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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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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교황청 대십자훈장 받은 퇴직공무원 전부학씨

24년간 봉사활동 이어온 퇴직 공무원 전부학씨
1991년 산청 한센병 환자촌 위문 갔다가
수리하러 올 사람 없어 쌓여있는 가전제품 보고 결심

  • 기사입력 : 2015-01-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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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창기술봉사단원들과 함께 밀양시 하남읍 명례마을에 봉사활동을 온 전부학씨가 세탁기를 수리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정년퇴임한 지 3년이 훌쩍 지났다. 30여 년간 이어온 공직생활을 접은 뒤에도 봉사활동은 여전히 그의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매월 둘째 주 일요일마다 마창기술봉사단원들과 농어촌을 다니며 농기구와 전자제품 등 수리를 해준 지도 24년째.

    지난 11일 밀양시 하남읍 명례마을에서 전부학(62)씨를 만났다. 이날 전씨를 포함한 마창기술봉사단 13명은 주민들의 농기계와 전자제품 수리 외에도 명례성지의 환경정비를 도왔다. 명례성지는 천주교 순교자이자 소금장수였던 신석복을 기리는 곳이다. 명례성지의 소금저장고 정리를 끝낸 전씨에게 정년퇴임 이후에도 계속하고 있는 봉사활동에 대해 물어봤다.

    ▲봉사활동의 시작= 전씨는 현재 마창기술봉사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봉사단을 처음 만든 건 그이다. 전씨는 지난 1975년 밀양에서 당시 영남작물시험장에서 근무하며 공직을 시작했다. 이후 경남농업기술원과 창원시농업기술센터를 거치며 지난 2012년 말 정년퇴직할 때까지 여러 개의 봉사단체를 만들었다.

    1991년 7월께 산청군 한센병 환자촌을 위문방문할 때의 일이다. 성당에서 수거한 헌옷을 트럭에 싣고 방문했는데 떠날 때 마을 한쪽에 쌓여 있는 고장난 전자제품들을 발견했다. 왜 저렇게 쌓아 놓았는지 의아해하는 전씨에게 마을 대표는 “돈 주고 서비스 기사를 불러도 문디골이라 안 온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어요. 무작정 사람들을 모았죠. 처음 4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전씨는 당시 두꺼운 전화번호부에 나와 있는 수리 대리점을 찾아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그 좋은 기술을 한 달 중 29일은 본인을 위해 쓰시고 나머지 하루만 불우 이웃을 위해 쓰는 게 어떻습니까?” 전화를 걸 때마다 번번이 거절당했지만 결국 지인 등을 포함해 4명으로 봉사단을 꾸렸다.

    봉사단은 한센병 환자촌뿐만 아니라 농어촌 지역으로 봉사를 확대해 나갔고 동참 인원도 꾸준히 늘어갔다. 전씨는 이 외에도 진주기술봉사단, 마산기술봉사단을 조직해 단장을 맡았고 진해기술봉사단을 만드는 데도 힘을 보탰다. 지난 2007년에는 창원시청 공무원들을 주축으로 봉사단을 만들기도 했다. 전씨는 현재 모든 단장직을 내려놓고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일에는 정년이 있을지 몰라도 봉사에는 정년이 없다”고 말했다.

    ▲든든한 지원군 된 가족들= 그의 이런 봉사는 가족들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현재는 한 달에 한 번 농어촌에 봉사를 나가지만 마창기술봉사단을 조직할 무렵 초창기에는 매주 봉사를 나갔다. 남들처럼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가족과 여가를 보내지 않고 주말마다 봉사를 나가는 남편을 보며 아내 진향연(61)씨는 불만이 쌓여 갔다.

    미안했던 전씨는 아내에게 주말에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다. 김밥도 싸고 승합차를 빌려 산청군 경호강으로 향했다. 하지만 산청군은 그가 평소에 봉사를 다녔던 한센병 환자촌이 있던 곳, 가족들을 경호강변에 내려놓고 잠시 뒤 그는 환자촌으로 향했다. 한참이 지나도 남편이 보이지 않자 아내는 찾아 나섰고 한센병 환자촌에서 텔레비전을 닦고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한센병 환자들이 바르는 약이 많다 보니 전자제품과 가구에 때가 많이 껴요. 아내가 텔리비전을 닦는 나를 보더니 같이 닦기 시작하더군요.”

    이후 아내는 남편이 봉사를 나갈 때마다 동행해 단원들에게 밥을 해주기도 하며 일손을 도왔다. 아내 진씨는 전씨의 든든한 후원군이 됐다.

    미용기술이 있는 아내는 이발봉사도 하기 시작했다. 진씨는 매월 셋째 주 주말마다 독거노인이나 요양병원 등을 찾아 이발 봉사를 다닌다. 가장의 봉사활동은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딸 연주(33)씨 또한 이발 봉사를 돕고 있다.

    전씨는 “어릴 때 가난했고 학교도 힘들게 다녀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도움 하나가 큰 고마움이란 것을 안다”며 “가난한 자에게 빵 하나가 생명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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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처럼 찾아온 ‘새로운 삶’= 그는 봉사활동만큼 상복도 많다. 정부로부터 청백리 대상, 경남도로부터 사회복지협동상 등 봉사에 대한 수상이 잇따랐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상은 로마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받은 대십자 훈장이다. 천주교 신자였던 그의 꾸준한 봉사활동을 눈여겨봤던 마산교구에서 교황청에 추천을 올렸다. 지난 2007년 당시 베네딕토교황이 대십자훈장을 수여했다. 봉사만큼 훌륭한 상을 받은 전씨지만 겸연쩍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봉사 자체가 축복인데요. 사실 더 큰 상은 이미 받았죠.”

    그가 말하는 상은 ‘새로운 삶’이다. 젊은 시절, 운동을 좋아해 아마 복싱을 열심히 했던 그는 27살 무렵 오른쪽 무릎 부상을 당했다. 병원 진단은 골수암. 의사는 6개월 시한부 선고까지 내렸다. 유서까지 쓴 그는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골수암은 오진이었다. 큰 병원을 찾아 재진료를 한 결과, 골수염으로 판정났고 그는 새로운 삶을 얻었다.

    “하루하루가 보너스인데 어떻게 봉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봉사활동만큼이나 그는 건강도 잘 챙긴다. 비결은 마라톤이다. 골수염을 앓은 그이지만 매일 10㎞ 조깅을 한다. 지난 2000년부터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 나가 풀코스 12회, 하프 13회 완주를 달성했다. 봉사하기 위해서도 건강은 필수라는 그는 시골에서 마을 이장을 하는 것이 꿈이다.

    “도시에 살면서 봉사한답시고 농어촌을 다녔지만, 이제는 그곳으로 가 살고 싶습니다. 내 공직생활의 노하우를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싶습니다.”

    김용훈 기자 yhkim@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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