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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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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사고차량 복원방법·기간 견적내는 여성 정비사 강선리 씨

“한의사 대신 선택한 자동차정비, 이젠 기능장 꿈꿔요”

  • 기사입력 : 2014-11-1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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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시 성산구 남산동 (유)영신정비에서 강선리 자동차정비산업기사가 수리를 위해 입고된 사고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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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리 자동차정비산업기사가 공장장과 수리할 곳을 상의하고 있다.




    ‘자동차’와 ‘여성’이라. 조금은 낯선 조합이다. 여기서의 자동차가 ‘자동차 정비’ 같은 거친 직업을 뜻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와 관련된 자동차정비 관련 업무가 여성과는 먼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강선리(35·여)씨는 그것이 잘못된 고정관념임을 온몸으로 증명한다.

    “의사는 수술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지만 자동차 정비 업무는 이 차를 타는 일가족의 목숨을 책임진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섬세하고 꼼꼼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는 여성이 더욱 적합하지 않을까요?”

    선리씨는 이런 확고한 철학으로 정비소에서 사고차량의 복원 방법과 복원기간을 견적 내는 일을 하고 있다. 보통은 공장장급 정비공들이 하는 업무로, 차체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풍부해야만 할 수 있는 그야말로 프로 업무다.

    창원시 성산구 남산동 (유)영신정비에서 만난 선리씨는 동그란 눈에 자그마한 체구까지 ‘천생 여자’라고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어 보였지만 업무와 관련된 얘기를 하자 다부진 말투에 전문적인 지식까지 ‘천생 정비사’가 따로 없었다.

    ▲아버지와 대화 위해 차에 관심 가지다

    20여 년 전 택시운수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항상 선리씨가 잠들고 난 후 귀가를 했기에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라곤 아버지가 태워주시던 아침 등교시간뿐이었다. 차 안의 적막을 깨고 아버지와의 대화를 위해 선리씨가 택한 주제는 ‘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궁금하지 않지만 질문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빠 저 차는 이름이 뭐예요? 비싸요?’, ‘저 차는 왜 다르게 생겼어요’ 같은 질문이 시작이었죠. 거기에 아버지는 대답만 해주는 정도였지만 그것도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아버지 회사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택시, 정비분야로 업체가 분리됐고, 그중 선리씨네가 정비업체를 가져오면서 차와의 인연은 더욱 깊어졌다.

    ▲아버지를 위해서, 꿈을 포기하다

    또래 여자들에 비해 어렸을 때부터 차에 관심이 많았다곤 하나 이것을 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선리씨에게는 조금 더 오래된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증조외할아버지가 한의사였어요. 그러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한약 냄새에 익숙했고, 할아버지가 환자를 보시는 모습을 따라 한의사를 꿈꾸게 됐죠.”

    선리씨는 대학 졸업 후에도 몇 년여를 더 한의사 공부에 몰두했다. 조금만 더하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공부를 지속하던 중 선리씨는 가세가 기울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전 국민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IMF 이후 계속해서 줄어든 수요 탓이었다.

    “20년이 넘게 아버지가 꾸려온 회사를 정리하겠다고 결정하셨더라구요. 장녀로서 회사에 들어가 아버지를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했고, 한의사를 포기했죠.”

    ▲사장 딸 꼬리표 떼려 공부 시작하다

    차에 관심이 많았다고는 하나 차에 대한 전문지식은 전무했다. 아버지를 돕기 위해 회사로 들어갔지만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직원들의 따가운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에 대한 불신은 물론, ‘장갑도 껴보지 않은 니가 뭘 할 수 있겠냐’는 선리씨에 대한 불신이 더해진 터였다.

    선리씨는 그때부터 피곤한 나날을 지속했다. 오전, 오후에는 아버지 회사로 출근해 일을 하고, 야간에는 한국폴리텍대학 창원캠퍼스에서 자동차 정비 관련 공부를 했다.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정도 됐을까. 선리씨는 당당히 자동차정비산업기사 자격증을 따냈다. 보통 일선 실무자들은 정비 기능사를 보유하고 있고, 산업기사는 바로 그 위 단계였다.

    ▲회사의 위기에서 천직을 만나다

    선리씨가 회사에 들어간 지 2년 반이 지났을까. 사고차량 견적을 내는 일을 하던 회사 상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나가게 되면서 회사는 위기에 봉착했다.

    “큰일이었죠. 정비소에서 사고차량 견적을 내는 일은 전체 수입의 80% 이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이거든요. 차체에 대한 충분한 지식으로 실제 견적과 가안이 거의 오차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그 중요한 일은 선리씨에게 맡겨졌다. “조금만 틀려도 몇십만원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다 보니 신경을 곤두세웠죠. 회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일이었고, 처음 3개월간은 하루에 잠도 거의 못잘 만큼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공장장님의 도움으로 근근이 헤쳐나갈 정도였지만 이내 안정을 찾았죠.”

    선리씨가 이 일을 맡고 반년 후 회사는 정상 궤도에 올라선다. 직원들 월급도 정상화됐다.

    “지금은 사고차가 입고되면 복원방법, 기간 등을 혼자 견적 냅니다. 제가 맡은 일은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제 신념도 있었지만 다들 믿고 의지해주신 덕분이죠.”

    선리씨는 잠도 못잘 만큼 힘들게 하던 이 일이 이제는 즐겁단다. 꿈을 포기한 것에 대한 후회 또한 없다고 한다.

    “꼭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에 대해 잘할 수 있게 되니 그것이 재밌고 꿈이 되더라구요. 이제는 이 일이 제 천직인 거죠.”

    선리씨는 현재 정비자격증 중 가장 높은 ‘자동차정비기능장’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근래의 ‘꿈’이란다.

    “처음에는 옛 꿈을 생각하면 씁쓸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한 가족의 목숨을 책임지는 자동차정비 업무가 앞으로도 지속될 가장 소중한 제 ‘꿈’이랍니다.” 김현미 기자

    hm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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