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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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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대학 속의 인문학, 삶의 희망- 정차근(창원대 중국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14-12-17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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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기업에서는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 인문학(人文學 : humanities)이란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즉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지난 5월 8일 연세대학교 지식향연에서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은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향기롭게 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인문학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여러분의 중심을 잡아주고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입니다”라고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렇게 기업에서 인문학적 인재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과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또 지난 10월 30일부터 3일 동안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제3회 세계 인문학포럼’이 개최됐다. 이는 인문학 관련 국제행사로서 ‘질주하는 과학기술 시대의 인문학’에 대한 고민의 자리였다.

    인문학적 고민이란 무엇일까? 삶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일상(日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한 개인의 일상은 자신의 통상적인 활동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갇혀 있는 폐쇄공간이기도 하다. 닫힌 공간으로서의 일상은 자신으로 하여금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실체이다.

    우리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거나, 일상 안에서 자유를 찾아 나섬으로써 출구를 찾을 수 있다. 이 출구의 핵심 사고가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다. 인문학적 소양은 인간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선과 악의 경계 지점을 넘나드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소설가 조정래는 인문학적 소양의 한국적 버전(version)으로 보고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고도 모르는 척을 들고 있다. 이런 경지에서 열리는 세계는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비로소 벗어나서 여유와 치유의 길을 읽을 수 있는 안목으로 다가온다. 버리니 채워지는 몫이다. 인문학적 사고와 상상력은 일상 밖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삶의 활력과 의미를 확인하고 산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이것은 각자가 처한 삶의 여러 문제 상황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양성의 텃밭이 되고, 다양성 그 자체가 어떤 문제에 대한 해답 제시의 근거가 된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은 우리 삶의 희망이며, 존재 이유이다.

    그런데 대학들이 전례 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 흔들리는 중심에 특히 인문학이 위치하고 있다. 대학의 위기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학구조 개혁안’에 잘 나타나 있다. 사회적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향후 9년 동안 현 입학 정원의 33%에 해당하는 16만명을 감축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여기서 중요한 일은 기본을 되짚어 보는 일이다. 그 기본은 인문학이 지닌 현실적 역량과 향후 펼쳐질 그 엄청난 가능성을 읽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 구조 개혁의 현실은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과를 흔들고 있다.

    대학들이 학생 반발을 감수하면서 인문·사범계열 학과 구조 조정에 나서고 있다. 바로 경쟁력 있는 학과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소위 돈 되는 학과를 살리고, 당장 이익을 못 내거나 취업률이 낮은 인문·사범계열 학과를 퇴출하는 방식은 교육 현장을 황폐화시키는 일이다.

    실용학문의 근본은 인문학이다. 근본이 무너지면, 실용학문 또한 발전할 수 없다. 대학의 생사가 걸린 구조 조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 정신을 지키는 것이다. 인문학은 모든 길을 열어주는 가능성의 학문이다. 한계 상황에 대한 특효 처방이 바로 인문학적 소양이다.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듯이 인문학을 통해 삶의 희망을 열어나가야 한다.

    정차근 창원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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