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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경영을 어떻게 해야 사람답게 사는 걸까?- 최환호(경남은혜학교 교장)

  • 기사입력 : 2014-11-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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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의 속성을 객관적이고 양적인 것과 주관적이고 질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죽음의 신을 뜻하는 크로노스 (Chronos), 그의 시간은 객관적이고 양적 의미이다. 모든 인간들이 살아가는 물리적 시간이고, 낮과 밤이 반복되는 세상의 시간이며, 궤도이탈이 확고한 불변의 시간이다. 하여 크로노스 시간의 수제자, 한국인이 만든 ‘빨리 빨리 (ppalli ppalli)’는 옥스퍼드 대사전에까지 실렸을 정도니까.

    그것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라는 물질적 천국을 제공한 대신에 딱 그만큼의 정신적 지옥을 살게 했다.

    속성은 기본을 무시하고 결과만 따지다 보니 육·해·공에 걸쳐 대형 참사들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마다 경쟁적으로 쏟아낸 포퓰리즘 정책 난립으로 국민의 혈세는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흩날리고 있다. ‘속성의 강박’은 난치병에서 불치병으로, 드디어 괴물이 돼 OECD 최고의 자살률, 이혼율, 산업재해 사망률, 교통사고 사망률… 연일 죽음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어떻게 살아야 내가 사람처럼 사는 걸까?(프로스트. ‘안 거둬들인’ 마지막 행)” 그래서 언제쯤이면 우리는 지옥을 벗어날 수 있을까?

    결국 카이로스 시간에서 결판날 터. 기회의 신을 뜻하는 카이로스(Kairos), 그의 시간은 주관적이고 질적 의미이다. 각자에게 특별한 감성을 느끼게 하는 시간이자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자본의 시간’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이며, ‘빠름의 시간’이 아니라 ‘느림의 시간’이다. 사랑과 감사, 건강과 행복의 시간이기에.

    특히 한국인의 일상에서 지배적인 시간개념은 철저히 크로노스의 타율적 시간이다. 시간 개념이 타율적이란 사회제도의 시간에, 조직의 시간에, 타자의 시간에 자신의 생활이 종속되어버리기에 자기 삶이 없다는 거다. 늘 돈, 권력, 명예라는 욕망의 환영을 좇다가 자기 삶마저 놓쳐버리지 않았던가.

    그 대표적 실제. 은퇴 후 3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안에서 공황상태를 겪는 베이비부머들이 급증하고 있다. 30여년 자기 자리에서 보낸 타율적 시간에의 중독에 빠져 있다가, 어느 날 조직에서 분리되는 순간, 마치 모태에서 태아가 분리되듯 의식이 무중력 상태로 돌입하면서 공황증세가 확 온다는 거다. 그만큼 시간의 자율적 경영능력이 전무하다는 방증 아닐까?

    그러니까 삶의 질이란 것은, 시간을 자각할 수 있는 능력, 시간의 자율적 경영능력에서 결정된다는 거다. 스스로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을 감지하고 의식하지 못한다면, 평생 크로노스(Chronos)의 타율적 시간, 그 신산한 노예로 살아야만 하리.

    21세기 들어서면서 제일 소중한 자산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땅이 소중한 시대를 농본사회, 돈이 소중한 시대를 자본사회,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이 소중한 시대를 뇌본(腦本)사회라고 한다.

    소유보다는 자율적 이용에 더 무게를 두고, 21세기 최대 자원을 ‘시산(時産)’이라고 한 제러미 리프킨의 말을 곱씹어야 할 터. ‘기억하라. 지식이 중요해지는 사회일수록,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성공한다(피터 드러커).’

    미국 작가 티머시 페리스(‘4시간’)에 따르면, 백만장자처럼 살기 위해 필요한 건 백만금이 아니라, 시간 경영의 자율권이다. 그 누구든 시간활용에 자율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거금을 투자한 것과 맞먹는 경제심리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뜻이리라.

    이런 젠장! 벌써 겨울의 초입. 당신, 진실로 존재하고 싶은가? 지금 이 순간을 자기화(自己化)할 수 없다면, 당신의 삶은 이미 죽은 것이다. 그저 ‘걸어다니는 시체요, 달리는 고깃덩어리’라.

    최환호 경남은혜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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