변화의 대열에 앞서나갔어요.

    경남신문이 순탄한 길만 걸어온 건 아니에요. 2001년 한때 지역경제 위축과 맞물린 경영난으로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2002년 대주주 변경을 통한 증자와 노동조합을 비롯한 구성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어려움을 이겨냈답니다. 그 후 2004년 6월 제호를 한글로 바꿨고, 2011년엔 방송센터 개국 등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답니다.

    경남신문은 위기 때마다 빛난 ‘경남의 힘’이었어요. 독자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친구였으며 경제난국 돌파의 나침반이었어요. IMF 외환위기 때 경남은행을 살리기 위해 도민주 운동을 펼쳤고, 대동그룹을 회생시킨 신문의 역할은 많은 지역민들이 기억하고 있죠. 또한 의령 우순경 총기 난동, 마산을 휩쓴 태풍 ‘매미’ 심층보도, ‘김해 에이즈 여성 방치’, ‘고속도로 경찰 협박 돈뜯은 파파라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첫 보도, ‘문화의 향기, 흔적’ 등 특종기사는 자랑거리라고 얘기해도 될 거예요. 편집부문과 사진부문도 각종 상을 휩쓸며 경남신문의 위상을 전국에 알리고 있고요.

    경남신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본받아야 할 밝은 면은 계승하고 어두운 면은 반성의 거울로 삼을 거예요. 또한 현재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갈 겁니다. 신문다운 신문, 지역신문다운 지역신문을 만드는 것이랍니다.

    어떤 분들은 “석간인 지금도 신문을 잘 만들고 있는데 왜 조간으로 가려고 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시대변화와 생활환경 변화에 따라 배달 문제 등 석간의 어려움은 많답니다. 경남신문은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차별화된 기사로 승부해 왔답니다. 경남신문의 조간 전환은 시대 변화에 따라 지금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읽는 신문이 되도록 하려는 거예요. 흔히들 말하죠, 신문을 세상을 읽는 교과서라고. 그러면서도 신문을 찾지 않는 세태, 어쩌면 그게 가장 큰 위협요인이랍니다. 하지만 이런 독자를 탓할 수는 없어요. ‘기존의 틀’에 안주한 신문의 책임도 있으니까요. 지역신문인 경남신문이 미디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리 지역만이 가진 재료로 기획기사를 만들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경남의 모든 소식이 있는 신문, 경남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효자손 역할을 하는 신문. 바로 그것이 조간 전환을 앞둔 경남신문에 대한 독자의 바람으로 알고 한발짝 더 나아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양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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