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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비경 100선] 돌강이 흐르는 밀양 만어산 너덜겅

흐르는 돌강에 번뇌도 허물도 내려놓다
밀양 삼랑진 만어산 중턱엔
쏟아부은 듯한 돌들이 흐른다

  • 기사입력 : 2014-11-13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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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산에 오르면 너덜겅을 만날 수 있다. 크고 작은 돌들이 바닷속 물고기 떼를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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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어산 너덜겅 위성사진. 물고기 형상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인다./네이버/






    2014년 11월 13일 목요일

    이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바다에서 올라왔는지. 땅에서 솟아난 것인지….

    이 높은 산 중턱에 푸른 이끼를 입은 크고 작은 검은 돌들이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만어산(萬魚山·670m) 너덜겅(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의 돌들. 마치 흐르는 강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파도가 넘실거리듯 산 정상을 향해 치닫는 모습이 바닷속 물고기 떼를 연상케 합니다.

    수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수만 가지의 몸짓으로 누워 비늘을 번득이며 머리를 빳빳하게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금방이라도 날아 올라갈 것 같은 기세입니다.



    ‘만어(萬魚).’

    이름부터 물고기가 떠오르지요. 너덜겅의 돌들은 만어사(萬魚寺)와 함께 신비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그럴싸한 두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만어사는 46년, 가야 수로왕 5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당시 수로왕은 기상이변을 일으켜 오곡의 결실을 방해하던 용과 나찰녀를 부처의 도움으로 물리쳤는데, 그 때문에 동해의 고기와 용이 마침내 골짜기에 가득 찬 돌로 변해 각기 쇠북과 경쇠(옥 또는 돌로 만든 악기) 소리가 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깨닫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이란 곳의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고 신승은 용왕의 아들에게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줬으며,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수많은 고기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가 멈춘 곳이 만어사이며 만어사에 이르자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들 또한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고 합니다.

    특히 너덜겅의 돌은 두들기면 종소리가 난다는 특징이 있지요.

    그 전설을 안고 너덜겅을 건너봅니다. 길이는 700m, 최대 폭은 100m가 넘는 돌이 흐르는 강으로 들어가 봅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반들반들해진 돌을 밟고 지나가 봅니다. 돌이 아니라 바위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 평상만 한 큰 녀석들도 눈에 띕니다.

    물살을 거꾸로 거슬러 산 정상으로 올라가려고 어깨싸움을 하는 연어들의 모습처럼 만어사를 향하고 있네요.

    손만 대면 펄쩍펄쩍 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오랜 세월 풍파에 깎이면 수더분하고 얌전한 형상을 띠는데 그런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물속에서 또는 물 위로 펄쩍 뛰다가 순식간에 굳어버린 것처럼 생동감이 넘쳐 흐릅니다. 일부 바위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려고 몸부림치다가 고개를 뒤로 돌린 듯한 모습도 보이네요.

    머리를 맞대고 하늘로 펄떡펄떡 뛰어오르려는 모습, 새끼를 등에 태우고 헤엄치는 모습, 먼저 가려고 뒤엉켜 있는 모습 등 수많은 물고기가 뭍으로 올라와서 요동치다 굳어버린 듯한 형상입니다. 천연기념물 528호로 지정될 만 하지요.

    이 돌들은 겹겹이 쌓여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는데, 놀라운 것은 그 모습이 물고기를 빼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어석(萬魚石)이라고 합니다.

    또 두드리면 쇠종 소리가 난다고 하여 ‘종석(鐘石)’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들 만어석은 다른 돌보다 유난히 무겁고 야물다고 하며, 조선 세종 때에는 이 돌로 ‘종경(鐘磬)’이라는 악기를 만들려고 돌을 채집해 시험했으나 음률이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고도 합니다.

    조심스레 두들겨 봅니다. 둔탁한 소리가 나는군요. 이번에는 두드린 흔적이 남아 있는 돌을 두들겨 봅니다. 맑은 소리가 납니다. 목탁소리 같기도 하고 종소리 같기도 합니다.

    속이 비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속을 비운 해탈의 경지에 다다라서일까요. 사유해 봅니다.

    하지만 이 돌들은 마치 비늘이 빠진 물고기처럼 허연 속살을 드러내 보기는 좋지 않습니다. 또 일부 바위에는 몰지각한 방문객들이 이름 등을 새겨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이제 눈을 감고 이들과 한 몸이 되어 봅니다. 종소리는 바람소리가 되고 이내 파도소리로 변합니다. 함께 동해안 거친 물살을 헤쳐 나갑니다. 그리고 속삭입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또 비워 보랍니다. 수억 년 갈고닦은 진리의 소리일 겁니다.

    지질학적으로 이 돌들은 2억년 이전의 고생대 말 중생대 초의 녹암층이라는 퇴적암인 청석(靑石)이라 합니다.

    학자들은 해저에서 퇴적된 지층이 바닷물의 영향을 받는 해침과 해퇴가 반복되면서 풍화를 받고, 그것이 빙하기를 몇 차례 거치는 동안 풍화작용이 가속되면서 지금의 거무튀튀하고 집채만 한 크기의 암괴들이 벌판을 이루게 됐을 것이라고 하네요. 그러니까 이곳은 바다였다는 것이지요. 지질학적으로 또 전설로도 실제 보이는 모습과도 딱 들어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위성 사진을 보면 더욱더 놀랍습니다. 너덜겅에 널브러진 만어석의 모습이 물고기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꼬리부터 몸통까지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머리 부분은 보이지 않는데요. 그것은 만어사 내에 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륵불입니다. 전설상의 왕자이지요. 약 5m 높이의 경석인데요, 마치 가사장삼을 두른 듯한 부처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이 미륵바위는 해마다 0.3㎝씩 큰다고 합니다. 또 나라에 큰 난이 있을 때 돌의 오른쪽 면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고 합니다. 미륵바위를 보호하기 위한 미륵전 마루불사 공사가 한창이네요.

    미륵바위 앞쪽에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소원을 빌며 쌓아올린 돌탑 무더기가 있는 바위의 아래쪽 틈으로 작은 샘이 보이는데, 이 샘물은 낙동강의 조수에 따라 물 높이가 달라진다고 합니다.

    만어사에서 멀리 바라보면 높고 낮은 산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그 사이로 낙동강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야말로 비경이지요.

    만어들은 비가 올 때나 비온 직후에 더욱 꿈틀거립니다.

    바위 틈새 촉촉이 젖은 이끼의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물고기 비늘·지느러미를 보는 것처럼 환상적입니다.

    그들을 밟고 너덜겅을 건너 속세로 걸어 나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들이 짧은 가을을 아쉬워하듯 부르르 몸을 떨고 있네요.

    순간 당~당~당 회귀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만어들은 바다로 바다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글= 이종훈 기자

    사진= 성승건 기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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