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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찾아서… (1) 의령군 가례면 서암정의 ‘옛날식 밥상’

제철 식재료로 입맛대로 차린 상, 내 입맛에 딱

  • 기사입력 : 2015-0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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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섯도토리묵볶음

    평생 수집한 민속품 옮겨와 차린 식당
    장승·절구·옹기 등 예스러운 풍취 ‘물씬’
     
    자락밭서 직접 키운 유기농 농산물과
    말린 봄나물로 만든 소박한 밑반찬
     


    갖은 양념 넣고 푹 졸인 붕어찜은
    데친 두부·배추김치 걸쳐 먹어도 일품
     
    음식경연 수상한 버섯도토리묵볶음은
    쫀득쫀득한 식감이 고기를 씹는 듯


    ‘맛’은 이제 단순한 미각뿐 아니라 ‘여유’와 ‘멋’까지 담아내는 생활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맛’을 찾아 먼길을 나서는 불편도 기꺼이 감수한다. 새해 기획물로 써내려 갈 ‘맛을 찾아서…’는 ‘맛’을 찾아 떠나려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자굴산을 바라보며 구불구불 달려 ‘치유수목원’을 지나고 시골길을 한 굽이를 돌자 순간 탁 트인 저수지 풍경을 만난다. 서암저수지. 의령군민의 식수로 쓰일 정도로 깨끗하다는데, 겨울철과 어울리지 않는 푸르스름한 물빛이 따뜻하고 깊어 보인다. 서암지를 마주보고 ‘서암정’이란 돌간판과, 안내원처럼 줄지어 선 장승을 보고 좌회전해 산길을 올랐다.

    관리소인가 싶게 앙증맞게 지어놓은 초가집이 눈길을 끌고, 주차지까지 이어지는 스무여 개의 장승들 표정이 제각각이어서 식당 초입에 들어선 손님들을 실실 웃게 만든다.

    즐비하게 늘어선 절구와 옹기도 서암정의 예스러운 풍취를 느끼게 한다. 짐작건대 수십 개의 절구는 봄·여름에는 수련을 피우는 수반 역할을 할 것이다. 겨울철 방문객인 우리는 그 화사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갑자기 서암정 마당에 들어선 손들이 웃어댄다. 꼬랑지 흔들며 반갑게 마중 나온 흰둥이, 깜둥이도 정스럽지만, 백자, 청자색 요강단지들이 담벼락을 이루고 있는 모양새가 큰 웃음을 준 탓이다. 거기다 낯선 이들을 보고도 짖지 않는 개들을 젖히고 꼬꼬댁거리며 무리지어 뛰어나오는 예닐곱 마리 토종닭의 씩씩함이 손님들을 또 한 번 당황시킨다.

    그 소란통에 앞치마와 장화 바람으로 손님을 맞으러 나오는 이가 있다. 몇 차례 개인 소장 민속품 전시회를 가질 정도로 대단한 수집가인 주정분(59)씨. 옛날식 식단으로 방문객의 식단을 마음대로 정한다는 서암정의 마님이다.

    “제철 식재료로 옛날식 밥상을 차립니더. 특별할 것도 없는데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네예.”

    말년을 고향에서 보내려고 집을 짓고 평생 수집한 민속품들을 옮겨와 식당을 꾸렸다. 종가의 종부로 한평생 손 마른 적 없이 밥상을 차리던 친정어머니 덕에 만만찮은 음식 솜씨를 갖고 있는 주씨는 제철 식재료로 메인 메뉴를, 전통 장아찌와 갖가지 김치와 나물, 된장으로 상을 차려낸다. 예약 손님만 받고 있는 서암정은 어쩌다 기회가 돼서 다녀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냥 집밥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더. 오늘은 붕어찜으로 상을 차렸는데, 젊은 사람들 입맛에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더.”

    매실, 감, 밤, 콩 등 자굴산 자락밭에서 나는 농산물로 토양 유기농 인증까지 받은 강직하고 고집스러운 주씨의 성격도 음식 맛에 한몫하고 있다고 일행 중 누군가 귀띔한다.

    서암정 실내는 그야말로 전시장이다. 주물 난로를 끼고 빙 둘러쳐진 반닫이, 삼단장과 선반 위에는 질그릇, 찻잔, 호리병, 목재 찬합, 방짜유기까지 옛 여인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진열돼 있다. 목각 인형이나 비녀, 노리개, 개다리 소반 등 요즘 보기 드문 물건들이 연신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이름조차 까마득한 옛 물건들을 요리조리 보며 그 쓰임새를 짐작해 맞추다 보면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금방 가버린다.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서암지 풍경을 배경으로 주인장이 ‘제 입맛’대로 차려내오는 한 상을 받았다.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황금빛 방짜유기가 상 위에 등장했다. 난생처음 고급스럽게 차려진 방짜유기 밥상을 대하자 제법 귀한 대접을 받는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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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물 반찬
    “시래기 된장에 나물 반찬인데 좀 생뚱맞을지 모르겠네예. 그래도 예쁘다 아입니꺼? 방짜유기는 그릇 자체가 해독 작용을 한다니까 보는 것 이상으로 몸에도 좋다네예.”

