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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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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딜 이후 재계, 한계사업 과감히 접고 위기 넘는다

  • 기사입력 : 2014-11-27 16: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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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택과 집중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룡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은 한때 중추인 전력산업부터 가전, 기계설비, 가스터빈, 제트엔진 등 손대지 않는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선단식 경영에 집착했다.
     
    그러던 GE가 지난 9월 100년 전통의 가전사업부를 스웨덴 전자업체 일렉트로룩스에 팔아넘겼다. 흥정 가격 33억 달러로 초대형 인수합병(M&A)이다. 일렉트로룩스는 단숨에 가전업계 세계 1위로 점프했다.

     
    제프리 이멜트 GE 최고경영자(CEO)는 1871년 에디슨전기회사가 모태인 가전사업부조차 과감하게 정리했다. GE 가전사업부는 이미 북미시장에서 5위권 밖으로 밀려난 터였다. 생존의 문제인 한계사업 정리에 더는 미련이 있을 수 없었다.
     
    삼성그룹이 화학·방산부문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해 IMF 외환위기 이후 최초의 자율 빅딜을 전격 실행함에 따라 이제 한계사업 정리가 재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과거 우리나라 재벌정책은 부의 집중을 막기 위한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와 업종전문화제도가 골간이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문어발식 확장을 꾀하는 대기업집단을 견제하겠다는 '관의 논리'였다. 기업의 자발적 의지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빅딜의 배경에는 비주력 사업을 마냥 안고 가다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실질적인 위기감이 깔려 있다. 
     
    그래서 1980년대 중화학부문 구조조정, 1997년 반도체 빅딜 같은 정부 주도의 구조개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 산업계는 업종별로 한계사업 정리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느라 분주하다.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그만 
     
    업황이 좋지 않은 조선업계는 본격적으로 체중감량에 돌입할 태세이다.
     
    현대중공업[009540], 삼성중공업[010140], 대우조선해양[042660] 등 조선 3사가 각각 추진해온 풍력 등 그린에너지 사업이 존폐의 갈림길에 놓인 것으로 관측된다.

    주요 조선 업체들은 그린에너지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점찍어 투자해왔으나 그동안 수익이 나기는커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신세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한때 국가 경제의 효자 노릇을 했던 조선산업은 글로벌 경기침체가 길어지면서 영업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두 조선소간의 합병설이 나오기도 하고 기업 내부에서도 자발적인 고강도 개혁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채권단이 구조조정을 진행중인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간에 합병설이 불거졌다. 현재 잠잠한 상태이지만 조선업계의 장기불황에 대비해 두 중견조선소의 경쟁력을 키울 유력한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대중공업[009540]은 권오갑 사장 취임 이후 고강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해외법인 및 지사에 대한 점검을 시작해 효율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010620], 현대삼호중공업 3사는 해외에 25개 법인과 21개 지사 등 46개 해외조직을 두고 있는데 이중 사업성과가 낮은 법인과 지사는 통합 운영할 방침이다.

    아울러 수익창출이 어려운 한계사업과 해외법인들도 원점에서 재검토해 사업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중공업[010140]은 조선해양, 건설, 풍력발전설비 3가지 사업 가운데 시장환경이 악화한 건설과 풍력 사업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
     
    2년 전 건설 부문의 인력 100여명을 삼성에버랜드로 전출시켰고 풍력은 신규 기술개발 위주로만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두 사업은 삼성중공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밖에 안 된다.
     
    중공업 부문에서도 포트폴리오를 새로 짜는 기업이 속출한다.
     
    두산그룹은 일찌감치 비주력 사업을 정리해 미래 사업 설계도를 재편하고, 성장에 필요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데 나서온 기업 중 하나다. 
     
    두산그룹은 학습지를 만들던 두산동아 지분을 지난 9월 예스24에 매각한 것을 끝으로 약 20개에 달하던 소비재 브랜드 매각 작업을 완료, 중공업 중심의 사업 구조 재편을 마무리했다. 
     
    두산그룹은 창업 100주년이던 1995년 소비재 위주의 사업구조를 수출 중심의 중공업으로 재편하겠다고 천명한 이래 음료 사업, OB맥주로 대표되던 주류 사업, 폴로 랄프로렌 수입 판매 등을 하던 의류 사업, 버거킹과 KFC 등 식품 사업까지 소비재 브랜드를 착착 정리해왔다.
     
    ◇ 본원적 경쟁력 되찾아야 불황 파고 넘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은 8월 7개 계열사를 하루 만에 3개로 통합하는 사업 조정을 단행했다. 현대위아가 현대위스코와 현대메티아를 흡수 합병하고 현대오토에버가 현대씨엔아이를, 현대건설[000720]이 현대건설 인재개발원을 합병하는 내용이었다.

    모두 연관 또는 중복사업을 통합해 자동차 사업 본연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사업조정의 일환이었다. 
     
    현대위아는 이를 통해 자산 5조원 규모의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전문 제조사로 자동차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계열사로 발돋움했다. 
     
    포스코[005490]도 철강사업 본원의 경쟁력 확보를 기치로 내걸고 사업 구조조정에 공을 들이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사업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칙도 제시했다. 과거 공격적인 M&A로 불린 몸집을 슬림화하며 철강시장의 불황 파고를 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자회사 포스코특수강을 세아그룹에 넘기기로 하고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특수강업계가 만성적인 공급 과잉과 수입제품 증가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출혈 경쟁보다는 특수강업계 1위인 세아그룹에 포스코특수강을 매각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판매 위주의 철강사업 포트폴리오를 짠다는 구상이다.
     
