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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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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 선재지법(選材之法)- 인재를 선발하는 방법

  • 기사입력 : 2014-11-04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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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라는 말이 있다. 인사를 제대로 해야 국가나 단체, 기업 등 조직이 잘 다스려지고 일도 순리대로 풀린다는 뜻이다.

    조직이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인사가 잘못되면 조직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고, 결국 기울거나 망하게 된다. 때문에 사람을 뽑을 때 심사숙고를 거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재를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고 선발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한마디로 어떤 사람이 좋은 인재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사람을 다루는 일만큼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은 없다.

    역대로 여러 왕조에서는 인재선발에 많은 신경을 썼다. 국가의 운명이 달렸기 때문이다. 옛날 주(周)나라 이전에는 주로 왕실의 친인척들이 대부분의 관직을 차지했다. 민간에서는 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재라 할 사람이 없었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이르면 학자들이 각국을 다니면서 자신의 학설이나 정책을 왕들에게 설파해 발탁되기를 바랐다. 한(漢)나라 때 와서는 각 지역에서 추천을 받아 인재를 등용해 썼다. 위진남북조(魏晋南北朝) 시대에는 몇몇 귀족 집안이 관직을 독점했다. 수(隋)나라 때 처음으로 과거제도가 시행됐으나, 수나라는 37년 만에 망해버려 제도가 정착되지 못했다. 그 뒤를 이은 당(唐)나라 때부터 본격적으로 과거제도가 실시되어 1911년 청(淸)나라가 망할 때까지 지속됐다.

    우리나라는 958년 고려(高麗) 광종(光宗) 9년부터 과거제도를 실시해 1894년 갑오경장(甲午更張) 때까지 실시했다.

    과거제도는 체제에 순응하고, 암기 위주의 기계적인 공부만 하는 사람만 선발하는 점 등 계속 문제가 많다고 지적 당했지만, 노력하는 사람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전 국민에게 학문을 장려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조선시대 과거시험 과목은 주로 작문, 작시(作詩)였는데, 오늘날의 시문(詩文) 창작, 논술시험에 해당된다. 공부 가운데서 가장 단계가 높은 것이 글을 짓는 공부다. 현실과 동떨어진 시험과목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조선시대 과거시험 과목이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각종 시험의 시험문제보다도 낫다고 생각한다. 종합적인 사고와 판단력을 측정해 어떤 일을 만나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진주향교 유도회(儒道會) 주최로 진주시의 재정지원을 받아 ‘진주목(晉州牧) 향시(鄕試)’를 재현했다. 향시란 각 도에서 실시하는 과거의 1차 관문이다. 많은 응시생들이 전통복장을 하고 몰려와 각자의 역량을 내보였다. 반드시 배부된 한지에다 모필 글씨로 쓰게 해 옛날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렸다. 채점의 기준은 ‘얼마나 주제를 부각시켰는가?’ ‘전체적인 구성에 문제가 없는가?’ ‘조리와 독창성이 있는가?’ ‘어휘 구사 수준이 우수한가? ‘한자를 바로 썼는가? 등이었다.

    채점을 해 보니 기대보다 답안이 우수했다. 앞으로 계속 발전시키면 지역민들에게 평생학습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성을 도야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選 : 뽑을 선. * 材 : 재목 재.

    * 之 : 갈 지. * 法 : 법 법.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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