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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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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떠나는 세계여행] 신의 손길로 빚어낸 눈부신 황량함

‘바람이 만든 기암괴석’ 터키 카파도키아에 가다

  • 기사입력 : 2015-01-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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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파도키아에는 풍화작용으로 생긴 기암괴석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사진은 남근석 모양 때문에 이름 붙여진 러브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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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파도키아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벌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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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시간 야간버스를 타고 저가항공 비행기처럼 좁은 좌석에서 육중한 몸과 그다지 길지도 않은 두 다리를 어쩌지 못해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창문 너머 아나톨리아 평원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일출이 예쁘다는 상념 대신 ‘기나긴 야간 이동의 끝이 보여서 열 시간 내내 불편했던 몸과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편안해짐을 느꼈다.

    카파도키아 여행의 베이스캠프 격인 괴레메 마을에 도착을 하고 관광안내센터에 예약한 숙소 이름을 말하니 곧바로 숙소에 픽업 전화를 무료로 걸어준다. 7년 전과 비교하면 너무나 편리해진 시스템에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뭔가 세련된 여행자들을 위한 이 풍경이 서운해지려는 찰나, 숙소에서 데리러온 차를 타고 가서 체크인까지 무사히 마치고 나니 편해져서 좋다는 느낌이 든다. 이 골목길을 숙소 찾느라 짐 들고 헤매지 않아도 되고, 7년 전과 비교하면 내 마음 상태 역시 편리함에 길들여진 게 틀림없다.

    터키의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카파도키아는 취향이 독특한 그 어떤 여행자가 찾더라도 반드시 한 가지 이상은 만족시켜 주는 땅이다. 그 어떤 까다로운 여행자가 찾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첫 번째 매력은 숨막히게 뿜어내는 풍경이다. 카파도키아에 도착하면 패키지 관광객이든 자유 여행자든 카파도키아를 둘러보는 ‘국민루트’가 있다. 일명 그린투어, 레드투어, 로즈투어로 불리는 로컬 투어를 신청해 막막하리만치 너른 벌판을 둘러보게 된다. 일정이 짧은 것이 장점이라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들에게 제격이고, 여유롭게 여행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자동차나 스쿠터를 빌려 다니는 여행이 적합하다. 좀 더 여유롭게 카파도키아를 느끼고 싶어 내가 선택한 것은 자동차 렌트. 국제면허증만 있으면 간단하게 차량을 빌릴 수 있다. 터키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깎아주세요’라는 현지어 “인디림”을 남발하니 형제의 나라 한국인에게 유독 관대한 터키 사장님이 유쾌하게 가격 흥정에 응해준다.

    기분 좋게 차도 빌렸겠다, 지도상으로 가장 멀리 보이는 곳을 목표지점으로 찍고 달리기 시작한다. 외국영화에서 본 듯한 끝없이 이어진 길을 달리다 보면 그 짜릿함에 머리칼이 쭈뼛쭈뼛 서고, 느낌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야간 이동의 힘겨움도 잊게 만든다. 한참을 달리다가 길가에서 만난 양떼와 목동 아저씨는 서비스다. 길가에 차를 잠시 세우고 기념 샷을 찍고 ‘메르하바(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자유여행의 가장 큰 혜택이다. 서른이 넘어 다시 만난 카파도키아는 늘 그리워하고 추억했음에도 처음 마주한 것처럼 신비스럽고 사랑스러웠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생소하고 신비스런 풍경은 수없이 보아온 블로그의 사진첩이나 여행안내책자조차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 살아오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 앞에 서면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아니, 나온다고 해도 그 표현력이라는 게 참으로 단순해진다. 기껏 해야 ‘우와, 너무 예쁘다’. 이곳에서 내가 뱉어 내는 말들이 너무나도 촌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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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집과 암굴교회를 둘러볼 수 있는 야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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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가 붉은 장미처럼 보여 이름 붙은 로즈밸리.

    카파도키아는 황량하고 황폐한 지형에 기암괴석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어 마치 다른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깊게 팬 계곡과 바위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바위 하나하나에 신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다. 러브밸리, 로즈밸리, 가족바위, 낙타바위, 비둘기계곡 등 이름에 꼭 걸맞게 생긴 바위들 모습도 참 신기하지만, 같은 지형과 같은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구획별로 각기 다른 모양의 바위들의 모습을 보고 ‘괴레메에는 바람의 풍화작용이 개별 맞춤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각기 다른 모양의 바위들이 한 공간에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분명 그 옛날 용암이 흘러내리고 바람이 지나갈 때 훗날 우리들이 ‘똑같은 바위촌이잖아’라고 실망하지 않도록, 카파도키아를 여행하면서 좀 덜 지루하도록 만든 신들의 섬세한 배려일 거라고.

