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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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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신년리포트- 아침을 여는 사람들 (4) 빵집 제빵사 체험기

반죽·굽기·포장…고된 작업이 빚어낸 달콤한 결실

  • 기사입력 : 2015-01-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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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기 기자가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 ‘그린하우스’의 작업실에서 케이크 만들기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전강용 기자/

    미처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창원시 의창구 도계동의 한 빵집에 불이 켜져 있다. 오전 6시 30분이면 고소한 빵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그린하우스’. 요즘 같은 겨울철엔 7시에 빵 만들기를 시작한다. 빵으로 아침을 알리면서, 사람들의 배도 든든하게 채워주는 이곳에서 함께 아침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먼저 라커룸에서 새하얀 파티셰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가슴이 두근두근, 갈색 앞치마도 둘렀다. 위생모자와 마스크도 필수다. 이날을 위해 네일 컬러도 지웠다.

    “제빵해 보신 건 아니죠? 처음이면 힘드실 텐데… 근데 처음 하니까 재미는 있으시려나. 아, 허리 앞치마 끈은 매듭을 안으로 넣으시면 밀가루 덜 묻고 편해요.” 제빵 경력 5년차 김성은(25)씨가 걱정의 말을 건넨다.

    빵을 만드는 3층으로 내려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닌다. 밀가루가 형광등에 빛을 받아서일까 앞이 뿌옇다. 달콤한 빵 냄새, 예열된 오븐에서 나오는 노란빛, 반죽을 철판에 내리치는 소리, 라디오 멘트가 한데 엉기면서 잠시 꿈꾸듯 몽롱해진다.

    “먼저 우리 공장 돌아가는 걸 이해하셔야 도울 수 있겠죠?” 이 빵집을 일군 박용호(42) 쉐프의 말에 정신을 차린다. 제과기능장이며, 세계 3대 제빵대회 중 하나인 독일 이바월드컵에서 2012년 한국인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실력자다. 이 빵집은 맛과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달걀 하나까지 일정한 크기로 공급받고, 천연 효모를 사용한다. 빵 만드는 과정과 제빵 기계에 대해서도 배웠다.

    설명을 열심히 들었지만 사실 이곳에서 잠시라도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민폐’다. 빵을 오븐에 넣고, 빵에 들어갈 충전물을 준비해 넣고, 조리 기구를 씻는 등 수많은 일들이 한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어 20명의 제빵사들이 작업대와 오븐 사이로 바삐 다니기 때문이다. ‘잠시만요~’가 허공에 날아다닌다. 하루 10시간 이상 진행되는 작업에서 앉아 있을 시간이 없다. 아침에는 바빠서 말도 안 한다는 얘기가 실감났다.

    여기선 매일 300여 종의 빵을 만든다. 빵 만드는 과정을 보니 어느 하나를 고정적으로 기자가 도우면 오늘 그 빵은 매장에 못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비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여러 종류의 빵에 숟가락을 좀 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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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기 기자가 오전에 만들어 포장한 빵을 진열대로 옮기고 있다./전강용 기자/
    왕년에 ‘쥬쥬’, ‘미미’ 인형머리를 좀 땋아봤다는 이력으로 호두찰빵에 도전했다. 반죽을 세 갈래로 나눈 뒤 머리를 땋는 것처럼 만드는 방식이어서 자신 있었다. 김봉철(31) 과장은 “반죽 속이 밖으로 보여야 예쁘니까 바깥으로 약간 비틀면서 꼬면 된다”고 알려줬다.

    ‘아니 분명 머리는 잘 땋았는데 왜 반죽으로 하니까 순서를 모르겠지?’ 한쪽만 꼬여 모양이 흐트러져서, 여러 번 반죽을 주물러대니 온도가 높아져 반죽이 축축 처진다. 덩달아 기자의 간도 철렁 내려앉았다. 어깨와 팔에 잔뜩 긴장감이 들어간다.

    얼른 자리를 피해 옆에 계신 최장욱(32) 부장의 로티 번으로 전공을 바꿨다. 동글한 반죽에 밀가루를 묻혀 두 손으로 감싸 굴리다가 로티 번 내부에 들어가는 고체 형태의 크림을 넣어 손가락으로 집어가면서 마무리한다. 그런데 어쩌나, 이것도 실패다. “만두는 빚어봤나 보네요, 마무리가 만두네요, 허허. 근데 빵은 생명체나 다름없어서 이렇게 계속 만지면 반죽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손을 최대한 적게 써야 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고달프지만 이 문을 들어서는 순간, 최대한 즐겁게, 행복하게 빵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래야 빵도 행복해서, 맛있는 빵이 만들어지니까요.”

    빵을 더 이상 불행하기 만들기 싫어 케이크룸으로 옮겼다. ‘꾸미는 건 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김성은씨와 이종선(30)씨는 생크림으로 케이크를 덮는 ‘아이싱’ 작업이 한창이었다. 팔을 걷어붙이고 잘해 보겠노라며 시범을 뚫어지게 봤다. “생크림을 빵 시트에 올린 다음, 나이프를 조금만 눕히고 아래 원반을 돌려나가면서 덮어나가요.” 결과는 참담했다. 나이프를 너무 눕혀 되레 생크림을 걷어냈고, 빵이 다쳐서 속살을 드러냈다.

    ‘아침도 안 먹고 3시간 내내 앉지도 못했는데 민폐만 끼친 게 되다니….’ 만회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듯했다. “저 1층에서 도와드려도 될까요?”

    정신없이 3층을 왔다 갔다 하니 날이 환히 밝은 것도 몰랐다. 벌써 오전 10시가 넘어 있었다. 1층 매장에는 어느새 손님들이 드나들면서 신선한 빵을 고르고 있었다.

    갓 오븐에서 꺼내 식힌 단팥빵과 완두 앙금빵을 비닐에 넣었다. 비닐에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 작업대 위에 생긴 비닐들은 손에 꼭 쥐고, 날파리가 들어가지 않게 빵봉투를 확실히 여미라는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나무쟁반에 가득 담긴 빵을 나르고 진열하다 보니 그제야 마음이 빵빵해진다.

    사람들에게 맛있고 깨끗한 빵을 전하기 위한 마음은 빵을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파는 순간까지 이어졌다. 무엇을 먹을까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을 보니,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고된 일임에도 행복해하며 빵을 만드는 3층 사람들이 떠올랐다. ‘오늘 아침 내가 만든 빵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기를….’ 그들이 바라는 단 하나가 아닐까.

    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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