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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근의 우리땅 순례 (99) 고성 (9) 개천면 연화산 옥천사 백련암 ~ 금태산 계승사

무르익은 가을볕 벗 삼아 산사로 향하는 길

  • 기사입력 : 2014-11-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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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옥천사 연대암의 고즈넉한 담장.


    결실의 계절 가을인가 했는데 세월은 어느새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겨울로 가고 있다. 흘러가지 않으면 세월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세월을 잡아 둘 재간도 없으니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 것밖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한 해의 세월을 가득 안고 달려왔던 달력도 늦가을 나무에 매달린 빛바랜 낙엽처럼 가벼워졌다.

    올해도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독서와 강연과 답사가 여러 곳에서 이어졌다. 인문학 기행 인솔을 가보면 인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이 자주 있다.

    인문학이란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으로 자연을 다루는 자연과학에 대립되는 영역이다.

    즉 사전적 의미는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루는 데 반하여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탐구와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인문과 자연과학을 가르는 것이 부질없는 짓일지 모르지만 인문학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연과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길러 행복의 가치를 찾아가는 학문이다.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문득 서산대사의 시 한 편을 생각해 본다. ‘눈 쌓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마소. 오늘 남긴 나의 발자국이 뒤 오는 이의 길이 되리니.’

    앞서가는 길이 어렵고, 남을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를 말하고 있다. 그래도 올곧은 사도의 길이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이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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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사 백련암


    ◆옥천사 백련암

    연화산 옥천사에는 7개의 말사와 암자가 있다. 옥천사를 중심으로 인근에는 적멸보궁과 청련암, 백련암, 연대암이 있다. 백련암(☏ 055-672-0011)은 옥천사박물관 보장각 뒤편으로 난 울창한 잡목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200m쯤 올라가면 연화1봉(489m) 능선에 아담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솔바람 소리를 따라 암자 입구에 들어서면 연화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대나무 홈으로 돌려 목을 축이도록 작은 샘을 만들어 놓았다. 백련암 스님의 작은 배려인가 싶다. 백련암은 청련암과 함께 숙종 4년(1678)에 묘욱선사가 초창한 작은 암자이다. 숙종 27년(1701) 경현스님이 중건했고, 정조 5년(1781) 순문스님이 고쳐 지었다. 1909년에는 칠성, 독상탱화를 조성해 봉안했고, 1926년에는 혜월스님이 화주가 되어 법당과 별당을 더 지었다.

    인기척은 없고 견공들의 짖는 소리를 듣고 감원 능산스님이 나와 반겨줬다. 감원이라는 뜻은 우리가 보통 독립된 절집의 관리자는 주지스님이라고 하는데 옥천사라는 큰절이 있고 큰절에 소속된 암자의 살림을 맡아서 하는 스님을 감원이라 한다고 일러줬다. 백련암에도 능산스님 한 분이 주석하고 있다. 순례길을 다니다 보면 가끔 스님이 없는 암자를 만나는데 문 앞에 휴대폰 번호만 적어 놓고 만행을 떠나버리는 경우가 있다. 자유분방하게 자란 신세대 스님들의 성향이라고 했다.

    해질녘에 백련암에서 동북쪽을 바라보면 삼각형 산이 바라보이는데 이 산이 망선봉으로 소위 선인이 비파를 타고 있는 듯한 형세로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4대 옥천사 주지를 역임한 전덕운 스님이 백련암에 선방을 개설한 이후 남방의 유명한 선원으로 널리 알려져 왔다. 특히 광복 직후부터 6·25를 지나 1965년까지 백련암 선방을 운영했는데 초대 종정을 지낸 설석우스님, 대구불교를 중흥한 보문스님, 제방선원의 조실을 지낸 인곡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이 이 선원에서 수행했다.

    백련암 선원은 조용하고 아늑해 주석해 본 스님들마다 “기이하다. 몇 계절을 살아도 물리지 않는 곳이다”라고 감탄하던 명당 길지이다. 현재는 선원을 운용하지 않고 있으나 여건이 성숙하면 어느 땐가 다시 선방을 재개해 종단을 이끌어 나갈 큰스님들을 배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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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사 연대암


    ◆옥천사 연대암

    솔바람이 가득한 백련암을 떠나 1007번 도로에서 연대암 표지판을 따라 예성리 구례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옥천사 연대암(☏ 055-672-0300)은 마을을 벗어나 쎄띠들판과 구례저수지를 지나 2㎞쯤 되는 연화산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 있으며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예성리 구례마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자연을 벗 삼아 걸어가도 전혀 후회스럽지 않은 편한 길이다. 암자 입구에서 옹벽담장을 보고 지그재그 길을 잠시 오르면 견공이 스님보다 먼저 반겨준다. 암자의 위치가 서쪽(서방정토)를 바라보고 있어 연화세계의 고결함이 있다 해 연대암이라 했다.

