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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경남도청 정문의 파라솔과 화분- 서영훈(방송인터넷부장)

  • 기사입력 : 2014-11-2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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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경남도청 정문에 파란색 파라솔이 설치됐다. 노천카페에 어울릴 듯한 제법 분위기 나는 파라솔이었다. 정문 안내원을 위한 것이려니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경남도가 1인 시위자를 위해 설치했다는 소식이 며칠 뒤에 전해졌다. 참 별일이라는 느낌, 당시의 심정은 솔직히 그랬다.

    도청 정문은 집회나 시위 단골장소 중 하나였다. 보수든 진보든, 단체든 개인이든, 별다른 제지를 받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을 펴던 곳이 도청 정문이었다.

    도청 정문은 1인 시위자에게 천국이자 지옥이다. 도청을 드나드는 수많은 공무원과 민원인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할 수 있는 곳이어서 천국이다. 그러나 나무그늘이 전혀 없는 이곳은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고, 봄이나 가을에는 심술궂은 비를 고스란히 맞아야 하기에 지옥이다.

    이런 고충을 헤아렸는지 경남도가 시위자를 위한 파라솔을 갖다 놓았다. 사회적 약자인 1인 시위자의 건강을 위해 홍준표 지사의 지시로 설치했다는 관계자의 설명도 들렸다.

    파라솔의 첫 수혜자가 보건의료노조 진주의료원지부 조합원들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홍 지사가 진주의료원 정상화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을 위해 파라솔을 설치했으니 말이다.

    설치 경위야 어찌 되었든 직장을 잃은 진주의료원 직원들은 파라솔 아래에서 뙤약볕을 피해 1인 시위를 이어갔고, 밤이슬을 피해 노숙농성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청 정문의 분위기가 어느 때부턴가 수상하게 흘러갔다.

    파라솔이 설치될 때만 하더라도 도청 정문은 다수의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기에도 꽤 너른 공간이었다. 폭 1m 안팎의 대형화분이 군데군데 흩뿌려진 모습으로 놓여 있었지만, 시위나 노숙농성에 거의 장애가 되지 않았다.

    파라솔이 설치된 지 상당 기간이 지나자, 도청 정문의 빈터에 똑같은 생김새의 대형화분이 줄지어 들어섰다. 장기 노숙농성을 하던 시위자 한 명이 몸을 누일 만큼의 공간만 여기저기 있을 뿐이었다.

    다시 꽤 오랜 기간이 지나자, 농성은 끝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형화분이 정문 빈터에 빼곡히 들어찼다.

    지금 도청 정문에 있는 화분들은 서로 어깨가 맞닿아 있고, 이에 따라 단 한 사람이 서 있을 만큼의 공간마저 사라졌다. 매년 쌀 수입 개방에 항의하며 이곳에서 나락 야적시위를 벌이려던 농민들은 올해는 그런 시위를 할 수 없게 됐다.

    파라솔이 도청 정문에 처음 나타났을 때 들었던 그 느낌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파라솔, 참 별일이었다.

    수많은 시위현장을 취재했지만, 정부가, 자치단체가, 또는 기업이 집회나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위해 편의시설을 제공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시위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시위자들을 편하게 해줄 이유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시위가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데,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편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사정이야 이렇지만, 홍준표 지사는 진주의료원 정상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파라솔이라는 편의시설을 제공했을 수 있다. 승자가 패자를 위해 베푼 최소한의 아량쯤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도청 정문의 파라솔은 그런 아량의 표지, 그 이상이 되지 못했다.

    그런 일은 없을 듯하지만, 만약 도청 정문에 다시 파라솔을 설치한다면 그것은 강자의 헤픈 아량이 아니라 약자인 도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몸과 마음을 보듬으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어야 한다.

    서영훈 방송인터넷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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