    반들반들하게 닦인 그릇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고 눈으로 먼저 시식했다. 소복하게 담긴 나물은 시간에 농축된 빛이 역력하다. 달래순, 참나물, 어수리 등 말린 봄철 산나물과 말린 가지까지, 소박하지만 풍성하게 입맛을 돋우는 밑반찬들. 농업기술센터 음식경연대회에서 수상까지 했다는 버섯도토리묵볶음도 이색적이다. 산에서 딴 야생 표고버섯과 채 썬 도토리묵을 건조시켜서 간장과 참기름으로 볶았다. 주씨는 직접 메주를 띄워 집간장을 담그고, 상 위에 오른 두부도 예약 손님에 맞춰 바로 전날 만든다고 한다. 청국장을 원하는 손님을 위해서는 일부러 청국장 띄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모두가 수공이고 수제인 셈이다. 무와 콩나물을 한 솥에 덖어 자작하게 물을 낸 무콩나물과 시금치나물에 시래기된장, 곰취, 고추, 무 등 전통 장아찌, 물김치, 배추김치, 무김치가 먹음직스럽게 오늘의 주 메뉴 붕어찜을 받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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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찜
    “겨울에 뭐가 있습니꺼? 된장이 최고긴 한데 된장찌개만으로는 서운해서 붕어찜을 했습니더. 살아 있는 놈을 새벽에 데리고 와서 비늘 치느라 좀 힘들었어예. 모양새는 그래도 영양식입니더. 드셔 보이소.”

    의령 내 몇 군데 저수지에서 잡히는 붕어가 가끔 장터에 나온다고 한다. 펄떡거리는 붕어를 보고 물컹하게 뼈째 씹히는 옛날식 찜을 생각하고 만들었다는 주씨. 가시 많은 붕어는 불 조절을 하며 2시간 가까이 조려야 뼈째 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진다. 그때 식초와 술이 살짝 들어가야 비린내가 없어진다. 거기에 뭉텅뭉텅 썰어 넣은 무와 무청 시래기를 깔아서 다시 조린다. 비늘 치기가 어려워서 예전에는 비늘을 제거하지 않고 내장만 제거하고 통째로 조렸는데, 오늘은 먹는 이들을 위해 비늘 손질을 했단다. 갖은 양념을 얹어 뭉근하게 졸이면 소화 잘 되는 붕어찜이 완성된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요즘 하는 데가 별로 없는가 보다”는 주씨의 설명에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던 맛객들이 식사를 시작했다.

    붕어살 발라먹는 것도 좋지만 간간하게 간이 밴 무와 시래기가 감칠맛 나게 입안에서 착착 감긴다. 데친 손두부에 배추김치를 걸쳐 먹는 맛도 일품이다. 시골김치 특유의 시원한 맛이 입맛을 살려준다. 버섯도토리묵볶음은 쫀득쫀득한 식감이 마치 고기를 씹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강식으로 손색이 없다. 화학조미료 없이 어떻게 맛을 내느냐고 묻자, 맛간장을 따로 만들어 쓴다고 한다. 집간장에 버섯, 무, 파, 고추, 양파 등 야채를 넣고 달여서 나물무침이나 조림에 쓴단다. 소금도 3년 이상 간수를 뺀 천일염만 쓴다고 한다.

    이래저래 수월하게 후다닥 만들어내는 음식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주씨는 서암정을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 말한다. 집 분위기가 풍기는 옛 정취뿐 아니라 먹거리까지 시간을 들여 느릿느릿하게 준비되므로 그렇단다. 돈벌이로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설명에, 장사에 조금 소극적인 것 같아서 손님을 가려 받는지 물어봤다.

    “산중턱에 자리 잡은 탓에 겨울이면 식수가 얼어서 곤혹을 겪는 일이 잦아예. 되도록 봄, 여름, 가을에 방문객을 많이 받습니더. 그때는 지천에 꽃이라 볼 것도 많고, 이것저것 체험할 것도 많습니더. 1박을 원하시면 재워드리기도 합니더.”

    그래서 그런지 단체손님이 제법 많다고 한다. 어쨌든 서암정 밥상을 받고 싶은 이에게 예약은 필수인 셈이다. 옛 물건이 낯설게 보이는 한국사람이라면 의령 방문 시 서암정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손님들 사이에 우스갯소리가 오간다. 꽃 피는 봄날의 맛은 또 어떤 것일지 그것도 궁금한 서암정이다.

    글= 황숙경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서암정〓 의령군 가례면 가례로 545-19 (괴진리 51) 주정분 대표 ☏ 010-8531-4668.


    메인이미지의령구름다리
    ◆ 주변 관광지

    ▶의령구름다리= 의령천 수변공원 위로 솟은 구름다리. 의령읍 일대가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대에 올라선 느낌이 드는 명소. (의령읍 정암리)

    ▶의병광장= 17m 높이의 홍의장군 동상, 왜군과 맞서 싸우는 18장령들의 비장한 모습이 2개의 대형 벽면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의령읍 정암리)

    메인이미지벽계계곡

    ▶벽계계곡= 삼복더위에도 겨울비 같은 찬 비가 내린다 해 일명 찰비계곡이라 불린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와 계곡의 물소리가 심신을 맑게 해주는 곳이다.(궁류면 벽계리)

    ▶일붕사=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동굴 법당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궁류면 평촌리)

    메인이미지자굴산둘레길
    ▶자굴산둘레길= 산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휴양 치유 등산로. 대체로 평이한 구간으로 총 7.4㎞ 길이. 수목군락지와 기암괴석을 구경할 수 있다.(가례면 갑을리 쇠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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