    조선 영조 22년(1746)에 지은 연대암 중창기문에 의하면 암자의 초창이 본사인 옥천사의 창건과 어느 편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영조 18년(1743)에 중창을 하니 전보다 훨씬 웅장하다는 기록으로 보아 1743년까지는 아주 낡은 건물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노송 사이로 잡목수림이 울창해 연화8경 중 ‘연대취연산속 외딴 암자에서 피어오르는 취사연기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해 저무는 암자 마루에 앉아 찻잔을 놓고 7년 전에 부임했다는 감원 일화스님과 마주 앉았다. 연대암에는 고종 31년(1894)부터 11명의 승려와 30여명의 신도들이 ‘칠성계’를 결성했다고 한다. 북두칠성은 본래 도교에서 인간의 수명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별로 숭상했는데 조선후기에 불교에 수용돼 부녀자들 사이에 크게 유행했다. 1902년 칠성계는 회비를 모아 칠성각을 새로 건립했고 지금은 칠성계가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

    연대암 곳곳에도 스님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정갈하고 깨끗했다. 절집을 관리하고 청소하며 신도를 맞이하는 것도 불가에서는 수행의 한 과정이다. 일화스님은 누가 와도 온화한 미소로 반겨준다. 짧은 겨울 해는 어느새 산자락에 걸려 나그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암자를 내려오며 군불로 때는 연기가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는가 싶어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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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링민박


    ◆힐링민박

    영오면에서 지방도로 1007번을 따라 금곡면을 거쳐 계방사로 가는 길에 힐링민박(☏ 010-8535-3811)의 작은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 봤다. 200m쯤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 보니 골짜기에 아담한 콘크리트 2층 건물이 있었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민박이 될 것 같지 않은 외진 곳이라 궁금증을 풀기 위해 주인을 찾았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배재식(54)씨는 무공해 블루베리 주스를 한 잔 건네며 1층은 살림집이고 2층이 민박 건물인데 방이 6개라고 했다. 배씨도 도회지 생활이 싫어 귀농을 하려고 준비하던 1년 전 우연히 뼈대만 있던 건물을 구입, 수리해서 소박하게 문을 열었다고 했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면 자연이 주는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했다. 연화산 자락에서 철 따라 나물을 캐고 계곡의 물소리와 벌레들의 유장한 소리가 음악회를 여는 것 같다고 했다. 적막과 어둠이 내린 밤하늘에서는 별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착각을 경험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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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산 계승사


    ◆금태산 계승사

    배씨의 전송을 받으며 힐링민박을 나와 계승사로 바쁜 길을 재촉했다. 금태산 계승사는 칠점일구 마을회관 부근에서 이정표를 보고 걷기 좋은 산길을 따라 3㎞쯤 가면 금태산과 어산(537m)을 이어주는 능선 아래 둥지를 틀고 있다. 다른 길로는, 대가로 금태골 대법3길을 따라 경사가 높은 길로 1㎞ 가면 계승사에 닿게 된다. 자동차가 통행하기에는 길이 좁아 칠점일구 마을회관 앞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산꾼들에게는 금태산에서 어산을 거쳐 천왕산이나 연화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널리 알려져 있다.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삼남도에 내려왔다가 이 절에서 수행하며 조선 창건의 꿈을 키웠다고도 전한다. 그리하여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고 자신이 수행한 산의 이름에 ‘금’자를 붙여 하명했는데, 바로 고성의 금태산과 남해의 금산이라고 전해진다. 금태산 계승사는 신라 문무왕 15년(675)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금태사’로 불려 오다가 임진왜란 때 병화에 소실됐다. 1963년 지금의 법진 주지스님이 중건해 절집 이름을 계승사로 바꿨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쌍계사 말사로 전통사찰 제103호 등록했다. (마산제일고등학교 교사·옛그늘문화유산답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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