    비핵심 사업인 광양 액화천연가스(LNG)터미널의 지분과 제철부산물 처리업체인 포스화인, 남미 조림사업 업체인 포스코-우루과이의 매각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산업설비 엔지니어링업체인 포스코플랜텍은 적자를 보는 조선·해양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대신 본원 사업인 화공과 철강 플랜트분야의 역량을 강화하는 자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비핵심 사업 분야의 구조조정을 통해 내년까지 2조원 정도를 조달해 재무와 수익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포스코의 계획이다.
     
    ◇ 유화업계 전체 구조조정 신호탄 쐈다
     
    어느 때보다 큰 변혁의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인식되는 석유화학 업계는 이번 삼성과 한화의 빅딜을 업종 전체의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몇 년 전 시작된 중동지역의 에탄가스 기반 화학사업, 북미 셰일 영향력 증대에 따른 셰일 기반의 에틸렌 생산, 중국의 석탄 기반 화학사업 확대 등으로 석유화학 업계는 패러다임 급변기를 맞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성장둔화와 자급률 상승으로 국내 화학업체들의 경쟁력 하락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라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나 향후 어떤 식으로든 사업 재편이나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그룹은 이런 흐름 속에서 SK종합화학을 2011년 SK이노베이션[096770]의 화학전문 사업자회사로 분사한 이후 우한 에틸렌, 넥슬렌, PX 증설 등 대규모 투자 사업을 통해 전문성 강화와 체질 변화를 꾀하고 있다. 
     
    앞으로도 폴리에틸렌인 넥슬렌 등 고부가가치 제품 확대를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SK그룹은 또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SK이노베이션을 통해 2011년 인수한 미국 태양전지 제조업체 헬리오볼트를 올해 초 매각하기도 했다. 
     
    ◇ 시공·설계·플랜트 시너지 효과에 주목 
     
    건설경기 침체 장기화로 고전하던 건설업계에서도 M&A 등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 움직임이 눈에 띈다.
     
    우선 올해 4월 현대자동차그룹의 비상장 건설 계열사인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이 합병 시너지를 기대하며 M&A를 단행했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왔지만, 그룹에서는 "사업부문별 성장전략의 일환"이라며 "앞으로도 건설부문 계열사의 전문화 및 사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빌딩·도로·항만·주택·토목 등에 강점이 있는 현대엠코와 석유화학·전력 등 플랜트 설계와 시공 전문 업체인 현대엔지니어링의 합병으로 인한 시너지가 작지 않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국내외 턴키발주 수주 등에 대응하는 능력이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합병 당시 시공능력평가 순위 13위인 현대엠코와 54위인 현대엔지니어링은 합병으로 시공능력평가금액이 2조9천821억으로 껑충 뛰어 올해 시평 순위가 10위로 상승하며 '탑 10'에 올랐다.
     
    삼성그룹의 건설·플랜트 부분 사업재편도 관심거리였다.
     
    삼성중공업[010140]과 삼성엔지니어링은 올해 12월 두 회사가 합병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해양플랜트 분야에 강점이 있는 삼성중공업과 석유화학플랜트 분야에 강한 삼성엔지니어링이 통합되면 종합 플랜트 회사로 거듭나 세계적인 설계 엔지니어링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증권가에서는 양사의 플랜트 부문 합병 이후 삼성중공업에 남게 될 건설 부문(E&I)이 삼성물산과 통합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을 불과 10여일 앞두고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 청구권에 발목이 잡혀 합병 계약을 해제했다.
     
    GS그룹에서는 최근 GS건설[006360]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건설핵심역량에 집중하기 위해 파르나스호텔 단지 지분 매각 및 스페인 수처리업체인 '이니마' 매각을 추진 중이다.
     
    ◇ 'PDP 역사속으로' 제조라인 멈췄다
     
    LG전자[066570]는 최근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 사업을 접었다.
     
    PDP는 한때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았지만 UHD(초고해상도) LCD(액정표시장치)와 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에 밀려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글로벌 TV 시장에서 비중이 2%도 채 되지 않는다.
     
    LG전자는 구미공장에 가동하던 PDP 제조라인을 10월 말까지만 돌리고 멈춰 세웠다. 내년 초까지 재고만 처분할 계획이다.
     
    앞서 삼성SDI[006400]는 올해 말부터 PDP 사업을 접고 전자 소재와 에너지 사업에 회사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지난 7월에 발표했다.

    제일모직[001300] 소재부문을 흡수 합병한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삼성SDI의 지난해 PDP 부문 매출은 약 1조5천억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1%였지만 미래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정리했다.
     
    삼성전자[005930]는 스트리밍 기반의 음악·비디오 서비스인 '밀크'에 집중하면서 삼성북스와 삼성비디오 서비스를 중단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 도시바삼성스토리지테크놀로지(TSST)를 협력사에 처분한 것도 광학디스크드라이브(ODD) 기반의 CD롬, DVD 플레이어 등이 한계영역에 다다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방만하게 양적으로 팽창했던 기업들은 다들 걱정하고 있다. 이번 M&A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기 이익과 가치를 따지는 데서 벗어나서 중장기적으로 최대한 장점을 만들어주는 M&A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글로벌 경쟁 체제에서는 경쟁력 있는 부분에 역량을 더 투입해야 하고 기업 규모 거대화, 즉 양적 팽창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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