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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곰팡이- 이문재

  • 기사입력 : 2015-01-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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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 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고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 사람을 살리는 곰팡이는 페니실린을 선물한 푸른곰팡이이지요. 페니실린이 염증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했다면 이제 인간의 마음속에 새로운 푸른곰팡이를 배양해야 할 위기의 때가 됐습니다. 조급함. 기다리지 못하는 병이 높은 치사율을 숨긴 채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 편지를 주고받는 마음의 산책을 포기한 현대인. 편지가 배달되는 사나흘 간의 기간은 설렘과 그리움과 기다림이 곰삭는 시간으로서, 그 발효의 효과가 마음의 염증을 막아주는 페니실린이 돼 두 사람의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시켜 줍니다. 그러나 종이 편지의 유통을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인간의 내면은, 관계의 염증의 결과로서 빠른 이별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마음을 주고받는 속도의 바이러스가 인간관계를 병들게 하는 것이지요. 우체통의 색깔이 그래서 빨간색이라는 시인의 말이 점멸하는 신호등처럼 깜박거리고 있네요. 그나마 우체통마저 사라져가는 이 위험한 현대의 신호체계라니요?

    조예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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