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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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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꿈꾸자, 경남] (1) 별을 꿈꾸는 여고생 댄서

효정이와 한나 ˝왜 남들과는 다른 길로 가느냐고요?˝

  • 기사입력 : 2015-01-01 22: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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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은 아이브로우와 아이라인, 그리고 마스카라. 입술이 도드라져 보이는 붉은색 립스틱을 칠한 앳된 얼굴이다. 배꼽티에 몸에 밀착되는 타이즈와 운동화를 신은 두 댄서가 등장했다. 기대 이상의 강렬한 첫인상, 그들은 여지껏 만나본 적 없는 새롭고 남다른 세븐틴(seventeen)이다.

    우한나(창원 신월고1)와 배효정(창원 명곡고1), 언제든 무대에 오를 자세를 갖추기 위해 메이크업을 유지하고 의상을 입고 있는다는 두 소녀는 ‘멋진 안무가를 꿈꾸고 있다’는 짧은 소개를 뒤로 하고, 바로 춤을 춰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설명하기에 춤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보통의 17세들이 방과 후 입시학원으로 가거나 과외 선생님과 마주 앉아 있을 그 시간, 연습실에서 춤추고 있기까지 두 사람은 어떤 여정을 거쳐온 걸까?

    ▲효정‘s story

    효정이는 공부 잘하는 믿음직스러운 맏딸이었다. 초등학생부터 중2때까지 줄곧 전교 10등을 놓치지 않는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다.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하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효정이의 모습은 부모로서 당연한 기대였다.

    효정이 자신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TV에 나오는 아이돌 가수를 보며 춤과 노래를 따라하는 것은 10대들의 특권이기에, 친구들과 모여 다니며 춤추는 것이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기타 연주와 작곡 등 음악에 관심도 많아 춤도 그저 관심거리 중 하나일거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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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 앞을 지나다가 길거리 연습 중인 수강생들을 보게 된 건 운명같았다. 순간 매료돼 버렸기 때문이다. 진짜 춤을 본 후부터 친구들과 어설프게 추는 춤으로는 욕구 충족을 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동의 아래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 해소 겸 취미활동 겸 댄스아카데미에 등록했다. 스텝에 익숙해질수록, 동작을 익힐수록 효정이의 머리와 가슴 속에선 춤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아! 춤출 때 내가 가장 행복하구나. 이 길이 내 길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본격적으로 춤을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허락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딸과 부모 사이는 불편해졌다. 효정이가 보통 아이들처럼 공부하고 미래를 준비해 나가길 바랐던 아버지는 딸의 간절함에도 끝까지 완고했다. 딸을 응원해주고 싶었던 어머니는 춤만 보고 달려가는 효정이와 철벽 같은 남편 사이에서 2년 넘게 속앓이를 해야 했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아버지는 효정이의 진심어린 눈물 앞에 속절 없이 무너졌다. “아버지의 속마음을 전해 듣고 한날 저녁 부모님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고 말았죠. 좋아하는 것을 넘어 확신이 든 일을 계속 하고 싶다는 욕심과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눈물과 함께 범벅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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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열린 댄스 대회에서 효정이가 속한 팀은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무대 영상을 보고, 또 현장의 분위기와 효정이의 실력을 전해들은 후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도 효정이를 응원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한나’s story

    무남독녀 외동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한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 앞, 특히 무대 위가 좋았다고 했다. 본인 속에 잠재된 끼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매우 강해 춤이라는 것을 선택했다. 춤을 추면 행복하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6세부터 발레, 벨리댄스, 스포츠댄스 등 각종 춤을 섭렵했다. 취미로 배우던?어번 댄스를 13세부터 본격적으로 추기 시작했다. 리듬과 감정에 집중하는 어번댄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단순히 춤 동작을 배울 뿐 아니라 어떤 외부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마인드, 팀원으로서 역할 등 대인관계, 하나의 춤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신체적, 정신적 훈련을 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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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과 갈등을 빚은 효정이와는 달리 춤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자신의 꿈을 바로 알고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열정과 노력을 쏟아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모는 가르쳤다. 한나는 자신의 결정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댄서의 길을 가는 자신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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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힘들어 슬럼프에 빠지면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해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제가 왜 이 길을 선택했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시죠. 아빠는 항상 무조건 제 편이라 정말 든든하고 감사해요.”
    남들보다 재능을 빨리 발견했고, 일찍 꿈을 정하고 한 길로만 달려오다 보니 또래에 비해 자신감도 크고, 목표 설정도 정확하다. 댄서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말은 더 이상 한나에게 상처나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가장 되고 싶은 것은 세계적인 안무가이지만 단순히 댄서나 안무가에 그치지 않는다. 춤으로 어떻게 사람과 희노애락 감정을 공유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한다.