    카파도키아 여행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벌룬(열기구) 투어일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카파도키아의 전경을 하늘에서 감상하는 것인데 일출 전 깜깜한 새벽에 벌룬에 탑승해 하늘을 날다 보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빛에 반사돼 반짝이는 바위계곡들의 모습, 그리고 각양각색의 벌룬들이 하늘을 수놓은 모습은 말 그대로 사랑스럽다. 전날 트레킹을 하면서 보아 왔던 풍경과는 색다른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번에 100여 개의 벌룬들이 한 번에 떠오르는데 그 모습이 꼭 하늘에서 추파춥스 사탕이 내려오는 느낌이다. 착륙 후 샴페인 파티는 무사비행을 축하해주는 보너스!

    눈앞에 펼쳐진 기이한 풍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눈에 들어오는 또 다른 풍경이 있다. 카파도키아의 두 번째 매력,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와 유적지. 바로 이 계곡들 사이사이, 바위품 속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바위들 속에 예배당이 있고, 땅 아래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지하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로마시대 초기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지하도시와 암굴교회를 만들어, 마을을 형성해서 숨어 지냈던 곳이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들이 가득한 것도 너무 신기하지만 지하동굴 속에 숨어 지내며 살아온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전율을 느끼게 한다. 지금이야 저 높다란 바위에 오르기 위해 길도 나있고 편리한 계단이 설치돼 있지만 상상하기 힘든 그 옛날에 어떻게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을까?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위대한 작품 앞에서 또다시 할말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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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호텔이 모여 있는 괴레메 마을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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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머프의 배경이 된 버섯 모양의 바위 파샤바.

    세 번째 매력은 현지인들과 소통이다.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괴레메 마을을 벗어나 이름 모를 낯선 마을로 산책을 갔더니 눈만 마주쳐도 ‘메르하바!’ 먼저 건네주는 인사에 감동받아, 답으로 살짝 미소를 보내면 동양인이 신기한지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상식 선에서는 이슬람 문화권에 사는 현지인들이 보수적일 거라고, 낯선 이들을 경계할 거라 여겼는데 터키는 다른 이슬람 나라들에 비해 많이 개방돼서인지 외국인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다. 게다가 형제의 나라인 한국인들에게는 더더욱 살갑게 대해준다. 여행자는 나이고 내가 그들을 관광하러 온 것인데 자연스레 주객이 전도돼 그들이 나를 신기해했다. 길을 거닐고 있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인사를 하고 다가와서 말을 건다. 오늘 하루 이 낯선 마을에서 얼마나 많은 사진 모델이 되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미소를 길에서 선물받았는지 모른다.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에서 노닥노닥 수다를 떨다 보면 자연스레 터키인들의 국민차 ‘터키쉬차이’를 내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다. 한국땅에서 쉽게 듣기 힘든 칭찬 또한 이들은 인색하지 않다. 예쁘면 예쁘다고, 고마울 땐 고맙다고 그때그때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그들의 대화방식이, 미소가 부러웠다.

    아마 다시 가더라도 이곳은 처음 도착한 여행자처럼 낯설고 신비스럽게 보이겠지만 포근히 날 반겨 줄 것만 같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과 사람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생소하고 신비스런 풍경을 다시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했던 시간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여행팁

    ▲이스탄불에서 카파도키아까지는 야간버스로 11시간 정도 소요된다. 현지 항공을 미리 예약하면 버스비 가격으로 시간도 단축되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카파도키아를 둘러보는 방법은 도보, 트레킹, 자전거, 현지버스투어, 말, 스쿠터, 렌터카 등 다양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카파도키아의 절경은 새로운 우주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므로 열기구 투어를 반드시 해볼 것.

    ▲카파도키아에는 동굴집을 개조한 숙소가 많다.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부터 호텔까지 본인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예약할 것.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찻집에서 터키쉬차이를 마셔보자. 또 다른 터키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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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미정 1980년 창원 출생 합성동 트레블까페 소금사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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