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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소프트웨어 교육과 인문학- 김태희(영산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4-11-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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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중반에 걸쳐 활동한 존 케이지는 음악사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피아노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치지 않도록 작곡한 ‘4분33초’를 발표한 것이 그 계기였다. 피아노 콘서트를 하는데 무대에 피아노도 있고, 연주자도 피아노 앞에 앉았지만 피아노를 치지 않는 것이 이 곡이다. 그것은 피아노 콘서트를 보기 위하여 음악회를 갔던 청중들에게는 너무나 의아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존 케이지는 빈 악보를 작곡했던 것이었다.

    존 케이지는 사실 동양사상에 매우 심취했던 서양인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 출신의 조수를 두면서 인도 철학을 접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불교철학을, 주역 등을 통하여 중국의 철학에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어떤 강연에서, ‘유(有)는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무(無)의 축복이다’라고 하였다. 세상 만물은 빈 곳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말로, 아마도 불교의 반야심경에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풀어 쓴 말이리라. 존 케이지가 불교의 이런 개념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반영한 결과가 ‘4분33초’일 것이다.

    피아노 콘서트에서 청중들은 기대했던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소리는, 옆 사람의 숨소리이거나, 바스락거리는 소리, 간간이 웅성거리는 소리, 약하게나마 들리는 환풍기 소리 등이었을 것이다. 앉아 있는 위치가 다르니 사람에 따라 소리는 다르게 들렸을 것이다. 작곡가는 정적을 작곡하였으며, 음악적인 정적을 대신하여 청중이 받은 것은 개개인의 현장에서의 경험이었던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던져진 화두는 이후 음악사에서 새로운 국면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국면의 배경에는 동양사상이 있었던 것이다.

    예술에서의 새로운 시도들은 시간이 가면서 우리들의 생활을 바꾼다. 우리가 즐겨 쓰고 있는 스마트폰은 총체적인 디자인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작은 하나의 기기에 수많은 기능을 넣기 위하여, 그럼에도 쓰기 편하도록 고도의 디자인 정책이 적용된다. ‘경험디자인’은 시각디자인이라거나 제품디자인이라거나 하는 부문별 디자인을 포괄하여, 궁극적으로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겠는가라는 문제로 씨름하는 디자인의 한 장르이다. 나는 이 경험디자인이 60여 년 전 세상에 새로운 음악으로써 세상에 충격을 안겼던 존 케이지의 연장선에 있지 않다 말할 수 없다.

    나아가서 스마트폰만 보더라도 경험디자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디자인과 분리되기 어렵다. 사용자의 경험은 상호작용을 내포하고 있다. 사용자가 하는 행동이 기기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결과가 경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기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결국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감당하게 된다. 이렇게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디자인과 분리되기 어려운 점은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분야 간 창조적 융합이 필요한 하나의 중요한 사례를 제시한다.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배운다는 것은 인문학과 동떨어져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통하여 창조적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문학과의 연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역사적인 사실을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시대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와 같은 공부를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기술도 생각이 뒷받침되어야 창조적 가치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김태희 영산대 게임·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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