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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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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 장수선무(長袖善舞)- 긴 소매의 옷을 입으면 춤을 잘 춘다. 여건이 좋으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 기사입력 : 2014-11-18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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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대학교(慶尙大學校) 한문학과(漢文學科)에서는 매년 5월 성년(成年)의 날을 맞이해서 관례식(冠禮式)을 거행한다. 어느 해인가 그 식전 행사로 민속무용학과 학생들이 와서 전통춤을 춰 행사를 도와줬다. 하루 전날 총예행연습을 했는데, 민속무용학과 학생들도 와서 전통춤 연습을 했다. 청바지 반바지 차림으로 와서 춤을 추었는데 “저게 무슨 전통춤이야? 올해 관례 행사 망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치마 저고리를 입고 와서 춤을 췄는데 정말 정(靜)과 동(動)이 어우러진 우아하고 멋진 춤을 췄다. 마치 어제 춤추던 학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긴 소매의 옷을 입으면 춤을 잘 춘다(長袖善舞)’는 말이 완전히 실감이 났다.

    전국시대(戰國時代) 한비(韓非)라는 법가(法家) 사상가가 지은 한비자(韓非子) 오두편에 ‘긴 소매의 옷을 입으면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으면 장사를 잘 한다(長袖善舞, 多錢善賈)’는 말이 있다. ‘여건이 좋으면 무슨 일을 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한비는 외교를 통해서만 진나라의 침공을 막을 수 없고, 각자 자기 나라의 부강을 꾀해야 한다는 점을 설파했다. 나라가 강하면 외국에서 침략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개인의 생활도 마찬가지다. 남과 사교를 잘해 이름 내려고 애를 쓸 것이 아니라, 실력을 쌓으라는 뜻이다.

    금년 가을에도 일본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음으로 해서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는 22명으로 늘어났다. 순수 과학분야만 19명이다. 우리나라는 과학분야에서 지금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일본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19명이나 배출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어릴 때 한자(漢字) 교육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은 70% 정도가 한자어(漢字語)이지만, 학술용어는 90% 이상이 한자어이다. 중·고등학교 수학 과학 교과서 등에 나오는 용어도 거의 모두 한자어이다. 한자를 알면 한자어로 된 학술용어는 그 개념을 쉽게 알고 정확히 이해해 영구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화학교과서에 나오는 ‘응축열(凝縮熱)’은 ‘(기체가) 엉기어 (액체로) 오므라들 때 나는 열’, 생물교과서에 나오는 ‘양서동물(兩棲動物)’은 ‘(땅과 물) 두 곳에 깃들어 사는 동물’, ‘접안(接眼)’렌즈는 ‘눈에 닿는 렌즈’ 등이다. 과학에 쓰이는 학술용어뿐만 아니라 문학, 예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이 다 그렇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철저히 시킨다. 그래서 일본 학생들은 학술어의 개념을 어려서부터 확실하게 안다. 우리는 한글로 써 놓고 다 외우게 한다. 한글로 써 놓으면 누구나 다 읽을 수 있다. 정확하게 용어의 뜻을 모르면서 학문을 한다면 기초가 튼튼할 수 없고, 기초가 튼튼하지 않으면서 높은 수준에 이를 수 는 없는 것이다.

    * 長 : 길 장. * 袖 : 소매 수.

    * 善 : 착할, 잘할 선. * 舞 : 춤출 무.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여론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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