    ▲“I have a dream”

    한나와 효정이는 창원시 중앙동 SMS 댄스전문아카데미가?운영하는 어번댄스(Urban dance)팀 ‘비바글램’의 막내로 활동 중이다. 한나는 4년째, 효정이는 2년째인데 고등학생은 둘 뿐이다. 이들이 추는 어번댄스는 스트리트 댄스의 한 종류다. 주로 팝 음악에 맞춰 추는 춤으로 가사에 안무 동작을 맞추는데 그래서 안무 구성과 리듬에 중점을 두는 장르다. 가수 뒤에서 춤추는 백댄서와는 다르다. 자신들만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력과 창의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안무가를 꿈꾸는 한나와 효정이가 풍덩 빠져 있다.

    학교 친구나 보통 10대와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묻자, 이미 프로정신으로 무장된 두 사람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우리 둘은 확실한 꿈이 있잖아요. 그런데 친구들은 꿈이 없어요. 우리는 춤을 우리가 정말 원해서 추는 거지만 친구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 공부를 하는 건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건지 모르거든요. 진로수업 때 ‘넌 꿈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몰라’라고 답하는 친구가 거의 절반이에요. 갈 길을 정하고 자신있게 그 길을 가는 우리를 보면서 친구들은 오히려 부러워해요.”

    정작 그들이 속상한 것은 배운 만큼 춤이 잘 춰지지 않을 때, 남들보다 잘 추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란다. 진로나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고민은 이미 정리된 지 오래였다. 그들에게 지금의 제1과제는 비바글램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것과 대학 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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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진학 후 직업으로서 댄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한나는 “70~80년을 사는 인생에서 대학이 전부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하지만 대학을 가야한다는 생각은 있고, 입시를 잘 치러야 겠다는 욕심도 있기 때문에 지금 추는 춤 외에 다른 장르 연습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효정이 역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하면 춤을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건 당연하고, 자신도 있다”면서 “지금은 팀활동에도 중점을 두고 있는 만큼 지역 대학에 진학해 비바글램의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할 거다”고 계획을 밝혔다.

    둘도 없는 친구이자 질 수 없는 라이벌인 효정이와 한나는 비바글램으로 활동했던 2~4년간 매년 10~20개의 크고 작은 대회에 출전했다. 지난 1월과 10월, 서울 세종대에서 열렸던 어번대스대회 ‘FEEDBACK’에 참가해 2위를 수상한 것은 가슴 벅찬 성과다. 내로라하는 전국 40여개 팀이 참가한데다 국내에서 열린 최초의 어번댄스대회였기 때문이다.

    대회를 앞두고는 더욱 치열하게 연습하지만 평소에도 두 사람이 흘리는 땀은 어떤 전문인 못지 않다. 하교 후 6시부터 체력 단련과 수업, 이어지는 팀 연습, 개인 훈련까지 하고 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여서 귀가 시간은 거의 새벽 1~2시다. 허리, 다리, 발목, 인대에 입는 잔부상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춤을 못 추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한나와 효정, 그리고 그들이 속한 비바글램은 꿈에 한발짝 다가서기 위해 내년 5월 미국에서 열리는 어번댄스대회 중 가장 권위 있는 ‘바디록(Bodyrock)’대회에 도전한다. 비바글램을 세계 최고의 어번댄스팀으로 만드는 게 두 사람의 목표다.

    춤 출 때만큼은 17살 여고생이 아니라 프로댄서인 한나와 효정이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춤 출 때 살아있음을 느끼고 행복해요. 막연히 TV에 나오는 스타를 꿈꾸는 게 아니라 춤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댄서이자 안무가가 되고 싶습니다. 무대에 오르기 위해 우리가 땀 흘렸던 많은 시간과 응축된 열정을 한번에 보여줄 때 희열을 느껴죠.”

    또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다. 한나와 효정이는 스스로 최고의 10대를 보내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단기적·장기적 목표를 위해 친구들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고 노력하고 있죠. 오늘, 20~30년 후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 거라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남들에 비해 우리의 10대가 후회 없을 거라는 확신은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우리는 최고의 10대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한나와 효정이를 향한 응원

    ■효정이의 부모님 배익점·김민정 “네 꿈을 응원할게!”

