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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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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한국문학 생생 프로젝트- 성윤석(시인)

  • 기사입력 : 2014-12-19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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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 소설을 배워서 시인이나 작가가 될 수 있다면, 시나 소설은 기술이나 자격증이지 문학이 아니다. 나는 무슨 창작반 같은 데서 좋은 문인이 나오는 모습을 본 일이 없다. 게다가 문학에 무슨 지방이 있겠냐만, 여러 지방에 노골적으로 등단반 같은 게 생겨나고 있는 걸 보면 우리 문학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 버렸는지, 고개를 흔들 정도다. 삶의 체험과 철학과 오랜 독서와 사유의 깊이도 없이 오로지 등단만 좇는 이들과 그들을 부추기며, 등단 실적을 내놓아야 하는 현실이 마치 자격증 학원을 방불케 한다. 그렇게 많은 신인 작가들이 해마다 배출되고, 저마다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 수백 개인 나라에서 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고 노벨문학상은 해마다 이 나라를 배제하는가. 왜 국내 문학상 수상작품집들이 서점에서 100부도 팔리지 않는가.

    나는 무슨 문학단체 장을 줄줄이 명함에 박아놓고 자칭 작가네, 문학평론가네 하며 행사장마다 나타나는 이들을 믿지 않는다. 쓰레기가 될 책을 엮어 놓고 거창하게 출판기념회를 열고 정치인까지 와서 축사를 하는 이들은 더더욱 믿지 않는다.

    최근에 박남철 시인이 타계했다. 늑대의 피를 가졌던 시인. 숱한 여성들과의 추문과 안하무인으로 문단과 문인들과의 불화를 넘어 세상과도 끝끝내 불화했던 시인. 딱 한 번 만났으나, 탁월한 시냐, 인간이냐를 고민하게 했던 시인. 그는 세상을 견디지 않고 세상이 그를 견디게 했던 유일한 시인이다.

    무릇 글쟁이는 글이든 사람이든 소화불량의 존재여야 한다. 그것이 주변이든 세계이든. 제도화되기를 경계해야 한다. 제도 속에 들어가는 게 싫어 문학상을 고사하는 이들도 있어 왔다. 문학에는 오로지 새로운 작품만 있을 뿐. 아예 처음부터 권력도 예의도 없는 법이다.

    일전에 마산에서 목포행 완행열차를 무려 다섯 시간을 타고 가며, 가지고 간 시집 한 권이 최영철 시인의 열 번째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였다. 목포행 완행열차처럼 부산과 서울을 다니다, 이제는 김해의 도요마을에 정착해 느리게 살고 있다는 최영철 시인이 준 시집이다.

    여기서는 그냥 형이라 부르겠다. 최영철 형의 시집 속에 ‘한국문학 생생 프로젝트’라는 시가 있어 혼자 껄껄거리며 읽었다.



    잘 써야 하는데/배가 불러지면서/잘 못 쓰고 있는 놈

    잘 쓸만 한 데/ 뚜렷한 전기가 없어/허송세월하는 놈

    모든 우아한 소지품 압수

    사흘 정도 냅다 굶기고/ 두들겨 패는 거지

    -최영철 ‘한국문학 생생 프로젝트’ 중-



    날로 기울어가는 한국문학이 최영철 형은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나도 좀 형한테 체포돼 사흘 정도 굶고 싶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이 다시 생생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금 일부 되돌려받기, 수상자 바꿔치기 등 온갖 물밑의 일이 다 생기는 문학상을 100분의 1로 줄여야 한다.

    작가에게 가는 모든 지원을 최소화해야 한다.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너무 배가 불렀다. 언젠가 형과 나눴던 대화다. 형, 알았어요. 글 좀 쓰게 해줘요. 도요문학행사엔 내후년쯤 갈게요.

    성윤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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