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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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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어느 ‘카더라’ 통신의 추억- 윤봉한(윤봉한치과의원 원장)

  • 기사입력 : 2014-12-0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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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반대말은 공산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 반대말은 독재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반대말이다. 민주주의 반대말인 독재는 군주제 또는 왕정이 아니다. 왕정의 반대말은 공화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더하자면 공산주의와 비슷해 보이는 사회주의 반대말은 자유주의라 한다.

    이런 걸 다 교과서에서 배웠다는데 기억에 없다. 변명이라면 메이지 무렵 일본에서 만들어진 ‘사회’ ‘자유’ 이런 번역어들이 어렵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떠오른 그림과 거리가 있다. 아무렴 학창 시절 공부를 게을리한 탓이라면 할 말은 없다.

    독특하게 ‘58 개띠’라 이름 붙은 나와 친구들은 평범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역시 독특한 이름을 가진 유신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냥 민주주의라 퉁 치지 않고 굳이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이름 붙인 사람은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한 사람이다.) 그 시절에도 요즘으로 치면 ‘루머’인 ‘카더라’가 많았다. 그중 기억나는 것은 ‘58 개띠는 대학도 무시험으로 간다더라’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모든 음모론의 필수인 그럴듯한 근거가 있었다. 우선 이미 엄청난 정책적 변화인 고등학교 평준화가 사전 예고 없이 시험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전격적으로 발표된 거였다.

    그리고 더욱 강력(?)하게는 무소불위 대통령 외아들이 우리와 같은 ‘58 개띠’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중학교 입학과 고등학교 입학을 무시험으로 통과한 친구들 사이에선 ‘기다려 봐. 대학도 그냥 간다’란 ‘카더라’가 공부하기 싫은 마음을 업고 그럴듯한 설득의 힘을 가졌다.

    그렇게 중3 올라가는 봄방학쯤에 발표된 서울과 부산의 고입 무시험 전형 발표로 나같이 공부 싫어하는 놈팡이들은 살판이 났다. 그런데 그런 평준화를 모두 다 좋아한 건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나름 다른 전략을 세웠던 친구들도 있었다.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은 그해 가을 한 친구가 함께 대구로 가서 경북고등학교 시험 치지 않겠냐고 물어온 것이다.

    둘러보니 비평준화인 경북고나 마산고에 가겠다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세상에 평준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그때 비로소 처음 알았다.

    고등학교 평준화 실시 이후 지난 40년 동안 외고니 과학고니 국제고니 하면서 조금씩 평준화의 틀이 변화돼 왔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사이 자율형 사립고까지 생겨나며 일반고 전반을 상대적으로 더 낮은 단계로 끌어내렸다.

    지난 교육감 선거 당시 몇몇 후보들은 계층을 고착화시키는 큰일이라며 일반고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공약 때문인지 당선되기도 했다. 지난 2일이다. 교육부는 교육감 권한을 축소하는 법 개정을 단행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자사고 지정 취소 시 교육부 동의를 필수로 한다. 세상에 평준화를 싫어하는 친구들이 여전히 많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됐다.

    아참, 그 친구는 경북고 시험에는 떨어졌지만 부산고에 들어갔다. 반면 나는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느라 통학 시간이 한 시간이나 걸리는, 게다가 목사가 교장인 변두리 미션스쿨로 떨어졌다. 대통령의 아들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지만 운 좋게 뺑뺑이를 잘 돌려서 청와대에서 멀지 않은 중앙고를 배정받았다.

    그리고 3년 뒤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육군사관학교로 진학해 버렸다. 나는 재수를 했고 ‘58 개띠’ 놈팡이들이 바라던 대학 무시험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윤봉한 윤봉한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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