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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513) 제9화 해마다 당당하고 화려하게 20

“나는 남자 복도 없어”

  • 기사입력 : 2015-01-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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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의 도매상들은 위탁판매 계약을 했고 교보나 영풍 같은 대형서점들은 일단 책이 나와야 계약을 해준다고 했다. 책이 나올 때까지는 계약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왜 책이 나와야 계약을 한다는 거야?”

    “계약만 하고 책을 내지 않는 출판사들도 많대. 출판사가 수만 개나 되는데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내지 않는 출판사가 90%라는 거야. 그러니 계약서를 보관하는 것도 대형서점은 장난이 아니라는 거야.”

    “전부 위탁판매지?”

    “응.”

    위탁판매라는 것은 책을 납품했다가 팔리면 돈을 지불하고 팔리지 않으면 반품을 하는 것이다.

    “담당자들이 남자들이야?”

    이요환이 웃으면서 물었다.

    “그러니까 치명적인 나의 매력에 빠진 거지.”

    조민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민주는 인터파크와 예스 24 등 인터넷 서점과 전화로 미팅 예약을 해.”

    이요환이 지시했다. 이요환의 지시에 사무실이 다시 일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안소연은 소설의 문장을 집중하여 살폈다.

    조민주는 인터넷 서점과 통화를 하면서 틈틈이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요환은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장유리는 보도자료 쓰는 법을 읽기 시작했다.

    “김태원과 문자질을 하는 모양이군.”

    안소연은 조민주의 인생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항상 웃고 지내지만 속은 시커멓게 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는데 김광규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안소연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와 보낸 숱한 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나누었는지 일일이 헤아릴 수 없었다.

    “내 인생을 허비한 거야.”

    한때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랑을 하여 함께 살고 있으니 결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에는 돈이 적지 않게 들어갔다. 아버지는 정년퇴직을 했으나 퇴직금 받은 것을 남동생이 사업을 하다가 모두 말아먹고 오히려 빚까지 지는 바람에 돈을 마련할 수가 없었다.

    늙은 어머니가 음식점에 나가서 설거지를 하고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로 일을 하면서 남동생의 빚을 갚고 있었다.

    “인생이 더럽게 꼬였어.”

    안소연은 도저히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남자 복도 없어.”

    백마 탄 왕자는 그녀의 인생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광규와 헤어진 것이 살점을 도려낸 것처럼 아팠다.

    김광규도 집안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릴 때 죽고 어머니가 두 여동생과 김광규를 키웠는데 갑자기 재혼을 하여 의절하다시피 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한 남자는 건축 일을 하는 사람인데 술주정뱅이였다. 여동생 둘은 결혼도 하지 않고 동거하고 있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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