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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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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양계 가업 이으려 귀농한 이정환·김민주 부부

“AI 위기 넘어 ‘착한 계란’ 만드는 게 우리의 꿈”
닭에 항생제 안쓰고 태교음악 들려주며 방사유정란 생산 시작
소규모 농가로 돌아가 모두가 행복한 삶 위해 살고 싶어요

  • 기사입력 : 2014-12-16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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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최대 양계단지인 양산에서 또다시 AI(Avian Influenza: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했다. 이정환(44)·김민주(39) 부부가 운영하는 ‘삼보농장’이 있는 상북면은 양산에서도 산란계(달걀 생산용 닭) 최대 산지다. 아직은 이곳까지 여파가 미치지 않았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양산에서는 지난 2004년과 2008년, 2011년에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닭과 오리 180만 마리(89억원 피해), 140만 마리(134억원), 1000마리(1억원)를 살처분했다.

    삼보농장도 2008년 인근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 때문에 키우던 닭을 모두 살처분해야만 했다.

    “자식 같은 닭들을 묻고 남편은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했죠.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상실감이 덮쳐 왔습니다. 저도 사흘간 밥도 못 먹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먹먹해집니다.”

    모든 양계농에게 닭은 자식 같은 존재겠지만 김씨 부부에겐 남다른 사연이 있다.

    삼보농장에 취재를 갔던 날, 공교롭게도 양산에서 AI가 발생했다. 방역 때문에 계사(닭 우리) 근처에도 가지 못해 닭도 보지 못했고, 달걀 선별장에만 소독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평소에도 아내인 민주씨는 계사에 못 들어간다. 계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남편 정환씨와 수의사 단 둘뿐이다.

    원래 삼보농장은 민주씨 친정어머니인 신부연(63)씨 부부가 운영했다. 그러다 2004년 민주씨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남편을 만나 2003년에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은 지 한 달이 지난 때였습니다. 막막했죠. 엄마 혼자서는 농장을 꾸릴 수 없었기에 남편에게 어떻게 할지를 물었습니다. 해운항 분야를 전공하고 항만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이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가족이 양산으로 왔죠.”

    가업을 잇기 위해 부부는 귀농을 결심했다. 올해로 딱 10년째다.

    “처남이 축산을 전공하고 먼저 양산에서 장모님을 돕고 있었지만 저는 양계는커녕 닭도 제대로 못 잡는 사람이었죠.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기에 무모하게 도전한 셈입니다.”

    그렇게 김씨 부부의 귀농이 시작됐지만 순탄치 않았다. 귀농한 첫해가 바로 AI가 첫 발생한 해였다.

    삼보농장은 케이지(공장식 밀집 사육 우리)와 방사를 병행한다. 3개 동은 케이지이고, 농장 맨 윗동은 닭을 우리 안에 그대로 풀어놓고 키운다. 닭들이 낳은 달걀은 정환씨가 일일이 손으로 주워야 한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자연방사 유정란을 생산하면서 김씨 부부는 동물 복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삼보농장에서는 태교음악을 닭들에게 들려준다.

    “건강한 닭이 건강한 달걀을 낳겠죠.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런 달걀이 당연히 먹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겁니다.”

    김씨 부부는 항생제도 전혀 쓰지 않는다. “항생제를 쓰면 당장은 괜찮을지 몰라도 내성이 생겨서 더 강한 항생제를 써야 하고, 더 이상 약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비용도 많이 들고 품도 들지만 그래도 이 방법이 제일 좋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삼보농장은 경남 최대 양계단지인 양산에서 가장 먼저 HACCP(Hazard Analysis and Critical Control Points: 위해요소 중점 관리 기준) 인증을 받았다. 경남에서는 두 번째다. HACCP은 생산-제조-유통 전 과정에서 식품 위생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해요소를 분석하고, 제거하는 등 체계적인 식품 안전관리 제도다.

    삼보농장은 가족농이다. 김씨 부부가 생산에 전념하고, 판매와 유통은 남동생 부부가 맡고 있다. 삼보농장 계란은 대부분 김해축협에 판매되고 있고, 이마트 양산점에도 올해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방사 유정란은 부산 지역에 소규모 유기농 전문점을 통해 팔려 나간다.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룬 것도 같지만 김씨 부부는 아직도 ‘공부 중’이다. 민주씨는 양산시농업기술센터가 운영하는 ‘강소농 교육’을 받았다. 양산에서 5명만 뽑혔고, 지원금도 2000만원 받았다.

    양산시 문란주 과장, 장미 주무관과 양계와 농장 경영에 관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새로운 지식과 경험도 쌓고 있다. 민주씨는 이 교육을 통해 삼보농장만의 새로운 브랜드도 개발했다. 김해축협에서 팔릴 ‘아침에 좋은’ 브랜드가 민주씨 작품이다.

    남편 정환씨는 늦은 밤이라도 민주씨와 그날 받은 교육에 대해 토론하고, 별도로 인터넷을 통해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항만 일밖에 몰랐는데 지금은 양계밖에 모르는 사람이 됐죠.

    HACCP 인증 받고 방사 유정란에 관심을 가지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착한 계란’이 바로 우리 꿈입니다.”

    케이지를 통한 대량 생산을 하면 수익은 더 올릴 수 있다. 그러나 김씨 부부는 방사 유정란만을 생산하는 소규모 농가로 돌아가려 한다. 양계에 대한 철학도 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자녀 때문이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이 어느 날엔가 내일 자고 일어나면 닭들이 모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죠. 남편은 계사에, 저는 저대로 교육도 다니고 판로 개척한다고 나가 있으니 혼자 있는 처지가 싫었던 겁니다. 저 역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동생과 부산에서 따로 생활해야 했기에 그 아픔을 잘 알죠. 닭과 사람 모두 행복한 것이 무얼까 고민했고,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어요.”

    AI로 인한 아픔을 딛고 일어선 김씨 부부에게 또다시 AI 공포가 덮쳤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극복할 것이고, 착한 계란을 만들기 위한 꿈도 계속될 것이다.

    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사진설명] 양산시 상북면에서 ‘삼보농장’을 운영하는 이정환·김민주 부부가 아침에 양계장에서 수거한 달걀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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