    효정이가 춤추는 것을 반대했던 부모는 이제 효정이의 둘도 없는 팬이자 지지자가 됐다.

    딸이 원하는 것을 하게 허락하고 지원해주고 싶었던 엄마 김민정씨는 효정이가 공부에 매진하길 바라는 아빠의 역정을 효정이 대신 다 받아냈다.

    김씨는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렸던 ‘FEEDBACK’ 대회를 잊을 수가 없다. 무대 위에서 춤추는 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효정이가 넓은 무대를 뛰어다니며 춤추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찬데, 댄서 효정이는 어느 댄서보다 춤을 잘 췄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잘 하는 모습을 모니 그동안 제대로 못해줬던 게 미안하고, 혼자 연습하고 애쓴 게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제 아버지도 효정이의 재능을 인정하고 효정이가 가는 길을 묵묵하게 지켜보고 있다. 맞벌이를 하느라 처음부터 끝까지 원하는 만큼 챙겨줄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늘 응원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제 딸이라서가 아니라, 효정이가 춤을 정말 잘 춥니다. 한마디로 잘 됐으면 좋겠어요”라며 “항상 겸손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한나의 부모님 우민규·하정미 “너의 행복이 최우선…남을 치유해 줄 춤을 춰라”

    한나가 책을 많이 읽는 아이가 되길 바랐던 부모는 제1가치를 한나의 행복에 맞췄다. 그래서 한나가 스트리트 댄스를 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반대하지 않고 적극 지원했다. 남들이, 사회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 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나의 엄마인 하정미씨는 “초등학생 때 적성검사를 하니 한나가 무용 체육계에 재능을 보였다”며 “TV에 나오는 백댄서는 원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시키는 게 제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나가 매우 행복해하며 무엇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좋지만 부모로서 사회적 편견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나의 부모는 한나에게 철학적·인문학적 소양을 갖춰 예술로 승화시킨 춤으로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댄서가 되라고 주문한다. 단순히 춤추는 댄서에만 머무르지 말라는 것이다.

    하씨는 “댄스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이 변화하면 예술의 영역도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니깐 작은 것에서부터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해요”라며 “춤에만 치중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공부도 병행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승섭 원장 “편견은 너희들의 열정 어린 눈빛으로 깨버려!”

    남다른 10대를 보내고 있는, 오늘의 효정이와 한나가 있기까지 부모 못지 않은 역할을 한 사람이 SMS 댄스아카데미의 박승섭 원장이다. 박 원장은 취미로 춤을 배우던 효정이와 한나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춤을 전문적으로 출 수 있게 권유했다. 평범한 사람들이 누구나 가는 길이 아니라 ‘춤, 몸과 감정, 열정’으로 세상과 부딪쳐 보라고 제안했고, 두 사람의 부모와 소통하면서 설득했다. 결국 지금 효정이와 한나는 박 원장이 결성한 비바글램의 당찬 막내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박 원장은 “리듬감이나 음악을 듣는 법, 해석하는 것은 어디서 배운다고 또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닌데 효정이과 한나는 이해력과 습득력, 박자, 센스, 창의력, 표현력 등 춤을 추기 위해 필요한 감각과 재능이 뛰어났다”며 “무엇보다 춤을 출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아이들의 열정을 높게 샀다”고 두 아이를 비바글램 멤버로 발탁한 배경을 설명했다.

    춤 기술을 가르치기 이전에 ‘댄서’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을 이겨내는 것부터 가르쳐야 했다. 시쳇말로 ‘딴따라’라고 비하하는가 하면 ‘예술이 아니다’ ‘미래가 없다’며 평가절하 당하기 때문이다.

    “댄스 분야에 무엇이 될 수 있게 이끄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사회에서 인정받고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는 댄서가 되도록 가르칩니다.”

    편견을 깨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추위도 날려버릴 펄펄 끓는 댄서들의 열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무대 위 댄서들의 진정성 담긴 눈빛을 본 후에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더라구요. 그래서 크든 작든 가능한한 많은 무대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효정이와 한나를 비롯해 댄서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창원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보는 눈을 높이고 세계 무대를 겨냥하라고 주문한다. 내년 5월 ‘바디록(Bodyrock)’대회에 출전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박 원장은 두 사람에게 “춤을 사랑하는 그 순수함을 유지하고,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꿈을 이뤄가길 바란다”고 애정 어린 조언을 남겼다. 김희진 기자 likesky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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