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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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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쓰는 이’의 기질- 성윤석(시인)

  • 기사입력 : 2014-11-21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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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번호 22번, 원소기호 Ti라 불리는 주기율표 금속 중에 티타늄이라는 게 있다. 화학사업을 하는 동안 만났던 금속원소들 중의 하나다.

    이 티타늄의 성질은 독특해서 제련도 용접도 잘 안 되는 금속이다. 잘 섞이지 않고 혼자 있으려는 ‘스따(스스로를 따돌림) 기질’을 갖고 있다. 숯돌로 갈아보면, 혼자서 흰 불꽃을 피워올린다. ‘이차돈이다’고 감탄하게 하며 보는 이를 웃게 한다.

    그러나 티타늄의 용도는 많다. 낚싯대에서부터 산업 전반에서 중요한 재료로 쓰인다. 우리가 쓰는 희디흰 페인트와 화가들의 물감에도, 빵집의 도넛 위에 발린 설탕 덩어리에도 이 티타늄의 흰 불꽃은 숨어있다.

    당시에 나는 문학을 접고 화학에 미쳐 있을 때였으므로. 그때 하고 있었던 실험에만 티타늄의 쓰임새에 대해 고민했지,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최근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이 티타늄 같은 기질을 가진 소위 작가나 시인이라 불리는 ‘쓰는 이’들이 떠올랐다. 멀게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혼자 있으라’라고 했던 휠덜린과 일찌감치 문단과 선을 긋고 오로지 소설에만 집중하고 있는 일본의 마루야마 겐지, 국내로는 최승자, 박상륭, 복거일, 장정일, 고 권정생 같은 이름들이었다. 소외의 즐거움을 안다고나 할까. 문학 외의 삿되고 잡된 일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오로지 날 선 문학정신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우리 곁에 작품으로 남겨 놓은 분들이다.

    특히 ‘죽음에 관한 한 연구’로 한국문학에 큰 소설세계를 선사한 박상륭 선생은 캐나다에서 시체를 닦으면서 소설에 집중한 분이셨는데, 절친인 고 이문구 선생에게 사과박스째 원고를 맡긴 뒤 캐나다에서 전화를 걸어 ‘다 불태우라’했고 이문구 선생이 고민하다 자신의 원고까지 불태운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이문구 선생은 또 어떤가. ‘나 죽으면 어떤 문학상도 제정하지 말고 문학비 같은 것도 세우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암 투병 중에도 병원치료를 거부하고 오로지 집필에만 휩싸여 계신 복거일 선생, 시대의 아이콘이었으나 한국 문단으로부터 소외돼, 400여개나 난립해 있는 문학상 하나 없는 장정일은 또 어떤가.

    최근 오랜만에 만난 글쟁이들의 모임에서 생소한 이야기들을 듣고 놀랐다. 대학에서 플라톤과 니체가 사라진 지 오래인 것처럼 문학판에도 크게 될 작가의 싹을 갖춘 젊은 문인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반면 늦깎이 신인들은 너무나 예의 바르고, 스승과 선배에 대한 예의가 지나치다 못해 시키지도 않았는데, 문학상이니 지면이니 하며, 자기를 끌어 줄 선배나 선생들을 찾아다니며 줄을 선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은 변했다. 허나 문학은 추운 밖에서 나온다. 혼자 숨어서 치열한 습작을 하는 자존감 높은 이는 줄고, 무리를 이룬 곳만 찾아다니며, 외연만을 넓히려 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 지방마다 무슨 문학제니, 문학상들이 생겨나고 있다.

    당연 요즘처럼 한국문학이 옹색하고 초라해진 때가 없음이다. 거기에 시답잖은 문단권력을 쥐고 흔드는 자들의 비루함과 역겨움이, 고독 속에 자기 세계를 이룬 글쟁이다운 문인들을 새삼 그립게 하고 있다.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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