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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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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귀농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황시은(시인)

  • 기사입력 : 2015-0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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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로 집을 옮긴 지 4년째이다.

    가축의 배설물을 운반해 오는 일에서부터 한 해의 과수 농사는 시작된다. 가지치기는 새 움이 트기 전에 마무리돼야 한다. 초록빛 과수에 살포하는 풀 약. 감꽃이 피기 전에 살포해야 하는 황토유황…. 가지에 주렁주렁 열린 앙증맞은 아기매실과 풋감들.

    신기하고 예쁜 그것들을 솎아내는 일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지치기, 열매솎기, 약치기, 수확하기…. 잠시도 쉴 틈이 없는 봄날의 농사이다. 수확은 땀방울과 비례함을 절실히 체험한다. 시골생활에서 뱀, 지네, 쥐들과의 전쟁은 닭과 오리, 유기견 몇 마리를 가족으로 맞아 해결한다. 든든한 가족들이다.

    첫서리를 맞은 단감나무 이파리가 단풍이 들면 그것을 신호로 농부들은 수확을 서두른다. 알맞은 당도와 아삭함은 단감만이 가진 매력. 때를 놓쳐서는 아니 된다. 캥거루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높은 가지에 매달려 감을 따노라면 목도 어깨도 허리도 아파 쉬지 않으면 그 무게감을 견뎌낼 수 없는 한계가 온다. 그럴 때 동네 할아버지의 추억 이야기는 내게 잊지 못할 위안의 문장이 된다.

    “내가 한참 직장과 농사일에 쫓겨 다닐 때 미처 거두지 못한 열매들을 지키기 위해 밤 내내 여기저기 과수원 곳곳에 불을 피우고 연기를 만들어 찬 구름을 내쫓았던 적도 있었지.”

    모두가 잠든 밤 인기척 한 점 없는 낮지 않은 산허리마다 솜사탕 같은 불꽃연기를 피워 올리며 찬 기운과 맞섰던 한 농부의 간절한 모습에서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의 게으름으로 채 수확하지 못한 열매들을 보며 추운 계절을 나는 산새들의 먹이로 두었노라 변명함이 나의 솔직한 모습인 것을.

    매실을 첫 수확한 기쁨에 블로그에 청매실의 사진을 올렸다. 이를 본 지인들의 구입 신청이 있어 돈을 받고 장사를 하게 됐다. 싱싱한 무공해 매실을 먹게 돼 고맙다는 인사 대신 짓물러 먹을 수 없겠다는 하소연, 일 년을 정성 들여 숙성시킨 매실액을 택배로 보냈더니 발효액 특유의 가스가 발생해 운송 도중 용기에서 폭발했다는 소식, 유기농 단감이라며 정량보다 많이 담아 보내야겠다는 단순한 마음에 박스 가득 넣었더니 부딪히고 꼭지에 찍혀 상품성이 없다는 충고들.

    그 모든 것들에게 얻어맞은 상처가 두려워 경매시장에 직접 실어다 내었더니 운반비며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며 분노했던 시간들….

    이십 대의 귀농이야기가 신문에 기사화되고 정년퇴직자들의 전원이야기가 멋진 건축물과 함께 잡지모델이 된 지도 오래다.

    그들은 말한다. 알맞은 크기의 텃밭에 채소를 가꿔 먹는 자급자족한 식탁에서 건강을 지키겠다고. 예쁜 계절에 맞는 씨앗을 뿌리고 가꾸며 애완견 두어 마리에 오리 한 쌍 연꽃 핀 연못에 풀어 놓는 일, 그것이 자연인으로 사는 것이라고.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귀농인과 자연인으로 산다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언젠가 노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한다. 농부는 신과 친구가 되는 사람이라는 말을.

    황시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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